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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slee Jan 26. 2022

이불 밖은 위험해! 오스트리아 개들의 새해

'동그람이:동물 그리고 사람이야기' 에 연재된 글입니다.

12월은 한 해의 마지막을 정리하고, 새해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한 시기다. 특히 크리스마스부터 새해 첫날까지를 질베스터(Silvester∙새해)라 부르며 가장 큰 명절로 여기는 오스트리아에서는 12월 내내 크리스마스와 새해맞이 행사로 도시가 들썩거린다. 작은 오두막 같은 상점들로 가득한 크리스마스 마켓엔 즐거운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넘치고, 거리엔 크리스마스 케익과 쿠키의 달콤한 냄새로 가득하다. 술과 단 것을 싫어하는 나조차도, 연말엔 머그컵에 과일주를 흘짝거리며, 바닐라 과자를 깡통에서 꺼내 먹는 등 연말 분위기를 내곤 한다.

사람들에게 축제의 연속인 12월은, 강아지 가족이 한 해 중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달이기도 하다. 유럽 겨울 추위는 '시베리아 추위'라 불릴 만큼 춥고 힘들다. 게다가 기간도 매우 길어서 빠르면 10월 중순부터 시작되는 겨울은 길게는 4월까지도 이어진다. 극세사 이불과 전기장판을 좋아하는 수지에게 긴긴 겨울은 그다지 좋지 못한 계절이다. 아스팔트는 길이 얼어붙는 것을 막기 위해 뿌려놓은 염화칼슘 때문에 발바닥이 다치기도 하고, 잔디는 흙이 얼어붙은 탓에 신나게 뛰어놀기 힘들다. 옷 입기 싫어하는 수지에겐 외출마다 입히는 외투 역시 겨울이 싫은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긴 겨울은 수지가 가장 싫어하는 시기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최악은 바로 12월 31일에서 새해로 넘어가는 시각에 펼쳐지는 질베스터(Silvester)를 기념하는 불꽃놀이 행사다.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유럽 도시들은 새해 첫날 불꽃놀이를 즐긴다. 주요 관광지에서 진행되는 불꽃놀이 외에도 개인들 역시 크고 작은 화약들을 구매해서 집 창문, 길거리, 광장에서 불꽃놀이를 벌이곤 한다.

성대한 불꽃놀이, 반려견에게는 '공포의 대상'

1월 1일로 넘어가는 자정, 사람들은 불꽃놀이를 즐기지만, 그 커다란 소리는 수지에게는 큰 스트레스다

빈에서 가장 성대한 불꽃놀이는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자정,  호프부르크 궁전에서 펼쳐진다. 호프부르크 궁전은 우리 집에서 지하철로 4정거장 정도 되는 거리임에도 불꽃놀이가 시작하면 우리 동네가 환해질 만큼 크고 웅장하다. 하지만 웅장한 만큼 폭죽소리도 거대하기 때문에 사람은 물론 동네 강아지들이 까무라칠 만큼 놀라기도 한다. 수지가 처음 맞은 질베스터 때, 수지가 놀리지 않도록 창문과 방문을 꼭꼭 닫아두었지만 허사였다. 수지는 폭죽의 굉음을 듣자 놀란 듯 방바닥에 설사를 하며 쇼파 밑으로 숨어버렸다.

불꽃놀이는 두려움으로 끝나지만, 더 위험한 것은 따로 있다. 길거리와 광장에서 벌이는 화약놀이다. 폭죽은 위험물질로 분류돼 있어 평소에는 허가를 받아야 구매가 가능하지만, 연말에는 화약을 구매하고, 터트리는 것이 허용된다. 그 크기 역시 바닷가에서 터뜨리는 폭죽같은 작고 귀여운 것들뿐 아니라, 쓰레기통이 터질 정도로 화력이 강한 폭죽이 공공연하게 터지기도 한다.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새해 첫날까지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골목에서 불꽃놀이가 이어진다. 이 불꽃놀이의 여파는 새해가 되고도 한참 동안 이어지는데, 새해 아침에는 밤새 터트린 화약에서 나온 매캐한 연기 때문에 밖에 다니기 힘들 정도다. 이보다 더 위험한 것은, 터지지 않은 채 길바닥에 널려 있는 불발탄들이다. 불발탄은 사람에게도 위험하지만, 강아지에게는 더욱 위험하다.

연말이 지나 새해가 되면, 어김없이 개인차원 폭죽놀이와 불발탄으로 인한 사고 소식이 일간지 한쪽을 차지한다. 부주의한 사용으로 크고 작은 화상은 물론 손가락이 다칠 정도로 큰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불발탄이 쓰레기통이나 바닥에 남아있어 쓰레기 청소부는 물론, 애궂은 아이들이 다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화약으로 인한 피해는 사람 뿐 아니라 반려동물에게도 매우 심각하다. 불발탄이 발에 밟혀 터지는 경우엔, 발은 물론 전신화상을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에서 새해 축제에 쓰이는 폭죽이 실제로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주는 실험 결과. 모형 손가락이 절단된 모습을 볼 수 있다.


한국의 '명절 스트레스'와 같은 '질베스터 스트레스'

우리나라의 추석, 설날이 어머니들의 명절스트레스가 되는 것처럼, 오스트리아의 반려동물들에게는 연말이 곧 질베스터 스트레스(Silvester Stress)가 되는 것 같다. 유기동물보호소에 따르면 연말이면 많은 반려견들이 먹지 못할 정도로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전문가들은 연말연시마다 반려동물 돌봄 수칙들을 강조하곤 한다.

동물들은 소리와 빛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질베스터에는 반려동물을 혼자 두지 말 것.

새해 첫날에는 반려동물을 집 밖에 나가게 하지 말 것. 폭죽놀이 공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동물이 숨어있기 좋아하는 장소에 머무르게 해 줄 것.

절대 목줄 없이 반려견과 산책하지 말 것

현관과 창문을 닫아 둘 것.

폭죽놀이를 하는 곳에서 반려동물과 산책하지 말 것.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낮은 볼륨으로 틀어두어, 바깥 소리에 덜 민감하게 만들어 줄 것. 

수지는 올해로 다섯 번째 새해를 맞이했건만, 아직까지 새해 불꽃놀이는 익숙하지 못한 듯 하다. 새해만 되면 꼬리를 감추고 숨을 곳을 찾는 수지를 볼 때마다 안쓰럽기 그지없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불꽃놀이는, 반려견에게는 즐기지 못할 굉음과 무서운 불빛, 그 이상이 되지 못할 것이다. 수지가 우리에게 오기 전엔 친구들과 파티를 하며 불꽃놀이를 보는 것이 연말의 연례행사 중 하나였었는데, 우리의 연말 모습은 수지를 통해 많이 바뀌었다. 텔레비전으로 불꽃놀이를 대신하고, 가족 모두 끌어안고 잠들며 마지막 날의 밤을 보내고 새해 아침을 맞기도 한다.

어릴 때는 1월 1일이 매우 특별하게 느껴졌었는데, 어른이 된 뒤에는 일 년 중 여느 날과 다를 것 없는 하루처럼 여겨왔다. 하지만 수지와 함께 새해를 맞이하면서 또다른 특별한 마음이 생겼다. 한 살에서 두 살로, 두 살에서 세 살로, 수지의 나이를 세어 가며 앞으로 남은 햇수를 건강하게 채워 나가는 것이 큰 소망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불 밖은 위험하니까' 새해마다 수지와 집에서 더 많이 놀아줘야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시작할 땐 언제나 큰 기대와 바람을 가지게 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기대와는 다른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새해 소망이 크고 밝을수록, 실망과 좌절 역시 클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낙담할 필요는 없다. 세상 잃은 표정을 짓다 가도 테니스공 하나면 행복해지는 수지처럼, 좋았던 나빴던 오늘은 지나가고 다시 새로운 내일이 올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수지가 쫑긋한 귀를 하고 나를 바라본다. 테니스공 소리를 들은 것일까? 연말과 새해를 지나는 동안 힘들었을 수지에게, 오늘은 어깨가 나가도록 신나게 테니스공을 던져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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