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퇴직하는 너에게
안녕
20년만 채우고 명퇴하겠다는 너의 선언에 깊게 공감하고 네가 신청서를 제출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마음이 이리 싱숭생숭하지 않았는데 말이지!
오늘 점심을 먹으면서 너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많은 생각이 들었어.
어떤 상황에 매몰되어하는 퇴사가 아닌 오롯한 너의 선택으로 차분하게 준비된 퇴사를 결정한 너를 보니 참 다행이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어.
우리 OO 씨 잘 컸다!!
더 이상 메신저로, 띡띡띡 숫자 4개를 눌러 너를 소환할 수는 없게 되어 너무 아쉽고 마음이 헛헛하다.
그리고 나의 긴 육아휴직으로 잘 챙겨주지도 못했는데 매번 언니라고(같은 학번에 심지어 졸업도 더 먼저 한 너지만 ㅋ) 배려해 준 너에게 참 감사해.
너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16년 전 나의 결혼식 며칠 전 퇴근길에 네가 종이학이 가득 든 큰 유리병을 선물로 가져왔어.
그때 정말 너무 고맙고 눈물 날 거 같았는데 제대로 표현도 못하고 날름 받았던 게 아직도 마음에 걸려서 자주 생각난다.
항상 너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제일 크게 기뻐해야지 하고 요이땅하고 있어.
(진심을 표현하는데 서툰 건 20년이 다되어가도 마찬가지라는 게 참.....)
앞으로 더 빛날 너에게 종이학을 안겨주진 못하지만 진심으로 너의 명퇴를 응원하고 항상 좋은 일이 가득하길 기도할게!
친애하는 OO 씨~ 언니맘 알지?
언니도 금방 따라갈게 ㅎㅎ
나에겐 친한 동기 4명이 있다.
그중 한 명이 8월에 명예퇴직을 한다.
20년 전 처음 만난 우리는 나이도 고만고만, 키도 고만고만하다.
그래서 우리 5명의 애칭은 고만이다.
20년 세월 동안 육아휴직을 돌아가면서 하기도 하고 의원면직을 한 고만이도 있다.
긴 육아휴직 후 어색하게 돌아간 곳에서 동기들이 없었다면 아마도 나 역시 이미 예전에 의원면직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OO시 아래 고만이 하나는 같이 있어야 한다'라고 우리는 입버릇처럼 말하곤 한다.
업무에 치이고 민원에 치일 때마다 메신저로 '나와봐!' 하면 쪼르륵 나오는 동기가 있다는 건 힘든 사회생활에 천군만마를 얻은 것보다 더 듬직하다.
20년이라는 긴 시간이 정말 필름 하나로 슝~지나갔다.
같이 울고 웃는 동기들이 있어 참 행복하다.
비록 하나 둘 같은 공간에서 볼 수 없게 되겠지만 우리는 고만이니깐 20년 후에도 이렇게 서로를 위해 울고 웃고 할 거라는 걸 알기에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