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발췌 놀이

용기를 친근하게~

by 김호경

안녕하세요. ‘용기(容器, 勇氣, 蛹期...)’ 작업을 하고 있는 김호경 작가입니다.

용기 작업이 계속 변화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용기(勇氣)의 기(氣)는 기운생동(氣韻生動)하는 ‘생명 에너지’이며, 바람, 숨, 우리 속에서 움직이는 생기이기에 ‘용기’를 ‘생명력(에너지) 있게 삶을 사는 것!’으로 재정의 했습니다. 나는 내 삶에서 의미 있는 추상적 단어들을 재정의 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현재 좋은 기운(Good Energy) 시리즈 작업을 하고 있으며 가장 좋은 기운은 사랑(Love Energy)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용기솥.JPG 김호경 작가_용기 오브제-솥

인간이 완벽하지 않듯이 책도 오류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요즘처럼 좀 전의 정보조차도 새로운 정보로 대체되는 시대에 지난 책들은 말 할 것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책을 정보의 정확도로만 대하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인물들이 그 시대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여 써 내려온 흔적을 살펴보는 일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었다. 그분들은 모두 의미 있는 삶을 살고자 최선의 노력을 한 분들이기에 글을 읽을 때마다 숙연해졌다. 사람마다 시대마다 지역마다 참으로 다양한 사상의 향연들이 펼쳐졌다. 내가 이것을 놀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삶의 진지함에 압도되었을 수도 있다.


오랜 시간 인간의 역사가 전쟁...등 어려움 속에서 진행되어 오다 보니 안타까운 점도 많았다. 세상의 일들이 항상 개인의 인식과 사고를 넘어서기에 무어라 말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동안의 역사로 보아도 인류가 개인적인 행복을 추구할 여유가 대체적으로 없었던 이유가 이해되었다. 우리의 DNA에는 조상들의 많은 부분이 새겨져 내려오고 감정까지 대물림된다는 의견이 있다. 심리적인 부분도 공부하고 사람들과 다양한 일을 하고 교육, 상담도 하다 보니 그 의견에 공감되는 부분이 많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진정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더불어 같이 살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분명 우리는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 누구나 자신의 마음을 돌볼 시간이 필요하다. 마음이 평안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좋은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마음을 보듬어 줄 수 것 중 하나가 나는 예술이라 생각한다. 예술적 체험을 통해 용기 있는 첫 걸음을 떼고 행복한 삶, 의미 있는 삶, 좋은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들이 2013년부터 하게 되는 다양한 강의, 아트웍, 기업과의 협업의 기초가 된다.


사회로부터, 사람들로부터, 책으로부터 나는 느끼고 표현하는 사람이고, 그것이 나의 예술작업이다. 그림이든 글이든 나를 통과하여 나오는 것이다. 나의 표현들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용기’라는 가치가 처음 나에게 왔을 때 너무 무겁게 느껴졌듯이 우리가 그 용기라는 중요한 가치를 꺼내 쓰지 못하는 것도 무겁게 느껴져서 그런 것은 아닐까? 용기 발췌놀이를 하다 보니 영웅을 숭배하던 시대일수록 용감함, 용기라는 단어를 많이 쓴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용기 작업을 통해 사람들이 용기를 친근하게 여길 수 있도록 지금 우리 시대에 맞는 용기를 재창조 하고자 했다. 그래서 나의 용기 작업을 통해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서 내야 할 용기를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된다면 좋겠다. 삶에서 어려운 상황에 빠질 때 어디에나 있는 용기(容器)를 보면서 용기(勇氣)를 떠올려 꼭 붙잡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하였다. 누구나 자신만의 영웅의 길이 있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우리 모두에게 즐거운 영웅 놀이가 되기를 기원한다.


IMG_20190901_202356_841.jpg



*************************************** 용기 발췌 놀이 중에서 **********************************

노자(老子) 기원전 6세기

도덕경에서 말하는 용기란 충동적인 반응이 아니라, 자애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용기.

의연함과 침착함을 유지함으로 상대방이 함부로 행동할 수 없게 하는 비폭력주의적인 용기이다. 이런 용기가 있을 때 나와 네가 같이 살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나와 네가 같이 살려고 이 세상에 왔다. 용기가 필요한 이유도 같이 잘 살 수 있는 방향으로 가기 위함이 아닐까?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로 누군가를 판단하기보다는 그냥 우리가 한 인간으로 나와 너의 존엄성을 지켜내기 위해, 서로를 이롭게 하는 방향으로 살기 위해 용기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살다 보면 잊게 되는 중요한 가치들을 다시 한번 되새길 필요가 있다. 삶이 향상되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에게 용기를 북돋을 필요가 있는 것 같다.

--------------------------------------------------------------------------------------------------------------------------

도덕경 제67장 _ 내게 세 가지 보물이 있어 - 慈, 儉, 不敢爲天下先

세상 모든 사람 이르기를 나의 도는 크지만 똑똑하지 못한 듯하다고 합니다.

크기 때문에 똑똑하지 못한 듯한 것입니다.

만약 똑똑했다면 오래전에 작게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내게 세 가지 보물이 있어 이를 지니고 보존합니다.

첫째는 ‘자애(慈)’,

둘째는 ‘검약(儉)’,

셋째는 ‘세상에 앞서려 하지 않음(不敢爲天下先)’입니다.

자애 때문에 용감해지고, 검약 때문에 널리 베풀 수 있고, 세상에 앞서려 하지 않음 때문에 큰 그릇들의 으뜸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 자애를 버린 채 용감하기만 하고 검약을 버린 채 베풀기만 하고 뒤에 서는 태도를 버린 채 앞서기만 한다면 이는 사람을 죽이는 일입니다.

자애로 싸우면 이기고, 자애로 방어하면 튼튼합니다.

하늘도 사람들을 구하고자 하면 자애로 그들을 호위합니다.


**********************************************************************************************

**********************************************************************************************



플라톤 (Platon_BC 427년 ~ BC 347년)

플라톤의 국가·정체(政體)에서 소크라테스가 ‘용기’를 지속적인 보전이라고 한 것이 시간이 갈수록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


내(소크라테스) 말은 용기란 일종의 보전이란 뜻일세

내(아데이만토스)가 말했네. 어떤 보전을 말씀하십니까?

법에 의한 교육을 통해, 두려워할 것들이 무엇 무엇이며 또 어떠한 것들인지, 이와 관련해서 생기게 된 소신(판단)의 보전일세. 그리고 이를 언제나 보전한다고 함은 고통에 처하여서도 즐거움에 처하여서도, 그리고 욕망에 처하여서도, 공포에 처하여서도 이를 버리지 않고 끝끝내 보전하여 지님을 의미하네. 자네가 원한다면 이에 유사한 것으로 생각되는 비유를 자네에게 해 주겠네만.

(중략)

~이는 이들이 적성을 갖추고 적절한 양육을 받은 덕분에, 두려워할 것들이나 또는 다른 것들에 관한 이들의 소신(판단)이 짙게 물들여져서는 세척에 있어서 강력한 이런 세제들도, 즉 이런 세척 작용에 있어서는 그 어떤 소다나 잿물보다 더 강력한 쾌락도, 그리고 그 어떤 세제보다 강력한 고통과 공포 및 욕망도 이들의 염색을 탈색시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말일세. 두려워할 것들과 두려워하지 않을 것들에 관한 ‘바르고 준법적인 소신(판단)’의 지속적인 보전과 그런 능력을 나로서는 용기라 부르며 또한 그렇게 간주하네......



***********************************************************************************************

***********************************************************************************************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년 ~ 322년)

플라톤의 제자인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인간의 성격적 탁월성과 악덕의 도표를 만들었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에 대해 대담한 행위를 할 때 지나치면 무모, 중용이면 용기, 모자라면 비겁이라 하여 ‘용기’를 중용에 놓고 있다.

-------------------------------------------------------------------------------------------------------------------------


“절제와 용기, 그리고 다른 탁월성의 경우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무슨 일이든 회피하고 두려워하며 어떤 자리도 지켜내지 못하는 사람은 비겁한 사람이 되는 것이며, 이와는 반대로 무슨 일이든 결코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모든 일에 뛰어드는 사람은 무모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모든 즐거움에 탐닉하면서 어떤 것도 삼가지 않는 사람은 무절제한 사람이 되는 것이며, 이와 반대로 즐거움이라면 전부 회피하는 사람은 촌뜨기들처럼 일종의 목석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절제와 용기는 지나침과 모자람에 의해 파괴되고 중용에 의해 보존된다.”


***********************************************************************************************


1 a.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