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의 미국 구하기
미국을 향한 테러리스트의 바이러스 위협은 초강대국 미국을 일시에 암흑시대로 돌려 놓을 수 있을 만큼 강력했고, 제한된 시간 안에 이를 해결해야 하는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내부의, 자신이 임명한 이너써클 내의 반역자의 존재 때문에 그들에게도 문제를 공개하지 못한 채 수석 보좌관 캐롤린 브록에게만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변장을 한 채 백악관 밖으로 나간다. 대통령이 백안관 외부에서 총격 사건을 비롯한 일련의 위기를 겪으면서 문제해결을 위해 고군분투하던 사이, 언론은 대통령이 사라졌다는 보도를 싣기 시작하고, 미국 내 모든 전산 시스템을 일거에 마비시킬 바이러스가 활성화 시간은 점점 다가온다.
우선 이 책은 너무 재미있었다. 작가는 ‘미국의 절체절명의 위기’라는 핵심 키워드를 처음엔 대통령과 캐롤린 브록만이 공유하게 했다가, 중간에 엘리자베스 그린필드 FBI 국장에게 공개하고, 나중에는 캐서린 그랜트 부통령에게, 후에는 이너써클 나머지 멤버에게 공개되는 방식으로 상황을 이끌어간다. 이 방식은 테러리스트 슐리만 신도럭을 중심으로 한 미국을 위협하는 적들의 정체를 하나씩 서술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의 절체절명의 위기’와 ‘미국을 위협하는 적들’에 대한 얘기를 날실과 씨실이 교차하듯이 촘촘히 배치하면서 그 사이사이 문제해결을 위한 대통령의 고군분투를 끼워 넣어 그 다음이 궁금해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 방식뿐 아니라 개연성 있는 등장인물들의 언행도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 책의 시작은 대통령 탄핵을 목적으로 하는 특별청문회였다. 제한된 정보로 인해 문제 해결을 위한 일련의 과정에서 드러나 단 하나의 사건만으로 앞 뒤 논리를 맞춰 정치적 게임을 시작한 하원의장 레스터 로즈. 나는 이 사람에게서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음을, 내가 알지 못하는 혹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더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늘 열어두어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사람인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최선의 선택을 해야만 할 것이다. 그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알 수도 없는 것을 추측해서 판단을 내릴 수도 없을 테니까.
대통령의 지지도가 떨어지고, 심지어 실종되었다는 언론 보도가 나돌면서, 침몰하는 배에 함께 있지 않겠다며 언론 인터뷰를 강행하여 대통령의 등에 칼을 꽂은 부통령 캐서린 그랜트. 이 사람은 현실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인물 군이라고 생각했다. 배움이 많던 적던, 부유하건 아니건, 지위고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상황이 불리해지면 등을 돌리는 사람은 아주 많으니까. 차라리 대놓고 적대적인 사람이 더 편할 수 있다. 진짜 무서운 사람은 속내를 감추고 내 곁에 있는 사람일 테니까. (범인인 내겐 고민할 필요가 없는 문제라는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대통령이 유일하게 신뢰하며 의지하는 수석 보좌관 캐롤린 브록. 상황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눈, 빠른 판단력과 실행력, 완벽한 일처리, 대통령에 대한 헌신. 처음부터 대통령과 호흡을 맞춰 위기에 맞섰던, 그래서 믿음직했던 그녀가 배신자로 판명 났을 때도 극적인 반전임에도 나는 그냥 어버버 거리고 있었다. 처음부터 보여준 캐롤린의 이미지와 너무 상반되어서 뇌가 스토리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반역자라는 것보다 더 놀랐던 것은 오랫동안 숨겨왔던 그녀의 본 모습. 야심만만한, 그러나 그 야심을 성취하지 못해 좌절하고 있는, 그래서 남을 질시하는 모습을 너무 철저히 숨겨왔기에 대체 사람을, 타인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위기 속에서 죽을지도 모르는 건강의 위협을 무시한 채 백악관을 떠나 정치색과 관계없이 미국의 안위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대통령 조나단 던컨. 던컨 대통령은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책임을 지며, 때로는 내가 내린 판단이 옳은가를 의심하면서, 참모들의 조언을 들어가면서, 스스로의 자질을 의심하면서도 고비고비마다 옳은 결정을 내려 마침내 미국을 구해낸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정의롭고 올곧은 미국의 대통령의 이미지가 살짝 불편했는데, 마치 미국은 선이고 다른 나라는 악이라는 이분법을 쓴 헐리우드 액션(혹은 서부) 영화의 가치관을 주입 받는 느낌이라서 그랬다. 책에서 악의 축인 슐리만은 천문학적인 돈을 받고 전대미문의 테러를 일으키는 악당 테러리스트에 불과했지만, 과거와 현재 미국의 대척점에 있었던 사람 또는 국가는 다 그들의 입장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내가 어느 날 조상 대대로 내려온 땅에서 가족과 함께 쫓겨난 인디언이라고 생각하면 헐리우드의 서부 활극이 그리 신나지는 못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바흐. 실패를 모르는 일급 청부 살인 업자가 뱃속의 아이를 최선의 환경에서 기르려는 모습에서 실소가 나왔다. 본인은 거금을 받고 남의 목숨을 앗아가 놓고서, 내 자식은 곱고 곱게 기르려는 그 모순된 마음이 어이없기도 하고, 부모 마음은 다 같지 싶기도 했고. 그러나 평범한 보스니아 소녀였던 바흐의 과거가 조금씩 드러나면서 언제부터, 왜 인류는 서로를 미워하면서 서로를 죽일 수 밖에 없었나를 생각해 보았다. 서구 열강들의 기나긴 식민 지배, 1, 2차 세계대전, 이러한 지난한 시간을 지내면서 켜켜이 쌓아온 갈등을 어떻게 봉합할 수 있을까? 그것이 가능은 할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