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학년 사회에는 세계지리에 관련된 단원이 나온다. 아이들이 다양한 나라를 접했으면 좋겠어서 도입으로 나라별 수도 외우기를 제안했다. 총 45개 나라 수도를 알려주고 2주 뒤에 모둠별 스피드 퀴즈와 개인별 쪽지시험을 보겠다고 공지하자마자 여기저기서 한숨소리가 들렸다. "하..가뜩이나 영어단어에 외울 것도 많은데 이걸 언제 다 외워."
예전 같았음 부정적 반응에 주눅들어 갈등했을텐데 2주면 충분히 해낼 수 있다 믿었고 각자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하는 분위기를 그냥 두고 싶지 않아 용기를 북돋우며 추진하기로 했다. 대신 아이들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2주동안 수업시간 중 10-20분 정도씩을 빼서 외울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주었다.
아이들은 초반에는 하루에 몇 개씩 외우는 것도 귀찮아하고 버겁게 여겼으나 적응되고 나서는 쉬는 시간에도 알아서 외우기 시작했고 틈날 때마다 친구들끼리 테스트를 하는 등 열심히였다. 그 사이에서 나는 종종 시간을 제공하고 기한을 잊지 않게 되새겨주고 잘하고 있음을 확인시키는 일만 했을 뿐 직접적인 강요는 최대한 자제하려고 했다. 아이들의 힘을 믿고 싶었고 성장을 위한 자발적 노력이 성취감으로 다가올 수 있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주 금요일, 공지했던 날이 찾아왔다. 스피드 퀴즈 방법은 1) 모둠 내에서 문제 맞히는 순서를 정하고 한 문제씩 돌아가며 맞힌다. 2) 45문제 중 패스는 6번, 한 글자 찬스 1번 3) 패스와 찬스를 다 쓰면 무조건 맞혀야 넘어갈 수 있고 도저히 모르겠을 경우 후에 모둠 재시험을 본다. 4) 시간 제한은 없으나 가장 빨리 45문제를 통과한 모둠이 승리(대신 결과를 되새기며 공지하지 않는 것이 우리 반과 나의 암묵적인 룰 : 결과보다는 과정에 집중하기 위한 것)
노력한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아이들은 빠릿빠릿하게 문제를 맞혔다. 열심히 외웠으나 지나치게 긴장하여 답이 생각나지 않는 경우에도 최선을 다해 답하려 했고 그런 친구를 비난하지 않고 할 수 있다며 독려하는 분위기는 따뜻하고 귀여웠다. 결과는 다섯 모둠 모두 완벽 통과. 아이들도 나도 무척 뿌듯한 순간이었다. 감동적인 시간을 뒤로 하고 개인 쪽지 시험이 남았는데 갑자기 내부 분열이 생기고 말았다. 대립되는 문제는 '지금 보자'와 '월요일에 보자'. 의견이 분분하여 우선 거수로 파악해보기로 했는데 13 대 11로 지금 보자는 의견이 2표 더 많았다.
사실 나는 오늘이든 월요일이든 언제 봐도 관계없었다. 하지만 2표로 넘기기엔 표차가 너무 적었고 이 기회에 아이들이 의사소통을 통해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도 공부겠다 싶어 토론을 시켜보았다. 선생님은 개입하지 않을테니 알아서 예의있게 발언권 얻어 얘기하고 상대 의견 잘 경청해 주라는 이야기만 하고 뒤로 빠져 있었더니 바로 토론이 시작됐다. 각 입장들의 근거는 이러했다.
지금 보자 - 이왕 외운 거 기억이 잘 날 때 시험까지 치면 더 쉽지 않겠나/선생님이 2주 전부터 공지한 내용이니 기한을 미루는 것은 책임감 부족이다/오늘 결석한 애들은 선생님이 따로 시간을 주시면 되니 그 애들까지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주말에 끝나지 않은 시험의 압박이 있으면 부담스럽다 등.
월요일에 보자 - 아직 암기를 완벽하게 못한 친구들에게 더 기회를 주어 이왕이면 더 잘 보게 하자/이 시험이 운명을 결정짓는 시험도 아니니 며칠 더 주는 게 큰 문제겠느냐/결석한 친구들도 같이 한 번에 끝내면 좋지 않겠냐 등.
아직 정돈되지 않은 단어들, 감정적인 멘트들, 훈련되지 않아 우왕좌왕했던 진행과정들은 아쉬웠지만 아이들이 꺼낸 가치들보다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기술적인 것들은 얼마든지 반복적 훈련으로 개선할 수 있는 문제였다.
그 광경을 직접 지켜보고 있었던 나의 벅참을 이 글 안에 고스란히 담아낼 만큼 내 글그릇이 크지 못해 속상하다. 다만 이것만큼은 말하고 싶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보호하고 키워내야 할 연약한 존재로 표현한다. 물론 어른은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울타리가 되어줄 의무가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어른들의 생각처럼 정신적으로도 미숙한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이미 마음 속에 빛나는 가치들을 품고 있으며 어른보다 훨씬 유연하고 정의로우며 포용적이다. 정돈되지 못한 언어들은 성장하며 다듬으면 그 뿐, 오히려 어른의 관점에서 그 가치들을 은연 중에 죽이게 만드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늘 뜻하지 않은 감동과 충격을 주는 아이들. 나의 거울이자 스승인 이들을 늘 어려워하고 조심스레 대할 줄 아는 어른으로 오래오래 곁에 남아 많이 배우고 싶다.
2018. 12. 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