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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경 Nov 10. 2019

미술과 인문학의 용기에 빠지다

꼬리에 꼬리 물기


김호경작가_소.플.아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용기, Acrylic on Canvas,2008

나는 어려서부터 세상이 너무 신기했고 참 궁금한 것이 많았다. 친구들과 다양한 놀이를 하고, 그림을 그리고, 만들고, 책을 읽고 보낸 ‘오늘’이 너무 재미있어서 ‘내일’이 기다려졌다. 어린이는 9시면 자야한다는 규칙이 우리 집에서도 적용되었던 것이 좀 아쉬울 정도였다. 이불 속에서 내일 재미있게 놀 생각과 오늘 읽다만 책의 다음 줄거리를 상상하며 잠에 빠져들곤 했다. 이렇게 예술 활동을 하며 자랐기에 감성이 풍부했다. 입시시절 아침 일찍 한강을 건너는 차 안에서 아름답게 반짝이는 물결에 감동하여 눈물이 흘렀다. 미술학부 때 실기시간에는 작업을 하다가 학우들에게 자작시를 낭송해주었다. 나에게는 이러한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렇게 나에게 자연스러운 미술작업을 지속해나갔지만, 대학원을 졸업하고 홀로 작가로 서야 할 때 다시 본질적인 질문을 하게 되었다.  “왜 그림을 그리는가?”, “그림이란 무엇인가?”,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표현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왜 표현을 하고 싶은가?” 등에 대한 질문이다. 물론 단순하게는 ‘그냥 좋아서’이다. 그렇다면 왜 미술을 좋아하는가? 내가 신비로운 이 세상을 보고 느끼는 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기 때문인 것 같다. 더불어 부모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DNA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나에게 그리기, 만들기, 글쓰기...등이 모두 나를 표현하는 것이기에 다르게 생각되지 않는다. 그냥 내가 표현하는 매체가 조금 다를 뿐이다.    


사실 우리 모두는 어렸을 때 예술가였다. 춤추고 노래하고, 그림 그리고, 엄마 아빠놀이로 연극도 했다. 그러한 표현으로 나와 주변사람들도 즐거웠다. 그런데 점점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길이 없어진다. 요즘은 아이들조차 그런 자유 놀이를 할 시간이 없다. 공부해야하고, 대학 가야 하고, 취직해야 하고, 결혼하기 위해 달린다. 그렇게 달렸는데 결과들이 만족스럽지도 않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내가 잘 사는 건가?”, “인간답게 잘 산다는 게 무엇인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부딪치게 된다.  사지선다형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 뇌에게 한 가지 답이 없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그 자체로 쉽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삶에서 자신에게 꼭 해야 하는 질문이다.  


사실 청소년기 진로를 결정할 때부터 10년 정도 주기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교육 선진국이라 불리는 북유럽의 몇몇 국가들은 주기적으로 자신의 삶을 점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어떻게 살아야 좋은 삶인지? 내가 어떨 때 가장 만족스럽고 행복한지? 등에 대해 고민해 보고 자신의 삶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스로 그런 질문이 올라올 때 잠시 멈춰 서서 숨 고르기를 할 필요가 있다. 나도 그런 시간을 갖기 위해 용기가 필요했고, ‘용기’ 자체가 내 작업의 화두가 된 것이다. 대학원을 나오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쳤지만 나도 이런 중요한 질문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겨를이 없이 달려온 것이다.    

  

그러한 길을 가고자 하니 미술작업과 함께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인문고전에 대한 관심이 많았지만 해야 할 일들에 밀려 충분히 시간을 갖지 못했기에 갈증이 남아 있었던 것 같다. ‘용기’라는 단어를 찾아보는 것으로 시작했는데 꼬리에 꼬리를 물다보니 인문학의 바다를 헤엄치고 있었다. 인문학(人文學, / humanities)은 인간과 인간의 근원문제, 인간의 사상과 문화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되어 있다. 인문학 공부는 문학, 역사, 철학, 언어, 예술, 심리, 종교...등 인간이 세상에 새겨 넣은 다양한 무늬들을 살펴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동·서양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모든 정보가 담긴 그릇(용기)이다. 그러므로 인문학을 하면 자신과 세상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되고, 자신은 세상에 어떤 무늬를 그려 넣을지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한국에 살며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삶의 많은 대부분이 서구화되었다. 그러므로 동·서양 인문정신을 두루 살필 이유가 되었다. 동아시아의 유서 깊은 인문전통이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을 지속적으로 향상시키는 것을 중요한 덕목으로 여겼듯이 서양의 후마니타스 전통도 그러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리스는 서양 문명의 뿌리라 할 수 있으며, ‘교육’이라는 그리스 단어가 파이데이아(Paideia)인데, 고대 헬레니즘 문화권의 교육 이념과 제도를 포괄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파이데이아(Paideia)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어린이를 뜻하는 파이스(Pais)이다. 어린이를 키워 이상적인 사람으로 길러내는 것을 지향했다. 그러므로 그리스에서 인문학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교육을 지칭하던 말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강조되었던 것이 지혜, 절제, 용기, 정의 네 덕목이었다. 파이데이아는 헬레니즘 문화의 중심지였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고등교육의 모델이 되었으며, 후에 로마에 들어와 후마니타스(humanitas)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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