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고민하고 망설이던 일을 준비하려고 한다. 바로 수지의 중성화 수술이다. 암컷인 수지에게 중성화는 생식활동을 막는 것뿐 아니라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다. 폐경기가 없는 반려견은 나이와 관계없이 언제나 임신 가능성이 있고, 생식 기관의 질병 위험성이 있다.
수지를 입양할 때만 해도 우리 부부는 수지의 2세를 기대했다. 새끼를 낳고 키우는 것은 수지가 누릴 수 있는 권리이자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수지처럼 예쁜 새끼를 보고 싶은 내 욕심도 있었다.
'수지 주니어'에 대한 기대와 현실
하지만 몇 년 동안 수지와 살면서 현실적인 문제들이 눈에 들어왔다. 28평 남짓한 아파트는 우리에겐 충분했지만, 활동성의 대명사인 비글 종인 수지에게는 그렇지 않은 듯했다. 산책도 큰 문제였다. 실외 배변을 하는 개는 최소 하루 3번 이상 산책을 해야 하는데, 수지 하나로도 벅찬 마당에 많은 개를 책임질 자신이 없었다. 비용 역시 고려의 대상. 먹이고 입히는 것 외에도 오스트리아 반려인의 의무인 반려동물 세금과 높은 병원비는 새 가족을 들이기 전 충분히 생각해야 할 문제였다.
또 다른 장애물은 ‘수지 주니어’들의 입양 문제다. 중형견인 수지의 체급상 새끼가 최소 5마리 이상 태어날 것으로 예상되는데 오스트리아 동물법상 허가받은 브리더가 아닌 개인은 반려동물을 판매할 수 없고, 인터넷에서 입양을 알선해서도 안 된다. 그렇다고 강아지를 아무에게나 보낼 수도 없었다.
현실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수지 주니어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했지만, 올해 만 다섯 살이 되는 수지의 나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여전히 똥꼬발랄했지만, 수지도 어느새 중년으로 넘어가는 나이가 된 것이다. 사람의 35~40살에 해당하는 수지에게 출산을 위해 무리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어린 시절 수지의 모습. 이렇게 예쁜 수지를 빼닮은 '수지 주니어'를 보고 싶은 게 내 욕심이었다.
'중성화' 놓고 합의점 찾지 못한 개엄빠
수지 주니어에 대한 마음을 단념하자, 중성화를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분명해졌다. 새끼를 낳을 생각이 없다면, 발정기에 느낄 스트레스도 줄여주고 유선종양이나 자궁축농증을 예방하기 위해 중성화 수술을 받는 게 좋아 보였다. 하지만 수지 아빠는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그는 암컷에게 ‘중성화’ 란 여성 기관의 제거, 즉 난소와 자궁 적출인데 발생하지 않은 위험에 대비해 신체기관을 제거한다는 것은 과잉진단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남편 주장에, 반려견들이 일 년에 두 번 찾아오는 발정기에는 밥을 먹지 못할 정도로 체력적, 심리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만큼 고통을 없애주는 것만으로도 수술의 의미는 있다고 반박했다. 끝나지 않는 설전 끝에, 수지 주치의 선생님과 중성화 상담을 받기로 합의했다.
우리 주장을 들은 주치의 선생님은 중성화를 하는 것이 가족의 생활을 쉽게 만들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발정기는 반려견 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상당히 곤혹스러운 기간이다. 발정기에는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할 정도로 심한 기분 변화를 보이고, 가출하는 경우도 있다. 수지도 발정 기간에 길에서 만난 허스키를 따라가겠다며 목줄을 풀고 달아난 적이 있다.
하지만 남편이 날을 세웠던 유선종양과 자궁 축농증의 예방조치로 실시하는 중성화는 주치의 선생님도 유보적인 입장이었다. 유선종양과 자궁축농증은 호르몬으로 인해 발생하는 질병으로, 호르몬 영향이 적을 나이일때 예방효과가 크기에 첫 생리 전 혹은 첫 생리 후를 가장 적합한 시기로 본다. 이 말은 곧 생리를 많이 할수록 예방효과가 낮아진다는 것을 뜻한다. 수지의 주치의는 2살 넘은 반려견이 중성화로 얻을 수 있는 예방효과는 사실상 미미하다고 봤다.
여기까지 들어보면 수지에게 중성화는 이미 늦은 이야기 같지만, 그렇다고 수술 효과가 아예 없지는 않다. 발정 없이 수지의 상태를 편안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고, 지속적으로 호르몬에 노출되는 것보다 나은 건강 상태를 예상할 수 있다. 같은 병의 진단과 치료법이 다르듯, 중성화에 대한 입장도 반려인은 물론 전문가들도 의견이 분분하다. 주치의 선생님 의견과 내가 알아본 중성화의 장단점은 이렇다.
장점
단점
1. 발정으로 인한 기분 변화 감소
2. 유선종양 발병 위험성 감소
3. 영구 피임
1. 수술 부작용으로 요실금 발생 가능성
2. 체중 증가
3. 거친 모발(Baby fell) 가능성
4. (매우 드물게) 중성화 수술 후 심장 등
내장 기관 암 유발 가능성
5. 수면마취로 인한 부작용 위험
이처럼 오스트리아 내에서 중성화 논쟁의 핵심은 대부분 ‘내 반려견의 건강’이다. 유기견 문제에 따른 개체수 조절 등 사회적인 문제가 논쟁에 함께 담겨 있는 한국에 비해 사뭇 다른 점이다. 애초에 반려견의 탄생부터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개체수 조절이라는 사회적 문제가 개입될 여지는 많지 않다.
'아프면 그때 치료하지' vs '원치 않는 임신은 어쩌고?'
오스트리아에서도 중성화는 첨예한 이슈다. 오스트리아 매체 dog.net은 중성화에 분분한 의견을 다룬 기사를 내기도 했다.
오스트리아에서 암컷 강아지의 중성화는 대부분 자궁은 그대로 두고 난소만 제거하는 식으로 수술을 한다. 중성화의 가장 큰 목적인 유선종양과 자궁 축농증의 원인이 호르몬인 만큼 난소 제거만으로도 이를 예방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대부분 난소와 자궁을 동시에 제거하는 방법을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방식은 나중에 자궁이탈 등 자궁에 생기는 문제를 예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더 넓은 기관을 제거할지 여부는 반려견의 상태를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반려인이 판단할 문제인 것 같다.
강아지 놀이터에서 만나는 수지의 친구들은 대부분 중성화를 했다. 강아지 놀이터 ‘훈데존’은 반려견들이 자유롭게 뛰어노는 장소라 마운팅도 종종 목격되는데, 때문에 반려인들과 나누는 첫 대화가 중성화 여부인 경우가 많다. 우리가 만난 수컷들은 거의 100% 중성화 수술을 받은 아이들이었다. 중성화 수술에 대한 고민을 얘기하자 남자아이인 로트와일러 ‘새미’ 아빠는 새미가 다른 반려견을 의도치 않게 임신시킬 수 있다고 걱정해 입양 직후 중성화를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로 안면이 없던 반려인들은 상대 반려견이 수컷인 경우엔 멀리 떨어져 지나가기도 한다. 반려견의 임신은 암컷뿐 아니라 수컷 반려견 부모에게도 중요한 문제였던 것이다.
훈데존에서 만난 수컷 강아지들의 견주는 대부분 원치 않는 임신을 예방하기 위해 중성화를 진행했다.
암컷은 중성화를 한 아이가 50%, 안 한 아이가 50% 정도였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중성화를 하지 않은 암컷 반려인들은 2세에 대한 계획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동시에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반려인도 더러 만날 수 있었다. 다른 점이라면 중성화 목적을 질병 예방에 두고 있는 나와 달리, 다른 반려인들은 임신 가능성과 발정기의 불편함 때문에 중성화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의외로 오스트리아 반려인들은 자궁축농증에 대한 이해가 낮았고, 유선종양도 발병 후 치료하면 되지 않느냐는 입장도 있었다. 중성화를 한 암컷들은 수컷과 마찬가지로 입양 직후, 1세가 되기 전 수술받은 사례가 많았다. 수지처럼 나이가 어느 정도 든 암컷 반려인들은 마취, 개복수술, 수술 후유증 등 수술 자체에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도 꽤 있었다. 중성화의 목적과 이유가 다양한 만큼 수술의 찬반 여론 역시 제각각이었다.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고민은 깊어진다. 수술을 결정한다면, 생리 후 약 2~3개월 후가 가장 적절한 상태라고 한다. 엄마의 생각을 눈치챘는지 수지의 ‘그날’ 이 예정일을 두 달 훌쩍 넘겼다. 의도치 않게 연장된 수술 적정기에, 나의 고민의 시간 역시 길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