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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퍼스트 슬램덩크] 전지적 엄마시점

내맘대로 영화후기

by 우아옹

설연휴 cgv 리클라이너관이 오픈했다며 아바타를 보자는 신랑.

3시간을 앉아 있을 자신이 없다고 단호히 거절하는 나.

그런 나에게 로또 같은 사람이라고(맞는 게 하나도 없다는 뜻) 말하는 신랑.

로또 같은 와이프지만 신랑과의 오붓한 시간은 즐기고 싶어 슬램덩크를 제안하는 센스 있는 나란 여자.


어쨌든 우리는 삼남매를 친정에 맡기고 둘이 팝콘 하나 들고 리클라이너에 앉았다.




어릴 적 우리 집에도 한 살 어린 남동생 덕에 책장 한쪽은 항상 슬램덩크가 즐비해 있었다.

천방지축 강백호보다 느낌 있는 서태웅을 더 좋아했던 기억만 가물가물 있지만 1권부터 차례대로 꽂아둬야 한다는 남동생 덕분에 남자들에게 슬램덩크가 가지는 의미는 뇌리에 정확히 박혀있다.


경기후반부 1분도 남지 않았을 때 무음처리되는 몇 초 동안 나는 고등학교 때 친구집에 우르르 가서 보던 연고전이 떠올랐다.

2초 남겨놓고 동점 상황에서 역전한 짜릿했던 장면이 떠오르면서 교복을 입고 95년도로 들어간 느낌이었다.

응사(응답하라 1994)의 고아라처럼 숙소 앞에 찾아가 있지는 않았지만 난 항상 지원오빠의 팬이었다.

그 당시 버스 맨 앞자리에 지원오빠처럼 농구공 하나 들고 폼나게 앉아있던 우리 학교 농구부 오빠는 마흔이 넘은 지금도 농구를 잘하고 있을까?


이렇게 옛 생각하며 재미있게 영화를 관람했지만 자막이 올라간 후 머릿속에 자꾸만 맴도는 인물은 송태섭도 서태웅도 아니었다.


그 사람은 바로 송태섭의 엄마

그녀는 남편을 잃었다.
남편 대신 집안의 주장이 되겠다던 첫째 준섭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다로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농구선수 유망주였던 형을 뛰어넘기 위해 노력하는 둘째 태섭은 형의 굴레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겉돈다.


엄마가 되어보니 그녀의 삶이 참 애달퍼 보였나 보다.

그녀가 쪼그려 앉아 우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 걸 보니..


태섭이 형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온 날 준섭의 물건들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치우려고 하는 장면


형의 농구 영상을 밤에 몰래 보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면서 '살아있는 게 자신이라서 미안하다'는 편지를 쓰다 구기는 태섭의 장면

(사실 엄마는 태섭이 형보다 잘하려고 열심히 농구하는 모습을 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영화 곳곳에 아이들 앞에서는 당당한 그녀지만 뒤돌아서서 흐느끼는 장면이 자주 묘사된다.


그녀가 혼자 아이 셋을 데리고 남편 없는 삶을 살아가야 할 때의 나이는 지금의 나보다 어려 보인다.

스크린 속 울고 있는 그녀의 어깨를 토닥여 주고 싶다.


힘들어도 심장이 쿵쾅거려도 있는 힘껏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한다.



이 대사는 경기할 때 송태섭이 용기를 얻기 위해 스스로 되뇌는 말이다.


그녀도 똑같은 말을 수시로 되뇌지 않았을까?


마지막에 송태섭이 자신을 깨우치고 이겨내서 미국에 진출한 모습이 그녀에게 큰 위안이 되었기를 바래본다.




만난 지 2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로또 같은 우리지만

자막이 올라가고 다 먹은 팝콘통을 나오면서 챙겨 들어주는 신랑이 새삼 사랑스럽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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