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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옹 May 21. 2023

Smile Again

'나'를 찾아가는 여행



"우리 얌전이가 얼마나 조용하고 착한지 몰라"

할머니가 손녀를 소개할 때 하는 단골멘트였다.

어릴 적부터 조용하고 얌전하다해서 집안에서 불리던 별명 '얌전이'

정말 내가 얌전하고 조용한 성격이었는지, 아니면 어릴 적부터 듣던 별명 덕분인지 나는 어디 가나 조용한 아이였다.

조용하고 얌전한 나란 아이가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춘다는 건 상상불가다.




스무 살

과소모임으로 수화동아리에 참여하게 되었다.

수화동아리하면 정적이고 차분한 모임처럼 느껴져 나랑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싱그런 5월

대학은 축제가 한창이다.

선배언니가 수화동아리를 홍보하자며 수화공연을 기획했다.

한 사람당 3곡을 공연하기로 했다.

물론 얌전한 나는 발라드 3곡을 선곡해서 열심히 연습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춤을 출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런 나에게 청천벽력 같은 공지가 내려왔다.

마지막 공연은 엄정화의 "festival"로 정해졌고 누구도 빠지면 안 된다는 빼박공지다.

몸치 박치인 나에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도전이다.

급하게 동아리 개국식 때 핑클공연을 성황리에 마친 동아리선배 오빠들에게 SOS를 쳤다.

우리가 안쓰러웠는지 바로 오케이를 해준 착한 선배들이다.

동방 앞 복도에서 음악에 맞춰 열심히 알려주었지만 우리는 허우적허우적 될 뿐이었다.

계속 틀리는 것에 화도 났을 텐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알려주었다.

멘트가 점점 "그래 ~ 자, 그럼 우리 율동으로 해보자"로 바뀌면서 춤이 아닌 율동이 되고 점점 우리가 아니라 오빠들의 표정이 더 안쓰러워졌을 뿐이지만.

덕분에 우리는 무대에서 열심히 수화와 율동을 섞어가며 공연을 마쳤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며 나의 몸짓에 박수를 쳐준다는 것이 생각보다 뿌듯했던 기억이 있지만 다시 하라고 하면 손사래를 칠 것이다.

하지만 그때를 생각하니 썸 타던 신랑이 전해준 꽃다발을 받던 스무 살의 내가 생각나 피식 웃음이 난다.


얌전하던 내가, 아니 나는 얌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내가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어찌 춤이란 걸 췄을까?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생각하니 스무  젊음이 아니었다면 가능했을까? 하는 안도감(?)이 든다.


'나에게도 그런 무모한 용기가 있었구나.'




" 이제는 웃는 거야 스마일 어게인~"


두 번째 스무 살

또다시 '나다움'에 대한 틀을 깨부수고 스마일 어게인하기 위해 도전하고 있다.

 한 번의 무모한 용기로

이젠 젊음이 아닌 인생경험을 바탕으로

나만의 글쓰기 페스티벌 시작한다.


글을 쓰면 잊고 있던 '나'를 기억하게 된다.

잊고 있는 '나'를 찾아 다시 웃기 위해 여행을 떠나보자.



#매거진 사브작북클럽 기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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