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불편하면 마음은 편하고 마음이 불편하면 몸은 편하다.]
어느 날 회사에 있는데 치과라고 전화가 왔다.
"아버님 임플란트 시술 잇몸 뼈 이식 오늘 결제 부탁 드립니다."
이전에 시술했던 치아 두 개가 불편하다고 계속 짜증을 내셨는데 결국은 다른 치과에 가셔서 재시술을 하신 것이다.
치아가 불편했으면 시술한 치과에 가서 다시 하던 따지던 해야 할 문제인데 믿지를 못 하고 덜컥 다른 곳으로 갔으니 도리가 없었다.
한두 푼도 아니고 사전 상의 없이 혼자 결정하고 결제를 통보받으니 이런 경우가 있나 싶다.
회사일로 힘든 시기였는데 더 속이 상했던 건
늘 시아버지의 일방적인 행동이었다.
그때는 석 달 월급에 맞먹는 비용이라 일하는 보람도 없이 허무했다.
이젠 뭐든 일을 끝내고 연락하는 수법을 썼다.
그것도 제일 마지막 결제 부분에서.
남편은 원하는 대로 들어주었다.
아니면 해결될 때까지 사람을 재촉하셨으니까.
우리는 화수분이었다.
하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은 무조건 하고야 만다.
그러니 정작 내 식구들은 늘 부족함에 허덕였다.
제일 힘든 건 병원비다.
나이도 드셨고 조금만 아프셔도 병원 데려다 달라고 하셨기 때문에 두, 석 달에 한 번은
입원을 하셨다.
입원을 하면 보호자가 바쁘니 간병인까지
써야 했다.
수술도 여러 차례 퇴원 할 때마다 병원비는
기백만 원 나왔다.
매번 우리만 떠안을 문제가 아니라 생각해서 형님한테 속사정을 이야기했다.
당시에는 병원비라도 조금 도와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눈 딱 감고 했었던 연락이었다.
우리는 자라면서 아버지 도움 한번 받은 적이 없어. 아버지라면 치가 떨리는 사람들이니까. 그 사람에 대해서는 연락 안 했으면 좋겠어. 솔직히 아들이 책임지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출가외인은 남이라 하던데.
동생들과 상의해 보고 연락할게.
불행한 과거를 벗어나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 불편을 남동생에게만 전가하는 태도는 참 못된 사람들이라 느꼈다.
그냥 미안하다. 고생이 많다는 말 한마디가 그리 어려운 문장이었나.
경제적 사정은 우리가 제일 어려웠고
그렇게 보기 싫은 부모를 떠 맡기듯 했으면 오히려 고마운 존재가 아니었는지.
미워도 딸을 그리워하는 노쇠한 아버지 한번 찾아뵙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었나 생각 든다.
핑계에 회피, 그저 상황만 모면했다.
있는 척 자랑할 때는 언제고
어려울 때 자랑은 농담이었다.
출가외인이 남이라고?
출가하면 친부모가 달라지나?
그들에게는 가족의 의미가 달랐다.
다 되돌아갈 것이라 믿는다.
서운함을 남편에게 이야기하면 그래도 핏줄이라고 모든 감당은 자기가 하겠다고 했다.
시누이던 시아버지던 불란의 시초를 자기 선에서 끊으려는 생각이었다.
남의 탓이라고 생각하면 우산 위의 눈도 무겁고 내 몫이라고 생각하면 등짐으로 짊어진 무쇠도 가볍다.
남편의 메모엔 김난도 님의 글귀가
성경 구절이었는 지도 모른다.
내 전화기에서 시아버지를 차단시키고
연락하지도 말고 찾아가지도 말라고 했다.
먼 거리 회사를 다니면서 병원에 데려다주고 퇴근해서는 면회도 다녀오곤 했다.
입. 퇴원을 반복하고 주기적으로 경과 보러 다니는 불편함에도 말없이 그 일을 해냈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최선을 다해서 누구한테 건 원망의 소리를 듣지 않게 했다.
그렇게 십 년을 꼬박 혼자 하는 사이 시댁 식구
누구 하나 면회나 안부전화 한번 하지 않았다.
남편이 독한 지 시누이들이 독한 지
독한 건 똑같았다.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면 늘 했던 말이 있다.
"몸이 불편하면 마음은 편하고 마음이 불편하면 몸은 편하겠지. 나는 몸이 불편한 걸 택한 거야. 마음이 불편한 거보다 그게 나으니까"
아무리 소중한 것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무뎌진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잊지는 않는지.
어른이 되기에 몇몇은 아직 덜 흔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아버지에게
묻고 싶었다.
그래서 속이 시원했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