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늘 곁에 있을 거란 착각.

by 준익

생각해 보면 내 3.40대는 창백하게 우울했다.

가장 빛나고 추억 많을 황금기 젊은 시절에 느닷없는 폭격을 맞은 것처럼 암울했다.

어떻게 견뎌냈는지 아님 죽을 만큼 힘든 시간은 아니었었는지 무한 루프 속 기억은 울컥 심심치 않게 나타난다.

그러곤 나를 미움의 심해 속으로 끌고 갔다.


시어머니가 떠난 후 내겐 지옥이었다.

이제 막 다시 회사에 들어간 남편과는 주말부부가 되었고 두 아들은 커가고 시아버지 봉양은 해야 했으니 내 일상은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행동의 대상이 시어머니에서 내가 되었다.

주변에 가족이라곤 며느리인 나밖에 없었으니까.

반찬 해가지고 와라, 뭐가 필요하다. 용돈이 떨어졌다. 기름 좀 넣어라... 요구는 끝이 없다.

그리고 사사건건 불만이셨다.

본인의 일상 자체는 무조건 최고 좋은 것으로만 해야 했기에 시시한 건 입밖에도 낼 수 없었다.

카투사 출신이셨다.

예전에 시어머니와 사촌누나들이 하던 이야기가 있었다.

카투사에서 쓰던 치약을 공수받아 양치할 때 자기 칫솔에만 짜고 다시 장롱에 넣었잖아.
미군에서 먹었던 피자를 찾길래 당시 흔하지 않았던 피자집에서 세 종류나 시켰지만 또 그때 그 맛이 아니었다고 짜증이 났었지.
손수건과 면 러닝, 혼자 쓰는 수건은 항상 락스로 하얗게 표백이 되어야 했고.


결벽증, 자기중심적, 이기주의, 무능, 의처증. 그리고 외도.

나쁜 것을 나열한다면 빠질 단어가 있을까.

아! 어떨 땐 협박까지 했었다.

한마디로 아주 못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있지 않나.


"남에게는 잘하는데 가족에겐 못 하는 사람"


어느 날은 시어머니가 한참 일을 하고 있는데 당장 본인이 있는 곳으로 오라고 전화를 했다.

무슨 일인가 하고 손님도 놔두고 뛰어갔더니 친구들이랑 먹은 술값을 내라고 한 것이었다.

기가 차고 어이없는데 뻔뻔하기까지 했다.

하루가 그냥 지나가는 일이 없고 매일이

가슴 졸이는 폭풍 같은 나날이었다.

그냥 평범한 하루가 고마운 날이다.

한숨은 눈물이 되고 눈물은 복수가 되었다.

가장 가까이에서 괴롭힐 수 있는 사람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때는 몰랐고 지나면 후회되는 모든 것에는

대가가 있다.

기다림은 혼자만의 착각이다.


그런 시아버지 눈에 서투른 나의 모든 게 마음에 들리 없었다.

처음엔 장을 봐서 하루종일 반찬을 만들어 며칠 드시게 갖다 드리면 저녁이면 다시 전화가 온다.

'나물은 왜 싱겁냐. 국은 맛이 없다, 손 국수를 해 갖고 와라.'

매일이 전화 스트레스에 정신병이 걸릴 것 같았다.

밤, 낮, 새벽도 없었다.

전화를 받지 않으면 받을 때까지 걸려오고 집전화건 휴대전화건 부재중 전화만 20통씩 왔었다.

결론은 네가 해온 음식 도로 가져가라는 거였다.

냉장고도 복잡하고 음식물 쓰레기 처리로 곤란하다는 뜻이다.


지리멸렬한 현실에 지쳐 받은 스트레스를 어찌 풀 데가 없었다.

네 부모일이잖아. 왜 네 남매들은 의리란 것도 없냐? 시어머니는 왜 도망을 가서 날 이렇게 힘들게 하냐. 난 더 이상 못 하겠어.

목 끝까지 나오는 수많은 마음속 말들을 그냥 가슴속으로만 삼켰다.

나는 착하다. 아니 착했었다.

남에게 싫은 소리도 못 하고 내가 한 무심한 말에 상처 입을까 먼저 생각을 한다.

바보, 등신이었다.

그러니 소위 (화병)이라는 약도 없는 병에 걸리고 말았다.

친정에도 친구에게도 남편에게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그 수없는 날들이 갈기갈기 칼날이 되어 영혼까지 피를 흘렸다.

우울증보다 정신병이 걸리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