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쉽게 좌절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순발력 부족한 나는 준비되지 않은 질문에는 다음 말을 내뱉기 전까지 공백을 두는 게 기본인데, 이 질문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마치 누군가가 물어보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이번엔 내게 질문이 돌아왔지만 사실 나는 자주 주변인들에게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고, 어떻게 살고 싶냐고 묻곤 했다. 이 간단한 문장이 상대의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줬기 때문이다. 무언가가 되고 싶다는 강한 욕망은 과거의 반성에서 나올 수밖에 없으니까. 과거보다는 조금 더 나은 자신이 되고 싶다는 인간의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바람이 나의 현재에 행동 부스터를 달아주어 우리의 미래는 지금보다 더 나아지리란 믿음을 갖게 해준다는 걸 아직까지 믿는 나에게 그 질문은 늘 중요하고 유효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람의 과거에는 무엇이 부재했고 무엇이 차고 넘쳤는지, 그게 어떤 의미였기에 현재의 나는 그것들에 매달리며 채우고 싶어하는지, 그래서 결국 어떤 사람으로 자리하고 싶은지, 그런 삶을 꾸리며 사는 미래의 나는 어떤 모습일지를 고민하는 그 모든 과정에 함께하는 일이 좋았다. 이야기를 통해 그의 삶을 짧고 굵게 나눠갖는 기분이었다. 이 시간여행으로 내가 알지 못했던 그의 조각들을 모으고 그 이야기 속에서 결국 나 자신도 돌아보게 되는 일들이 어떤 책보다도 유의미하고 흥미로웠다.
이토록 내게 의미있는 질문이니 상대에게도 쉽고 가벼운 답변으로 돌려주고 싶지 않았다. 왜 쉽게 좌절하지 않는 사람이, 쉽게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은지 진심을 다해 답해주고 싶었다.
나는 자주 아이들의 솔직함이라고 포장한 무례에 상처받았다. 아직 형체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아이디어나 이야기들이 그들의 한숨이나 하기 싫다, 재미없겠다, 왜 해야 하나 등등의 반응과 섞이면 바람빠진 풍선처럼 방향을 잃고 푸쉬식 꺼지려고 했다. 상대의 눈치를 지나치게 보는 소심한 나는 그럴 때마다 진도 5.0 이상의 동공지진이 일어났고 '그래, 그럼 하지 말자'는 말이 가득가득 차올랐지만 꾸역꾸역 삼키며 진행할 때가 많았다. 이런 반응들을 한두 해 만난 것도 아니니 익숙해질 만도 했지만 익숙해진다고 상처받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약간의 내성이 생겼을 뿐.
하지만 그 순간들을 버티고 활동을 잘 마무리하면 아이들의 반응은 처음과 분명 달랐다. 재밌다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고 설문조사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이 대다수인 경우도 많았다. 그런 경험들이 조금씩 쌓이다 보니 첫 반응이 별로여도 뚝심있게 밀고 나가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붙었다. 물론 아직도 무례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긴 하지만 이런 반응에 덜 주눅들기 위해 중요한 질문을 품을 수 있게 된 건 좋은 일이었다. '이 활동은 아이들을 위한 것인가, 그렇다면 아이들의 성장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목소리가 큰 사람들 중 많은 경우가 부정적 반응을 강하게 표현하는 데 자신의 성량을 사용한다. 물론 긍정적인 선동으로 사람들을 으쌰으쌰하게 만드는 고마운 분들도 계시지만 대부분은 부정적이고, 희한하게도 이놈의 듣는 귀는 긍정적인 목소리보다는 부정적 목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그 반응이 다수의 목소리인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풍부한 성량에 우선 한 번 좌절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는 말이 나온 것인가. 역시 옛말 틀린 거 없다 없어.
그러나 그 좌절은 사실과 무관할 수 있다. 다수의 사람들은 나를 지지하며 함께하고 싶어할 수도 있다. 물론 이것 역시 명확히 알 수 없는 일이나 목적이 분명하고 꼭 밀고 나가야 할 일이라면 성량에 지지 말고 원하는 바를 쭉 지켜나가는 인내심과 일관성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서 사실을 확인하는 작업을 하면 된다. 나의 추진력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한지, 이 결과물이 유의미한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물론 한 번에 모든 것을 알 수 없다. 하지만 때론 마이웨이가 무척이나 필요한 때도 있는 법. 나의 길을 내 의지로 가봐야 똥인지 된장인지, 더 가면 길이 끊겨버릴지, 새로운 길이 생길지 알지. 들리는 대로 보이는 대로 타인을 판단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것은 나에게도 잘 적용해야 한다. 사람들의 표면적 반응에 일희일비하며 에너지를 쏟다 보면 정작 중요한 것을 포기해버리는 더욱 안타까운 결과가 생길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마이웨이는 외롭고 어렵다. 뚝심 찾으려면 웬만한 배짱으로는 어림없고 꽤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덜덜 떨면서도 용기내는 마이웨이 피플들에게는 사소하지만 표현되는 진심어린 응원이 너무도 소중하다. 성량 피플들에게 지지 않을 힘은 거기서 온다. '나는 너를 지지하고 있어'. 때론 한 줄기의 빛이 한낮의 태양보다 밝고 따뜻한 때도 있다.
질문자의 물음이 나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닿아 이렇게 이야기가 되었다. 나의 대답 안에 질문자의 마음에 닿는 것들이 존재하길. 김연수 작가님이 책을 내고 나서 자신은 준 적이 없는 것들을 독자들이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기해했다고 한다. 그리고 깨달았단다. 이건 내가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구나. 노력하지 않아도 불가항력적으로 전달되는 게 있구나.
그러나 나는 김연수 작가님이 아니라 열심히 노력했다. 전달하고 싶은 것들이 있었다. 네가 그것도 받고 아닌 것들에서도 받는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꼭 무언가를 받지 못했어도 내 진심은 받았으면 좋겠다고 욕심 부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