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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그루 Dec 24. 2021

크리스마스 선물_그림책 편지

기억하기보다 기록하는 즐거움

맘스다이어리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일기를 썼다.

물론 그 전에도 그림일기도 쓰고 충효 일기도 썼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건 단지 방학숙제였을 뿐,

일기라 하기에 부끄럽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내가 본격적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한 계기를 생각해보니, 옛날 우리 엄마의 노트가 한몫을 한 것이 분명하다.


우리 엄마는 자주 스프링 노트를 꺼내고 낮은 상을 펴고서는 꼭 한쪽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서 뭔가를 끄적이곤 했다. 게다가 유리로 된 커피잔을 깨끗이 씻고는 달짝지근한 밀크커피를 타 놓았다. 그렇게 한 손으로는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고, 나머지 한 손에 든 볼펜은 물 흐르듯 유유히 움직이곤 했다. 엄마의 그 모습에 홀려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엄마 옆에 똑같은 자세로 앉아 노트를 펼쳤던 것이다. 안네의 일기를 읽었을 때 일기장에 이름을 붙이는 것을 보고는 나도 일기장에 이름을 지어 주었다. 나의 일기 역사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일기장에 어린 왕자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는데 담임선생님이 친구들 앞에서 그 편지를 읽도록 시켰다. 소심했던 나는 무척 부끄러웠지만 넋을 잃고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친구들의 눈에 어쩐지 내 어깨에 힘이 바짝 들어가면서 으쓱한 기분이 들었다.


사춘기 때는 문학소녀 흉내를 내면서 온갖 고전 소설의 주인공들을 일기장에 소환했고, 내 현실의 깊은 우울함을 피해 일기장 몽상의 세계로 도망 다니기 일쑤였다. 첫사랑 교회 오빠의 기타 소리가 자면서도 들린다느니, 제인 에어, 테스, 폭풍의 언덕에 나오는 남주에게 마음을 뺏겨서 공부가 안된다느니 하는 낯부끄러운 소리를 일기장에 쏟아부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할   일기장의 전성기는 <육아일기> 아닐까!!


일기의 역사


아이를 임신했을 때 늘 불안했다.

몇 번의 유산했던 경험이 발목을 잡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는 쓰기 시작했다. 아이를 또 잃어버리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하고 무서운 마음에 대해서 썼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아이에 대한 간절한 바람과 소망에 대해 썼다. 또 임신 중에 더 심해지는 시어머니에 대한 서러움을 써 내려갔다. 육아 일기장은  아이를 위한 선물이었지만 결국 나의 비밀친구였고, 내 친정 엄마였다.


내 불안함과 상처를 뒤로 하고 태어난 아이가, 밝고 사랑스럽게 커가는 모습을 기록하는 것은 또 다른 기쁨이었다. 그런 아이에게 읽어주다가 오히려 내가 더 좋아하게 돼버린 그림책을 필사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그것이 꽤 쌓였길래 그림책 편지를 써서 책으로 엮었는데 이 역시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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