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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경 Oct 08. 2019

용기의 일상3

옛 사람들이 걸어온 산책길2_전라남도 강진 다산초당 외


유럽의 산책길을 다녀온 후 딱 10년만인 2017년에 전라남도 강진에 위치한 정약용의 유배지 다산초당에도 가보게 되었다. 항상 남도여행을 하고 싶었는데 기회가 왔다. 문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지원하여 해남의 행촌문화재단과 아트투어에서 진행하는 남도 수묵 기행을 갔다. ‘성옥기념관(조선내화 창업자인 고 이훈동의 88세 미수를 기리기 위해 자녀들이 건립한 문화 공간)’에서 추사, 소치, 미산, 남농으로 이어지는 남도 대표 예술가들의 작품 감상을 시작으로 이훈동 정원도 돌아보고 남농 기념관도 갔다. 그리고 해창주조장에서 막걸리 시음 체험도 했다. 바다의 창고라는 뜻의 ‘해창(海倉)’주조장은 적산가옥(적들의 재산_일제강점기)이다. 나는 술이 맞지 않는 체질이라 술을 못 마시는데 해창막걸리는 발효요구르트 같았다. 저녁이 되어 청자골 종가집에서 푸짐한 남도 한상을 먹고 백년사로 향했다.     


‘김호경의 즐거운 화실산책’ 화우들과 같이 한 여행이라 더욱 좋았고, 백련사의 따듯한 방에 모여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 들었다. 새벽녘에 청아하게 들려오는 목탁 소리에 깨어 창문을 열자 차갑고도 상쾌한 공기가 들어와 인사를 했다. 어제 늦게 도착하여 볼 수 없었던 풍경이 한 폭의 수묵화처럼 아름답게 펼쳐졌다. 남도가 왜 풍류와 예술이 흐르는 곳이라 하는지 몸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아침 식사 후 맑은 공기가 들어오는 방에서 주지 스님과 향기로운 차담을 나누었다. 그동안 마셨던 차와는 비교가 안 되는 발효차의 맛과 품격이 느껴졌다. 차담 이후 보슬비가 내리는 오솔길을 걸어 다산초당에 갔다. 다산초당 가는 산책길에는 백련사에서 재배하는 차밭과 야생차 밭이 있었다. 고려 때부터 자생해온 이 야생차 밭을 '다산(茶山)'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 정약용이 이곳에 유배와 지냈다는 의미로 '다산(茶山)'이라는 호를 지어 사용하였다.      



정약용의 다산초당     


고즈넉한 숲길의 분위기가 정약용의 마음 길을 걷는 것 같았다. 정약용은 강진 유배 생활 19년 동안 제자들과 함께 하였다. 녹우당에서 많은 책을 빌려 볼 수 있어서 600여권의 저서를 남길 수 있었다. 19년의 시간을 어떤 마음으로 살아오셨는지 고스란히 느껴지는 저서에 고개가 숙여진다. 목민심서(牧民心書)는 그의 방대한 저서 중 대표작이다. 나는 한 권으로 줄여진 목민심서(牧民心書)를 보았는데, 수령이 지켜야 할 지침(指針)을 밝히면서 관리들의 폭정을 비판한 저서이다. 제2부 율기(律己_자기 자신을 단속함) 6조 중 ‘1. 바른 몸가짐’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일상생활을 절도 있게 하고, 옷차림은 단정히 하며, 백성들을 대할 때에는 장중하게  하는 것이 옛날부터 내려오는 수령의 도(道)이다.’     

‘공사(公事)에 여가가 있거든 반드시 정신을 모으고 생각을 안정시켜 백성을 편안히 할 방책을 헤아려내어 지성으로 잘되기를 강구해야 한다.’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 다산은 민(民)과 국가 관계의 문제에서 ‘민(民)’의 주체성을 긍정한다. 조선후기도 부패와 횡포로 인한 어려움이 많은 가운데 빛나는 정신성은 살아있었다. 우리나라는 역사와 전통이 깊은 나라이고 그만큼 질서와 존중의 문화가 있었다. 자신의 자리를 잘 인식함으로써 오는 질서가 있었다. 자신의 자리를 잘 지키는 사람은 월권을 하지 않는다. 현재 여러 문제를 야기하는 갑을 문화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우리의 깊은 전통을 잊고 선조들의 좋은 정신성을 잊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우리 자신의 전통과 문화를 잘 세워야 다른 문화도 존중하는 성숙한 사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학자가 다진 사색의 길이 있어 반가웠다. 다산초당 마루에 앉아 방명록을 쓴 뒤 마당을 바라보았다. 보슬비가 내리는 고즈넉한 분위기에 취해 저절로 명상이 되었다. 도심에도 ‘다산의 산책길’ 등이 생겨서 시민들에게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줄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 들른 곳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찰 중 하나로 이름 높은 미황사였다.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비가 내려서인지 사찰의 분위기가 더욱 신비롭게 느껴졌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그런 느낌이 드는 것 같다. 옛 사람들은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었던 것 같다. 그래서 사람 ‘마음’의 중요성을 알고 헤아릴 줄 알았기에 영혼을 소홀하게 대하지 않았다는 것을 공간에 가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도 이 좋은 부분을 잘 이어받아서 물질적 풍요로움과 함께 영혼도 풍요롭게 한다면 더 좋은 사회가 되리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국보 240호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이 있고, 고산 윤선도의 여러 유물을 전시한 고산유물전시장을 관람했다. 정말 알차고 풍요로운 남도 수묵 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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