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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sory Nov 14. 2019

과거를 회상하며.

첫 연애와 나를 완전히 분리시키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두 사람이 만나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고 사랑하다 이별하는 것, 그것이 연애의 시작과 끝이라 여겼다. 하지만 연애가 종료됐다고 마음까지 종료버튼이 눌러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 않은 이별을 다시 되돌리고 싶어 나는 수많은 시간을 과거에서 살았다. 니가 없는 현재는 나에게 아무 것도 아니었고 어떻게든 너와 다시 잘 될 수만 있다면, 우리가 다시 행복하게 웃었던 시절로 갈 수만 있다면 나는 영원히 과거에 머물러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때의 나에겐 아예 종료버튼 자체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절대로 만들 수 없었던 그 버튼이 너는 금방 만들어졌고 이별 후의 현재를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갔다. 마음이 엉망진창이라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던 그 때의 내겐 너의 태연함보다 원망스럽고 미운 것은 없었다. 나는 몰랐다. 이런 마음을 어떻게 끝내야 하는지. 너는 자꾸 멀어지고 나는 과거에 살고. 우리가 헤어져야 한다면 나는 이후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답이 없었다.


그저 견뎌야 했다. 답을 모르는 것들은 온몸으로 고통을 받아내는 것이 답이었다. '시간이 약이다.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은 너무도 무책임하고 속편한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지만, 그것만이 위로인 때이기도 했다. 그 시간들을 어떻게 지나왔을까. 지금 돌이켜봐도 까마득하고 깜깜한 그 어둠의 터널에 갇혀 미아처럼 지냈던 수많은 불면의 밤과 불안의 시간들. 참 미련하게도 너무 오랜 시간 붙잡고 끝도 없이 나를 할퀴고 원망하고 안쓰러워 했다.


이 연애가 완전히 끝나고서야 알았다. 미련이 많은 사람은 남들보다 훨씬 더 오래 과거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 미련은 나 자신만이 종결지을 수 있다는 것을. 나의 실질적인 연애기간보다 미련으로 더 오래 앓았던 연애종료기간까지 마침표를 찍고 나니 어느새 20대 후반이 되어 있었다.


그는 글을 무척 잘 쓰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의 글이 좋았고 그의 깊은 세계를 동경했다. '내 생각'이란 것이 정립되지 못했던 새내기 대학생이었던 내게 정돈된 생각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풀어내는 능력만큼 멋진 것은 없었다. 책을 가까이 하고 계속해서 글을 쓰고 고민하고 더 나은 글을 쓰고 싶어 욕심부리는 그의 모습이 그 나이대의 다른 이들보다 훨씬 어른스러워 보였다. 그의 글은 회색빛이었고 늘 우울한 구석이 있었는데 내가 닿아보지 못한 감정을 이해하는 사람이구나! 싶어 시시하지 않아 좋았다.


하지만 그의 우울함은 우리 관계에는 큰 독이 될 때가 많았다. 대화를 중시하는 내게 그는 늘 나중에, 를 말했고 자신의 감정이 깊어지면 동굴로 들어가 한참을 나오지 않았다. 언제 나올 지도 모를 동굴 앞에서 늘 전전긍긍하는 것은 나였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우리 둘다 참 어렸다. 어른스럽다고 해봤자 결국 20대 초반이었던 우리에게 감당하기 버거운 감정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어설프게 견딜 수밖에 없었던 때였다. 아무래도 그의 삶이 지녔던 우울함도 한 몫 했을 것이기에, 그때도 지금도 그를 원망하기 보다는 감정들을 어찌 처리해야 될 지 스스로도 몰라 버거워했던 어린 날의 그를 안쓰러이 여기는 마음이 더 크다.


그리고 지금은 생각한다. 자신이 마주한 슬픔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만큼 그 사람을 제대로 알 수 있는 것은 없다고. 그의 글에 묻어났던 우울감과 슬픔은 그가 감당할 수 있는 몫이 아니었기에 가능한 부분이었다. 그는 슬픔을 짊어지고 사는 자였지, 슬픔을 이해하고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의 성향이 자신의 슬픔을 더욱 크게 굴리고 살게 만들었던 것도 같다.



나는 지금의 그가 그때보다는 좀 더 행복하길, 슬픔에 매몰되지 않고 보듬으며 살아가길 진심으로 바라지만 언젠가 만날 나의 그 사람은 삶에 솔직하고 슬픔을 직시하되 정체되지 않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그걸 극복해내고 앞으로 나아갈 사람이라는, 그것을 혼자가 아니라 나와 함께 이겨낼 것이라는 따뜻하고 튼튼한 믿음을 주는 사람이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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