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교역사나 경제사적인 관점에서 보지 않더라도 인류가 움직인 방향은 (때때로 그럴싸한 대의명분으로 포장되었을지라도) 자국의, 민족의, 또는 개인의 경제적 이윤 추구라고 이해하고 있었는데, 그 안에 핵심 기저로 쾌락이라는 동인이 있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은 내겐 흥미로우면서도 새로운 관점이었다.
원인도 시기도 학자들간의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 대륙을 떠나 대략 5~6만년 가량 세계 곳곳으로 이주했고, 그 동안 다양한 문화적, 생물학적 진화를 겪었으며, 의도치 않게 쾌락을 제공하는 동식물에 대한 보물찾기가 이루어졌다는 세가지는 얼추 합의를 이루었다고 한다. 이곳 저곳을 옮겨 다니면서, 채집 및 수렵을 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쾌락 물질을 포함하고 있던 동식물을 발견했다는 것.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1953년에 제기된 가설, 인류가 전분이 많은 음식 (굵게 빻은 옥수수, 곤죽, 빵)을 위해 재배한 곡물보다 영양가 높고 기분 좋게 취하며 세균 없는 맥주를 만들기 위해 재배한 곡물이 더 많았을 가능성에 주목한 가설이 발표되었다는 구절을 읽었을 때는, 많이 의아했다. 사람이 당장 배를 채우는 것보다 취하는 것을 더 우선시 했다고? 이 빵보다 맥주가 우선이었다는 가설은 서로 경쟁적으로 잔치를 벌였다는 또 다른 가설로 보완되었다. 족장이 되려는 사람은 술을 미끼로 사람들을 잔치에 끌어들였는데, 이 잔치는 호혜적인 채무를 만들고, 집단적 신념과 위계질서를 공고히 다지며, 사회적 유대관계를 강화하고, 새로운 음식과 기술을 선보이는 자리였다는 것이다. 이 가설이 뒷받침 된다면야 그럴 수 있겠다 싶었지만, 그러면 신석기 시대의 생활 상은 내가 막연히 알고 있던 것과는 완전히 배치되는 것 아닌가? 농사를 지으면서 먹을 것을 찾아 헤매지 않는 정착하는 삶을 살고, 씨족 중심의 원시 공산사회 형태였다는 생활상 말이다.
놀라운 점은 또 있었다. 저자에 의하면 농경사회가 충분히 정착되고 나서 벌어진 일들은 좀 더 명확하고 한다. 인간의 쾌락에 도움이 되는 식물들이 빠르게 전파되었는데 그 전파 속도는 대부분 주식용 곡물보다 더 빨랐다는 것이다. 즉, 노동집약적이고 토양을 황폐화시키는 작물인 담배가 옥수수와 수수나 쌀 같은 영양가 있는 곡물을 대체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유럽제국들이 대대적인 흑인 노동력을 투입해 식민지 땅에서 일궈낸 플랜테이션 농장도 생존을 위한 작물을 재배한 것이 아니라 기호식품을 재배해 부를 일궈냈었다. 카카오, 커피, 설탕, 차, 담배, 나중에는 아편까지. 대량 생산된 이 상품들은 기술의 발전에 따른 운송료 인하로 인해 세계 곳곳의 소비자에게 보다 싼 가격으로 전달 되어 소비를 가능하게 했다. (신대륙 발견이 1492년이고, 운송료 인하가 1800년대 후반인 것을 감안하면, 기호 식품의 세계화는 400여 년 정도 걸린 셈이다)
마침내, 1900년대에 라스베이거스 같은 도시가 생기고, 거기서는 숙박까지하며 술과 담배, 좋은 식사를 포함한 모든 엔터테인먼트에 도박까지 할 수 있는 시설들이 중독자 후보들을 끌어들이게 되었다.
여기에 화룡점정을 찍은 것은 신기술이 구현해낸 인터넷이다. 점점 산업화, 도시화, 세계화가 되어가고 있는 시점에 인터넷의 등장은 익명성, 접근용이성, 기업의 무차별적 광고, 가격 절적성 등의 이점을 내세워 모든 중독을 완벽하게 구현하는 실체가 되었다.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굳이 현지까지 가지 않아도 모든 중독 매체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고, 인터넷은 새로운 디지털 중독까지 만들어 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제 인류는 언제 어디서든 유혹과 맞닥뜨릴 수 있고, 조금만 방심하면 가뿐하게 중독 수준으로 넘어갈 수 있는 환경에서 살게 되었다. 문제는 이 책에서 언급했듯이 모든 중독에는 가난한 사람, 소외된 사람, 유전적으로 취약한 사람에게 가장 많이 나타나고 따라서 중독은 온갖 질병뿐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까지 야기한다는 점이다.
또한 중독을 온전히 개인의 문제라고, 개인의 의지력 탓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 사회적 환경도 한 몫 하기 때문이다. 1640년에 중국에서의 담배 소비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는데, 1640년대~1650년대, 이 20년은 세계사에서 최악의 시기 중에서도 최악인 20년으로 평가되는 시기로써 역사가들이 17세기의 총체적 위기라고 부르는 페스트, 기아, 혹한, 인플레이션, 폭동, 반란, 전쟁, 약탈, 강간 등 대혼란의 호러 쇼가 펼쳐졌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고통은 동료가 아닌 진정제를 원했다고 서술했다. 아마 같은 이유로 전 세계의 취약 계층에서 뭐가 되었든 중독률이 월등히 높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중독에 대처해야 할까? 수입을 목적으로 중독을 퍼뜨리려는 기업 (심지어 세수를 걷을 수 있는 정부마저 속으로는 소비의 확대를 원할 수도 있다)들이 점점 교묘해지는 가운데, 그들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로 뭉쳐 그들의 공격에 대항하기가 만만치 않다는 것은 잘 알겠다. 그러나 그럼에도 개개인이 각성해서 할 수 있는 문제들은 하나씩 해나가면서 연대를 조금씩 키워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어떻게 시작할지도 막연하지만,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비닐봉지를 조금씩 덜 쓰고 장바구니를 사용하듯이 우리의 움직임 하나가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어 나갔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