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예술작업은 무한 변신 중
좋은 삶은 어떤 삶일까? 무엇이 삶의 질의 차이를 만드는 것일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잘 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각자 자신의 삶에서 찾아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 대답도 살면서 변해간다.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으려면 자신이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일찍부터 이러한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즐겼고 중학교 때도 친구들과 독서를 통해서 이런 고민을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강남의 입시경쟁 속에서도 우리는 문학 작품을 읽고 좋은 삶을 위한 고민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낭만적인 학창 시절을 보냈다. 우리는 공부를 잘했는데 나만 점점 성적이 떨어져서 모두 걱정을 했다. 공부가 싫었던 것이 아니라, 내재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에 의해 내가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는 성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나도 그런 나 자신을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나에게 충실한 삶을 살기로 했다. 그래서 대학원을 졸업하고도 나와 내가 사는 세상을 알기 위해 10년을 더 연구하며 하고 싶은 공부에 몰입하였다. 나를 존중하고 내가 선택한 길을 묵묵히 걷기 위해 용기가 필요했고 그래서 ‘용기’가 작업 주제가 되었다. 사실 누구나 자신의 흥미나 호기심과 같은 요인들에서 유래된 내재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에 의해 살 때 가장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내가 어려서부터 미술을 즐기면서 했기 때문인지 미술의 즐거움과 미술놀이를 통한 잠재력 개발, 힐링 등 많은 좋은 영향을 경험했다. 그런 나의 자유로운 예술적 감성이 우리나라 교육실정과 잘 맞지 않아서 힘든 점도 있었다. 미술에 대한 열정과 우리나라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을 중고등학교 때부터 가지고 있었기에 나에게 미술과 교육은 내 삶에서 자연스러운 화두가 되었다. 그래서 작업과 함께 미술교육을 하면서 미술교육연구를 꾸준히 하였고 미술태교까지 연구하였다. 작업과 함께 다양한 공부를 하는 동안 주변의 친구들이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면서 행복함 못지않게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고, 듣게 되면서 도움을 주고자 시작한 독서들이 연구가 되었다. 연구를 할수록 많은 사람들에게 태교의 중요성을 알려야 하겠다는 생각이 더해져 갔다. 나는 연구를 하면서 인간의 정신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깊이 느꼈다.
그리고 내가 어려서 했던 즐거운 미술놀이를 많은 아이들에게 경험하게 해 주고 싶어서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아이들 미술교육을 했다. 오래 미술교육을 하면서 부모님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미술은 그 성격상 통합적인 교육이기 때문에 많은 부분에 좋은 영향을 주고 자신이 가진 잠재력을 잘 키울 수 있다. 그런데 아이들이 좋은 미술교육으로 감성이 풍부하고 창의력이 계발돼도 부모가 아이의 예술적 감성에 공감하지 못하면 아이들이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를 보게 되면서 큰 고민에 빠졌던 것이다.
부모님 특히 아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는 엄마의 생각이 중요하고 엄마들이 주체적으로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미술의 즐거움, 삶의 즐거움을 느끼고 삶에 대한 인식이 바뀐다면 아이들의 즐거움을 공감하고 같이 행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더 나아가 임산부가 예술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태아까지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내가 예술가여서 인지 항상 본질적인 부분을 고민하게 된 것이다. 엄마, 임산부가 행복하고 좋은 삶을 살 수 있어야 태아에게, 남편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고 그것이 가정의 행복으로 이어져 사회도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임산부의 행복은 남편과 주변 가족이 같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어른들이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하다. 어른들이 어른의 시각을 아이들에게 강요하지 않아야 아이들의 창의력을 살릴 수 있다. 아이들은 그 자체로 빨주노초파남보 각자의 색을 가지고 있고, 창의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육으로 아이들을 일률적으로 몰아가기에 문제가 생긴다.
내가 연구한 바에 따르면 아이에게 가장 신경 써야 할 시기는 임신 전 마음의 준비와 더불어 임신 기간부터 생후 3년까지라고 생각한다. 3세까지 양육의 시기를 지나 아이의 발달과정에 따라 부모도 훈육자, 격려자, 상담자, 동반자로 성장해 나가야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것은 생물학적으로도 타당한 말이다. 아이들은 어린 시절 그대로를 존중받아야 한다. 이러한 것을 알리기 위해 2013년부터 김호경미술태교를 강의를 해오고 있으며, 1년 동안 미술태교 칼럼도 썼다.
이제 점점 더 삶의 질을 높이는 좋은 삶에 대한 요구는 많아질 것이다. 고대 철학자들이 논의했던 행복론은 이제 우리 시대에 맞게 변화되어야 한다. 나는 예술이 삶의 질을 높이는 활동이라 생각한다. 예술은 행위 속에서 몸과 마음으로 느끼기에 자연스러운 변화를 이끈다. 직접 행동할 때만 느낄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다. 그래서 예술 활동을 통해 사람들이 순수해지고 교감이 되므로 연대감도 높아진다. 순수한 인간적 연대감은 집단적 이기주의를 만들지 않는다.
사회가 고도성장의 시대에는 어떻게든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곳에 취직만 하면 삶이 행복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고학력 사회가 됨에 따라 학력 인플레이션이 시작되고 고학력을 가졌다 할지라도 취직은 어려운 현상이 나타난다. 또 고학력 전문직에 있다고 만족도가 높은 것도 아니다. 높은 학력으로 취업만 하면 즐겁게 살아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던 사람들은 혼란을 겪게 된다.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행복은 없다고까지 말한다. 경쟁에 지친 사회 구성원들의 스트레스는 다양한 사회 문제로 나타난다. 그래서 ‘힐링 또는 마음의 치유’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누구나 자신의 정신 건강을 되돌아보는 시기가 오는 것이다.
나는 예술이 무한대(∞)이고 계속 변화하는 생명체라 생각한다. 그래서 예술에 대해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서도 쉽게 정의 내리기 어려운 것이다. 지금 동시대에서 일어나는 예술 현상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이 ‘무엇이 예술인가?’에 대해 일찍 질문을 던졌고, 확장의 문을 열어 놓았기에 나와 같은 예술작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나도 과거의 예술에 대해 집착하지 읺고, 지금 내가 선 자리에서 내가 느끼는 작업을 하고 있다. 나는 지금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 대해 느끼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것은 작업의 형태로, 기업과의 협업의 형태로, 교육의 형태로 다양한 변주를 하며 나타나고 있다. 좋은 시대를 만들고자 노력하신 많은 분들 덕분에 좋은 시대에 살고 있어서 감사하다.
LG전자와의 협업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55/0000468476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57/0001039157?sid=001
크리에이티브렉팅_정신건강프로그램, 폐휴대폰 캠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