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니어그램 3유형에게
“누군가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본다면, 세상은 땀 흘리고 지치고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들로,
그리고 그들을 놓친 영혼들로 가득 차 보일 거예요.”
그림책 <잃어버린 영혼>은 참으로 조용한 그림책이에요. 처음 장면에서부터 느껴지는 건, 조용하다 못해 묘한 공허함이었어요. 연필로 그려진 회색빛 도시, 그 속을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들. 모두 열심히 살아가지만, 표정은 어딘가 비어 있습니다. 그리고 한 남자가 등장합니다.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었어요. 매일 목표를 세우고, 성과를 내고, 또 다음 일을 향해 달려갔지요. 사람들은 그를 능력 있고 멋진 사람이라 불렀지만, 정작 그는 어느 날 문득 자기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게 됩니다
“내 이름이 뭐더라?”라는 질문은 "내가 누구지?"하는 질문과 같아 보입니다.
겨우 자신의 이름이 '얀'이란 것을 자각하게 된 그는 의사를 찾아가 상담을 했고 처방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당신의 영혼이 너무 멀리 앞서간 몸을 따라오지 못한 것 같아요. 이제는 그곳에 앉아, 당신의 영혼을 기다리세요. 약도, 방법도 없어요. 다만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토록 바쁘게 살던 사람에게 찾아온 공허한 침묵. 그제야 얀은 자신이 얼마나 오래전부터 ‘영혼’을 두고 온 채 살고 있었다는 걸 깨닫습니다. 에니어그램 3유형, 이들은 늘 이렇게 말해요. “내가 해야 해.” “나는 이겨내야 해.” “나는 실패하면 안 돼.”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누구보다 성실하고, 누구보다 앞서 나가려는 사람들. 하지만 그 마음속에는 두려움이 숨어 있습니다. ‘만약 내가 성취하지 못하면, 아무 의미도 없는 사람이 될 거야.’ 그래서 이들은 끊임없이 달립니다. 인정받기 위해, 성공하기 위해, 그리고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서. 그러다 어느 순간, 영혼을 잃어버렸던 '얀'처럼 이름을 잊어버리는 순간이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얀은 의사의 처방에 따라 도시를 떠나 조용한 집으로 갑니다. 그곳에서 그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영혼을 기다립니다. 며칠, 몇 달, 몇 해— 그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비로소 ‘삶의 속도’를 되찾습니다. 하지만 3유형에게 ‘멈춤’은 두려운 단어입니다. 그러나 진짜 성장은 내달리는 것이 아니라 멈춤에서 시작됩니다. 얀처럼 하던 일을 내려놓고, 시계를 벗고, 트렁크를 묻어야 비로소 내 영혼이 다시 나를 따라올 수 있거든요.
얀은 자신이 묻어둔 트렁크와 시계 위로 피어난 꽃을 바라보며 알게 됩니다. 그동안 성취해야할 것들에 쌓여 돌아보지 못한 자신의 ‘일상’, '시간', '공간'등의 소중함을 말이죠. 달성하지 못한 것은 ‘목표’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는 걸요. 그리고 얀은 앞으로도 영혼의 속도에 맞춰 살아가기로 결심합니다. 더 이상 앞서 달리지 않고, 영혼이 뒤쳐지면 기다리고 함께 천천히 걷기로요. 어쩌면 그의 하루는 너무나 단순하지만, 그 안에는 진짜 숨결이 깃들게 된 것같습니다. 밥을 짓는 냄새, 바람의 온도, 창가에 앉은 새의 그림자같은 무용해보이지만 진짜인것들 곧, 무언가를 성취했기 때문에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 빛이 나는 삶을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