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였나 시어머니께 물었다.
그렇게 힘들었는데 어떻게 견디고 살았냐고.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았기 때문에 책임이란 걸 생각하게 되더라. 나 편하자고 어린 자식들을 놓고 나오면 어딜 간들 편하게 살았겠어. 네 시아버지는 그냥 못된 아들하나 있는 셈 치고 달래고 얼러서 살면 된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못된 자식은 아무리 타일러도 안 고쳐지더라고.
시어머니는 네 자매 중 막내로 컸다.
남아선호 사상이 깊었던 당시
딸만 낳은 어머니들이 얼마나 서럽게 살아왔는지 알고 있지만 시어머니는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고 한다.
그런 막내딸이 남편 때문에 고생을 해도
친정에 말하지 못하고 마음고생 한 세월이
그렇게 서러웠다고 했다.
그 마음 너무나 잘 알기에 가슴이 시렸다.
나는 시어머니를 닮은 것 같다.
그래서 더 엄마처럼 딸처럼 살갑게 지내자고 노력했다.
시아버지 때문에 속상해 울고 계시던 날
그 모습을 감추려고
무심히 가방 안을 뒤적였다.
뭘 찾으려고 하는 건지 계속 속만 흩뜨려놔서
찾아 주겠다고 가방을 뺐었다.
찾고 있던 작고 허름한 수첩 안엔
사진 한 장이 껴져 있었다.
손바닥 만한 사진 속엔
까만 갓을 쓰고 길고 하얀 수염에
도포를 입으신 시어머니의 아버지였다.
순간 울컥 눈물이 났다.
늙은 할머니의 모습을 한 시어머니도
그리운 아버지 앞에선
작은 아이가 되었다.
낡고 바랜 작은 사진은 그리움만큼 꺼내어져
닳고 닳아 그 얼굴마저 희미해졌다.
속상할 때면 보고 싶은 아버지 사진으로
달래고 그리워해서,금이가고 색이 바래
너덜 해진 인화지가 꼭 시어머니의 마음 같았다.
마치 아버지가 따뜻하게 웃으면서
조금만 참으라고 했던 건 아닌지.
그런 마음을 딸들이 이해해 주길 바랐다.
며느리보단 딸이 더 편하고 엄마의 심정을 더 잘 헤아릴 거라는 생각에서.
무소식이 희소식이야. 연락 없으면 잘 지낸다고 생각해.
보고 싶으니 자주 연락 하라는 시어머니의 말에 막내 시누이는 차갑게 대답했다.
동생 같았으면 머리라도 쥐어박아주고 싶을 만큼 미웠다.
그래도 시어머니는 엄마라고 쓴웃음만 지으며
"한 번쯤 생각나면 전화라도 해."
라고 무안해했다.
시집을 가고 아기를 낳으면 친정엄마 마음을 더 잘 알게 된다고 한다.
그 마음을 아직까지 못 헤아린 건지 늘 시누이들은 쌀쌀했다.
그래서 대신 더 안아드리고 손 잡아 주고 싶다.
시어머니가 집에 오시면 안방에서 같이 잠을 잔다.
그러다 옛날이야기에 밤을 새우곤 했다.
들어주고 말동무해 주는 내가 고마운지
속 마음을 표현하신다.
다음 생애엔 네가 내 딸로 태어날래?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 인 줄만
한밤 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 심순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