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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slee Jan 26. 2022

'반려견 천국' 오스트리아 여행객을 위한 안내서

'동그람이:동물 그리고 사람이야기' 에 연재된 글입니다.

오스트리아와 호주(오스트레일리아)를 혼동하는 사람은 있어도, 빈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차르트와 요한 슈트라우스가 활동한 음악의 도시, 한때 유럽을 호령하던 합스부르크 제국의 황제가 살았던 도시, 도시 곳곳에서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의 작품을 볼 수 있는 도시. 빈은 도시 자체로 낭만을 느끼게 한다. 작년, 꽃 같은 할아버지들이 여행하는 방송을 통해 더 알려지면서 한국인 관광객 역시 많이 늘었다.

빈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겐 중세 모습을 간직한 도시 풍경도 이국적이겠지만, 빈 시내 곳곳을 자유롭게 누비는 반려견의 모습도 새롭게 보일 것이다. ‘예술과 낭만의 도시’라는 수식어 외에 빈의 별칭을 붙여보자면, ‘반려견의 천국’이라 부르고 싶다.  동물복지 선진국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은 어린이 놀이터 면적보다 반려견 놀이터 면적이 더 넓을 정도로 반려동물을 위한 시설이 잘 갖춰진 도시이기 때문이다. 반려인에게는 확실한 의무와 책임을 지우는 동시에 반려동물에게는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는 오스트리아 동물법 덕분에, 빈을 찾은 여행객들은 관광지에서도 많은 반려견들을 종종 만날 수 있다. 

슈테판 성당 인근에서 수지와 함께 걷다가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이처럼 시민과 관광객이 한데 모인 구시가지에서도 반려견을 종종 볼 수 있다.

빈을 찾는 한국 관광객들이 늘어나는 만큼, 반려견을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 반려견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유용할 몇 가지 여행 팁을 전하려 한다.

1. 관광지에서 반려견 만나도 놀라지 말아요

유럽 여행을 해 본 사람이라면 모든 여행에 앞서 ‘구시가지’의 위치를 찾을 것이다.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에도 불구하고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유럽 도시에서 구시가지는 관광명소들의 집합소이자 실질적인 중심부 기능을 하고 있다. 빈의 구시가지 ‘인네레슈타트’는 모차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치러진 슈테판 대성당을 중심으로 큰 원형을 그리고 있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 촬영지인 오페라하우스, 마리 앙투아네트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호프부르그 왕궁 등 역사적인 명소들을 만날 수 있다. 

인네레슈타트는 관광객은 물론 현지인들도 쇼핑을 할 때마다 찾는 만큼 언제나 북적인다. 많은 사람들만큼 많은 반려견을 만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유럽 사람들은 여행할 때 반려견을 데리고 다니기도 하는데, 그래서 빈의 호텔들은 반려동물이 출입할 수 있는 곳이 많다. 호텔 야외 벤치에서 반려견과 함께 식사하거나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도 종종 볼 수 있다. 호프부르그 왕궁에서 궁전 산책로와 마당에서도 반려견을 만날 수 있다. 

2. ‘반려견 출입 금지’ 표시 없으면 모두 반려견 출입 가능! 

오스트리아에서 이 표지판을 본다면 그곳은 반려견 출입통제 구역이라는 뜻이다.

반려견 금지표시가 없는 곳은 출입이 가능한 것일까, 불가능한 것일까. 한국에서는 후자가 상식에 맞는 경우이겠지만, 빈에서는 다르다. 반려견 출입 표시가 따로 없다면, 출입이 가능하다고 간주해도 좋다. 빈은 관광지 외 주거지역에도 안전 표지판만큼이나 반려견 출입 표시를 꼼꼼히 해 놓고 있는 덕분이다.

빈 사람들은 쇼핑이나 나들이를 갈 때도 종종 반려견을 동반한다. 반려견 금지표시가 있는 가게 외에는 대부분, 거의 모든 가게에 반려견 입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유동인구만큼이나 유동 반려견도 많은 슈테판 대성당 거리에 있는 가게들에서는 오히려 반려견을 환영해 주는 분위기이다. 좁은 가게 안에서 반려견을 만나더라도 놀라거나 물릴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통제되지 않는다면 반려견을 데리고 좁은 공간으로 들어오지도 않았을 테니 말이다.

반면 어린아이들이 노는 모든 놀이터, 수영장 등에는 반려견 출입 금지 표시가 확실히 되어 있고, 박물관, 미술관, 왕궁 내부에도 반려견 출입 금지 표시를 볼 수 있다. 슈퍼마켓도 반려견 출입이 엄격히 금지된다. 대신 마켓 앞에는 반려견을 묶어 둘 수 있는 고리가 마련되어 있다. 슈퍼 앞에 오도카니 앉아 반려인을 기다리는 모습은 정말이지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하지만 귀엽다고 함부로 만지는 것은 권하지 않는다. 귀여운 외형을 가졌더라도, 반려인의 통제가 없는 상태에서 접촉은 사고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반려견이 혼자 있다 하더라도, 허락 없이 반려견을 만지는 것은 큰 실례로 여겨진다. 간혹 혼자 있는 반려견에게 해코지하거나, 훔쳐 가는 일들이 괴담처럼 돌고 있기 때문에, 혼자 있는 반려견에게 접근하는 모습은 괜한 오해를 살 수도 있다.   

카를 성당 앞에서 수지와 함께 찍은 사진(왼쪽). 오스트리아에서는 반려견 출입 금지 표시만 없으면 카페 같은 곳도 언제든 동반 입장이 가능하다.

반대로 훈데아우스라우프(Hundeauslauf) 라고 쓰인 반려견 모양의 표시판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리드줄을 풀어도 된다는 뜻이다. 즉, 빈에서는 금지표시가 없다면 반려견 입장이 허용된다는 것으로 간주해도 무리가 없다. 은행, 우체국, 왕궁 정원까지… ‘이런 곳에 들어와도 되나?’ 싶을 정도로 여기저기서 반려견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반려견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그 공간이 불편할 수 있지만, 항의한다고 해서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 도시에서는 반려견 역시 방문객과 똑같이 그 공간에 있어도 된다는 ‘승인’을 받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만일 반려견과 함께 여행 중인 사람이라면, 표시판이 없을 때 이런 곳까지 반려견이 가도 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빈은 사람 못지않게 반려동물에게도 출입의 자유를 주는 도시니까 말이다.

3. 이 말은 기억해요, ‘강아지 만져도 되나요?’

빈의 주요 교통수단인 '트램'에 탄 수지와 나. 창밖의 오스트리아 의회 의사당을 바라보고 있다.

반려견을 무서워하는 사람에게 빈은 불편한 도시일 수 있다. 한국에선 TV에서나 가끔 볼 만한 대형견들이 활보하고, 좁은 공간에선 나도 모르는 새 반려견 머리통이 무릎에 닿을 수도 있다. 호텔이며 레스토랑, 카페, 버스, 지하철 등 모든 곳에서 반려견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려견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반려견에 트라우마가 있거나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반려인들이 인지해야 할 부분이다. 반려견의 천국 빈이라고 말했지만, 반려견에게 천국이 될 수 있는 것은, 반려견들이 도시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충분할 정도로 교육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형견들이 낯선 이에게 뛰어오르거나 짖는 모습은 보기 힘들다. 조심스레 위로해 보자면, 먼저 관심을 주지 않는다면 반려견들도 당신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  무서운 마음에 여러 번 돌아보고 쳐다보는 것은 오히려 반려견의 관심을 유도하는 일이 될 수 있다. 한 공간에 있더라도 마치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면, 반려견도 당신을 그냥 지나칠 것이다. 

혹시 강아지가 너무 좋아서 인사하고 싶다면 먼저 반려인의 허락을 구하기를 권한다. 교육 중이거나 다른 이유로 반려견과 사람의 접촉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번은 길에서 처음 보는 반려견이 나에게 깡충깡충 뛰며 반가워하기에, 웃으며 손등을 내밀려 했더니 아직 교육이 끝나지 않았으니 만지지 말라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이런 경우가 아니어도, 반려견을 만지기 전 물어보는 것은 오스트리아 사람들의 기본적인 에티켓이다. 비글인 수지는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인데, 아주 어린아이조차 “강아지를 만져도 되나요?”라고 내 허락을 구한 뒤에 수지와 인사한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반려견들이라고 해서 모든 반려견들이 잘 교육된 것은 아닌 것처럼, 오스트리아에서도 무턱대고 강아지를 주무르는 아이들이 있다. 최근 만난 아이도 자기도 집에 반려견이 있다며 수지를 따라다니며 꼬리와 귀를 마구 잡았다. 나는 단호하게 “더 이상은 안돼”라고 얘기했고, 아이의 아버지가 사과하고 아이를 데리고 떠났다.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반려인들은 자신의 반려견에 대한 관심에 아주 호의적이다. 

 “다프 이히 이어렌 훈드 슈트라이펜?”

(Darf ich Ihren Hund streicheln? · 당신 강아지를 만져도 되나요?)

빈에 가기 전, 이 문장을 기억하자. 이 말을 건네고 나면 오스트리아의 반려견들을 마음껏 사랑해줄 수 있을 것이다.

빈 대학교 입구에서 만난 시민이 수지를 귀여워해 주고 있다. 이처럼 에티켓을 갖춘 이들이 있어 수지는 빈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곤 한다. 


꽃이 피고 새싹이 돋아나는 봄이 오면, 인네레슈타트는 관광객과 빈 시민들, 그리고 반려견이 한데 모여 북적일 것이다.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는 수지도 거리에서 누가 나를 예뻐해 주지 않을까 눈을 반짝이며 시내를 돌아다닐 것이다. 만일 이 글을 읽은 독자 중 빈 여행을 온 사람이 있다면, 그래서 만일 시내를 걷다 수지를 본다면, “수지야 안녕!”이라고 반갑게 인사해주기를. 수지도 나도, 언제든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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