백일섭 선생님은 행복할까?
그의 결정은 불행을 피하기 위함일지도
탤런트 백일섭 선생님이 딸과 함께 나오는
예능 프로를 보게 되었다.
푸근한 인상에 좋은 아빠 같은 이미지였지만 현실은 상처와 아픔, 외로움 가득한 삶을 살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자세히 들여다보면 안과 밖의 모습이 다르다.
특히 TV에 나오는 사람들 일수록 그 양면성의 갭이 더 크다.
(졸혼)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게 한 사람이었지만 그 생소한 일이 가까운 데서 먼저 있었다.
"결혼을 졸업하다."
서류상 혼인관계를 유지하면서 서로의 삶에 간섭하지 않고 독립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라 한다.
부모님 세대는
서로 맞지 않아도 자식들 때문에 , 남의 이목 때문에 라는 이유로 헤어지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차라리 이혼을 하면 했지 따로 산다는 개념 자체가 흔하지 않은 건 사실이다.
"아버지는 늘 화가 나있고 표정이 굳은 모습뿐이다."
"촬영을 마치고 집에 가면 가족들이 반겨주지 않는 것 같아 많이 서운했다."
남이 아니라 부모와 자식에 의한
서로가 서로에 대한 회상이다.
사랑을 받지 못해서 사랑 주는 방법을 모른다고 했다.
남아있는 자식들에게 상처의 대물림은 꼬리에 꼬리를 물듯 고스란히 이어갔다.
부슬부슬 비가 오던 이른 봄.
고희를 맞은 생신날 시어머니는 나에게만 조용히 이야기하셨다.
너한텐 정말 미안한데 지금 아니면 내가 죽을 것 같다. **아비(남편)는 잘못 없으니 니들은 싸우지 말고 살아라.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마음 안정되면 그때 연락하마. 미안하다.
혼자만의 졸혼을 결심하고 떠나셨다.
내내 어떻게 살아왔는지 내 눈으로 보고
내 귀로 들었다.
그래서 더 이상 잡을 수가 없었다.
사실 내가 편하자고 잡을 수도 있었겠지만
한 사람의 인생도 중요하기에 쉽게 내 감정대로 묵살해 버릴 수가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몇 해를 거쳐서 낸 결론이기에 꺼내기 어려웠던 말이었을 것이다.
그때는 그 의견에 존중해 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의 배려였다.
지갑에 있던 약소한 현금을 몽땅 꺼내서 내어주니
평소 아낌없이 주었던 그 손이 벌벌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이 나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는지 미안한 감정이었는지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백일섭 선생님은 남자이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웠지만, 시어머니는 여자이고 그렇지 못했다.
안타까운 건 시어머니는 노인이었다.
당장 어디서 어떻게 사실지가 걱정되었다.
내 남편이 시아버지 같은 사람이면 나는 얼마나 견디며 살아갈 수 있을까.
서로 맞지 않는 사람과 한 집에서 영원히 산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말 그대로 살고 싶어서 떠나는 거였다.
그 괴로운 일을 이제는 끊어버리고 새 삶을 개척해서 떠나려 한다.
가는 방향을 알기에 서로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우리 다음에 만날 때는 웃으면서 보자."
나는 시어머니를 좋아했다.
늘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셨고 매번 좋은 말만 해 주셨다.
남편한테는 항상 나에게 잘해주라고 잔소리처럼 하셨다.
그래서 시댁에 대한 어떤 어려움을 이야기하지 못했다.
딸보다 며느리가 좋다고 늘 자랑하셨으니까.
그 진심에 작은 상처라도 주기 싫었으니까.
딸들은 느끼지 못했던 사랑을 나는 친엄마 같은 편안함을 분명 느꼈다.
걸어가는 우산 속 작은 여인의 뒷모습은 사랑받지 못 한 가여움으로 옅은 비도 속절없이 따라 울었다.
모퉁이 소실점 끝에서야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아마도 시어머니도 울고 계셨으리라.
행복한 결혼생활은
상대방이 좋아하는 일을 해주는 것보다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아야 한다.
행복을 찾기보다 불행하지 않게 사는 것이 원하는 삶이다.
그렇게 13년이 흘렀고 지금은 불행하지 않은 삶을 넘어 행복하다고 한다.
그래서 백일섭 선생님은 지금의 생활이 행복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