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 한 통

상생의 선연

by 준익


착한 사람으로 헤어져

그리운 사람으로 남아야 한다.

마지막 허리 수술을 끝내고

퇴원하던

의사 선생님의 면담이 있었다.

시아버지는 집에서 케어할 수준이 안되니 조심스럽게 요양병원을 소개해 주셨다.

당신의 어머니도 모셨다는 곳이니 걱정 말라며 노멀 하게 설명했다.

사실 요양병원은 마지막으로 가는 곳이라 생각해서 고민이 많았다.

신중한 결정과 상의가 필요한 일이라 시어머니께 연락을 드렸다.

거두절미하고 보내는 건 당연하다고 말하셨기에

그동안 지나왔던 십 년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화나고, 속상하고, 미웠던 시간과

가엽고, 처량했던 모습들이 겹쳐져 애증이라는 아주 깊은 미지의 감정들이 이런 것인가 싶게 가슴이 아려왔다.

선을 긋듯 딱 잘라서 나눠지는 부부라는 인연의 시간도, 알 수는 없지만 부자의 어쩔 수 없는 마음도 하나의 얼굴 안에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말들이 읽혔다.


10군데의 병원, 8번의 수술, 10년을 거쳐

84세의 연세까지.

수없는 거리를 오간 그때를 시아버지보다 남편에게 고생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요양병원에 가던 날

"이제 여기가 끝이겠지?"

라고 말하던 남편의 생기 없는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요양병원에 모셔놓고 두 번 정도 면회를 하고 나니 코로나19가 터졌다.

면회 때마다 집에 데려다 달라고 성화였기에 나오는 길은 무척이나 힘들었다.

그러던 중 문자 한 통이 왔다.

**엄마 잘 지내죠? 요양비 내역서 첨부해서 보내주세요. N분의 1로 계산해 드릴게요.

첨엔 이게 무슨 내용인가 했다.

10년 만에 온 둘째 시누이의 문자였다.

아마도 요양비 정도는 같이 부담하라고 시어머니가 부탁했던 모양이다.

앞뒤도 없는 황당한 문자에 열도 받고 욕도 나왔지만 '예의는 저 나이 되어도 모르는구나' 스스로 위로를 했다.

떨리는 손과 마음을 가라앉히느라

시간이 꽤 지났다.

지난 10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오늘 문득 떠 오르네요. 뭐가 먼저인지 내 입장에서는 혼란스럽네요.

하고는 요양비 98만 원이 찍힌 영수증을 보냈다.

웃기는 건 그러고 보내온 돈 세명 몫

51만 원이었다.

아버지 노령연금 30만 원을 뺀 네 명의 n분의 1씩 계산된 금액이었다.

기가차고 어이도 없고 더럽고 치사해서

나는 다시 한번 문자를 했다.

우리가 그동안 해왔으니 요양비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런데 시아버지는 요양병원에 들어가신 지 딱 100일 만에 돌아가셨다.

그러니 3명의 시누이들은 요양비 3개월을

보탠 셈이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하고 싶은 말이 목 끝까지 나오는 걸 애써 참았다.

얼굴 볼 시간은 그때뿐이었으니까.

이상하게 마지막 까지도 시댁식구들은

슬프지 않은 것 같았다.

미워도 한때는 아버지였는데...

낳아주신 부모였는데.


부의금도 장사라는 말을 여기서 볼 줄 몰랐다.

형님이 100만 원이란 돈을 부조해서 감사의 인사도 했는데.. 나중에는 본인 지인들꺼 확인한다 하더니 본인이 한 거랑 지인들꺼랑 싹 다

챙겨 갔다.

시누이들은 자기네들이 요양비를 도와줘서 아버지 잘 보냈다고 내색했다.

혼자만 씁쓸했던 시아버지 장례식이었다.


좋은 인연이란 무엇일까.

처음이 좋은 인연이 아니라 끝이 좋은 인연이

좋은 인연이라고 했다.

부부의 인연, 부모 자식 간의 인연,

형제로써의 인연, 그리고 스쳐 지나는 살면서 맺은 작고 큰 인연들.

내게 좋은 인연만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보다

내가 좋은 사람으로서 다가가는

좋은 인연들만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