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척 사랑하는 2반 친구들에게'를 소리내어 읽는 순간 이미 위기가 찾아왔음을, 이 편지의 마지막까지 내려가는 게 난제가 될 것임을 직감했다. 졸업하는 아이들을 위해 쓴 편지치고는 꽤 담담하게 썼다며, 눈물 포인트 하나 정도는 심어둘걸 그랬나, 여기던 전날이었는데 담담은 무슨. 읽는 이가 최고의 변수였던 것이다. 제목만 읽고 울고 있는 선생님을 아이들은 말없이 쳐다봤다. 그리고 몇몇은 같이 훌쩍이기 시작했다.
이제 시작인데 포기할 순 없지. 난제 극복을 위해 주먹을 꼭 쥐며 겨우겨우 다음줄로 넘어갔지만 감기와 울먹임이 혼합된 목소리는 쉴 새 없이 자동 바이브레이션을 주고 있었다. 그렇게 몇 줄을 읽다가 도저히 못 읽겠어서 "누가 좀 읽어줘 나 대신"하며 훌쩍이자 안 울 자신있는 애가 읽으라며 아이들끼리 추천이 오가던 중, '아니다 내 글은 내가 끝낸다'며 다시 마음잡고 읽기 재개.
결국 몇 번 더 울보인증 하고 막판에는 흐르는 눈물을 막아보려 종이와 고개를 하늘 높이 들고 읽는 우스꽝스러운 장면까지 연출하며 마지막 '헤어짐이 너무 아쉬운 솔쌤'까지 읽고 나니 의도했던 것보다 분위기 더욱 촛불의식. 쌤들한테 "제가 제일 많이 울고ㅋㅋㅋ저 혼자 울고 있는 거 아녜요?"하며 우스갯소리 던졌던 며칠 전의 나는 미래를 보는 사람이 되어 버렸고.
헤어지는 순간이 돼서야 이 관계의 깊이가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제대로 가늠될 때가 있다. 만남이 지속되는 시기엔 대충 짐작으로 그 정도겠거니 여기던 마음들이 이별 앞에선 현실의 무게로 훅 다가오는 것이다. 그 무게는 짐작했던 것보다 가볍기도, 무척 무거워 깊은 흔적으로 오래 남기도 한다.
나의 2018년 기록에도, 주변인들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이 아이들이 주는 행복감이 얼마나 큰지 참 자주 곱씹었었는데 정작 당사자들은 내 마음을 제대로 들을 기회가 없었다. 종종 말하긴 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이, 심지어 자신의 마음도 아닌데 쉽게 가늠되지 않을 터였다. 그래서 더 잘 전하고 싶었다. 내가 얼마나 고마워 하는지, 얼마나 아끼고 좋아했는지, 이 이별을 얼마나 아쉬워 하는지.
학창시절의 6년을 보내고 이제 6년이 더 남은 아이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으로 자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한때는 그런 욕심 가져본 적 있었으나 나와의 1년이 그들의 남은 6년에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방향으로 자리할 수 있다면, 나보다 훌륭하신 선생님들을 만나 더더욱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다면, 그걸로 내 역할은 충분했다고 여기게 됐다. 잘 지내 아이들아. 몸도 마음도 건강한 사람으로 지금처럼 많이 웃고 행복하길.
2019. 02.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