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노트 : 미드웨이 해전

미군, 진주만 패배의 복수를 하다.

by Kataraxiau

목차


1. 군함 구분

2. 미드웨이 해전 이전의 상황

3. 미군/일본군 병력 규모

4. 1942년 6월 4일 운명의 날

5. 미드웨이 해전의 영향


1. 군함 구분


책을 읽고, 글을 쓰다 보니 군함을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아서 정리했습니다. 1930년대 영국 해군 함정 기준이라서 국가별로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전함 : 길이 180미터, 배수량 3만톤, 함포(30~35cm) 탑재

중순양함 : 배수량 1만톤, 함포(20.3cm) 탑재

경순양함 : 배수량 6000톤, 함포(15.2cm) 탑재

구축함 : 배수량 2000톤, 함포(13cm) 탑재, 어뢰 탑재


고래잡이로 유명했던 울산 남구 장생포 해안에는 퇴역한 울산함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직접 울산함에 올라서 내부를 볼 수 있습니다. 요즘 태평양 전쟁 책을 읽는 중에 김해, 울산 여행을 떠났는데, 군함 내부가 궁금해서 관람을 했습니다. 올라가기 전부터 엄청난 규모에 놀랐습니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숙소, 병참고, 식당, 사격 통제실, 지휘실, 통신실, 소나 탐지실 등을 구경했습니다. 책으로만 읽던 군함을 직접 보니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울산함은 1500톤 배수량의 군함이고, 주 임무는 해역 방어였다고 합니다. 76mm 주포 2문, 30mm 부포 4문, 어뢰, 폭뢰, 하푼 함대함 유도탄 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경순양함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었습니다. 울산함의 크기와 규모에 놀랐는데, 경순양함의 1/3 정도 수준이라는 사실에 더 놀랐습니다. 만약 전함에 승선한다면, 한나절 동안 구경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900톤 배수량의 서울함이 망원한강공원 내부에 전시중이고, 1960톤 배수량의 마산함은 강화함상공원에 전시중입니다. 울산까지 가기 힘드시는 분들은 서울함이나 마산함을 구경하셔도 좋을 듯 합니다. 저도 서울함과 마산함을 구경하러 갈 생각입니다.


2. 미드웨이 해전 이전의 상황


일본군은 산호해 해전을 승리한 후에 바로 미드웨이 해전을 실행에 옮깁니다. 일본군은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있었고, 미군은 일본군의 허술한 암호 체계로 일본군이 미드웨이로 공격한다는 계획을 알고 있었습니다. 일본군은 미드웨어 해전 계획을 철회했어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번 째, 일본군은 산호해 해전에서 미군 중항모 요크타운함과 렉싱턴함을 격침한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군 중항모 요크타운함은 격침을 피하고, 진주만으로 복귀합니다. 물론, 미군의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중항모 새러토가함은 미국 서부 해안에서 수리 중이었고, 중항모 요크타운함도 수리를 해야 했습니다. 도쿄 공습에 참여했던 중항모 엔터프라이즈함과 호넷함 정도가 바로 가용할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미군은 요크타운함을 수리하고, 새러토가함의 항공기와 조종사를 요크타운함에 배치해서 결과적으로 미군은 중항모 3척을 운용했습니다.


두번 째, 미군은 미드웨이 열도에 비행장을 가동하면서 전력을 보강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비행장에서 이륙한 항공기로 일본군을 타격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군은 기습 공격을 통해 미드웨이 비행장을 폭격하고, 상륙해서 점령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기지들을 도와주기 위해 오는 미군 항모 부대를 미드웨이에서 떨어진 해역에 있던 일본군 항모 부대가 격침할 계획이었습니다.


세번 째, 일본군의 기습을 가정한다면, 작전은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미군은 일본군이 미드웨이를 공격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군의 예상보다 빠르게 미드웨이로 이동해서 북쪽에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미군의 운이 따르기는 했지만, 정확한 정보를 미리 알고 대비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1942년 5월 27일 일본군의 항모 부대가 일본 본토를 떠났고, 5월 28일 미군의 엔터프라이즈함과 호넷함도 진주만을 떠납니다. 그리고, 5월 29일 미군 중항모 요크타운함도 출발합니다.


3. 미군/일본군 병력 규모


일본군 총 4개의 부대가 미드웨이 해전에 참가하기 위해 동쪽으로 나아갔습니다.


나구모 중장이 지휘하는 항모 강습 부대는 중항모 4척, 전함 2척, 경순양함 1척, 구축함 11척의 규모였습니다. 곤도 중장이 지휘하는 침공 부대는 경항모 1척, 전함 2척, 중순양함 4척, 구축함 8척의 규모였습니다. 미드웨어 침공 부대 5만 명을 태운 수송선 12척도 사이판에서 출항했습니다. 야마모토 일본군 연함함대 사령관 야마모토는 전함 야마토함을 타고, 다른 전함들과 함께 뒤따르고 있었습니다.


미군은 스프루언스 소장의 지휘하에 중항모 2척(엔터프라이즈함, 호넷함), 중순양함 6척, 구축함 11척의 병력이었습니다. 뒤늦게 출발한 중항모 1척(요크타운함)이 가세합니다.


당시에 항공기의 엄호가 없으면 해군 함정은 각개격파 당할 확률이 높았습니다. 그러므로, 얼마나 항공기를 잘 운용해서 적군의 항모를 격침시키느냐가 중요했습니다.


미드웨이 환초.PNG


4. 1942년 6월 4일 운명의 날


운명의 날 새벽, 드디어 일본군이 미드웨어 비행장을 공격했습니다. 하지만, 미드웨이 비행장에 있던 해병대 전투기들은 일본군 전투기를 공격하기 위해 출격한 상태였고, 폭격기 등은 이미 일본군 항모로 공격하러 가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일본의 공격을 예상하고, 미군 정찰기들이 끊임없이 일본군 항모를 찾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군 항모의 위치를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 오전 5시 50분경 일본군 항모에서 출격한 일본군 폭격기는 미드웨이 비행장을 폭격하고, 미군 폭격기들은 일본군 항모를 폭격했습니다. 미드웨이에 배치된 미군 전투기들은 구형이어서 일본군 제로 전투기에 모두 당합니다. 결국, 전투기들의 호위를 못 받은 미군 폭격기들은 일본군 항모를 격침하는데 실패합니다. 미드웨이비행장을 폭격한 일본군 편대 지휘관은 두 번째 공습을 건의합니다. 아직까지 미드웨이에서 출격하는 미군 폭격기들이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항모 강습 부대 니구모 중장은 고민합니다. 이미 떠난 첫 번째 공습 부대에 이어 항모에 남아 있던 나머지 항공기를 출격시켜야 할 것인가 결정을 해야 했습니다. 니구모 중장은 미군 항모 공격을 위해 대함정 무기를 장착한 항모에 있던 항공기들을 지상 공격용 무기로 교체하고, 미드웨이 비행장으로 다시 출격시키라는 명령을 합니다.

하지만, 얼마 후 미군 항모를 발견했다는 정찰 내용이 전달됩니다. 니구모 중장은 다시 함정용 무기로 바꾸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무기 교체 후 바로 이륙시키려는 와중에 미드웨이 1차 공습을 참여했던 폭격기, 이들을 엄호한 제로 전투기, 미군 포격기로부터 일본군 항모를 지킨 제로 전투기들이 급유와 무기 재장착을 위해 항모로 착륙을 시도합니다. 여기서 또 고민에 빠집니다. 착륙을 먼저 시키느냐, 이륙을 먼저 하느냐 선택의 기로에 섰습니다.

니구모 중장은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착륙을 먼저 진행합니다.


2) 오전 7시, 미군 항모에서 급강하 폭격기와 어뢰기(뇌격기)가 출격합니다. 급강하 폭격기 편대는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갔고, 한 시간 늦게 출격한 어뢰기 편대는 바로 일본군 항모로 나아갑니다. 오전 9시가 넘어서 미군 중항모 호넷에서 출격한 제8어뢰 비행대대 소속 15대의 어뢰기가 일본군 항모를 발견하지만, 미군 전투기 엄호도 없고, 급강화 폭격기의 협조도 없는 상태에서 15대의 어뢰기는 제로 전투기와 호위 함선들에 의해 모두 격추당합니다. 곧이어 미군 중항모 엔터프라이즈함과 요크타운함에서 출격한 어뢰기들이 다시 일본군 항모를 공격하지만, 역시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 못하고, 격추 당합니다. 41대 어뢰기 중에 단 4대만 미군 항모로 귀환을 합니다.


3) 오전 10시, 일본군은 두 번의 미군 공격을 막아냈기 때문에 미군 항모를 공격하기 위해 전투기들은 재급유를 받기 위해 항모에 착륙했고, 폭격기는 무장을 교체하기 위해 격납고로 내려간 상태였습니다. 바로 그때 미군 급강하 폭격기들이 일본군 항모 위에 출현합니다.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던 미군 급강하 폭격기들은 일본군 항모 부대에 합류하기 위해 가고 있는 일본 구축함을 보고 뒤를 따라갔습니다. 레이더를 가진 함정이 없는 일본군 항모 부대는 뒤늦게 미군 급강하 폭격기들을 알아챘고, 일본군 항모 위에는 제로 전투기들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매클러스키 중령이 지휘하는 급강하 폭격기들이 맨 처음 일본군 중항모 가가함이 격침 당합니다. 미군 급강하 폭격기들은 500kg의 폭탄을 투하했는데, 갑판이 비교적 얇은 일본군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힙니다. 갑판에 도열한 전투기들에 급유를 하고, 무기 장착을 하기 위해 쌓여 있던 연료, 탄약 등에 의해 더 큰 폭발이 발생합니다.

리처드 베스트 중위가 선도하는 급강하 폭격기들은 일본군 중항모 아카기함을 격침 시킵니다. 가가함과 마찬가지로 큰 폭발이 발생합니다.

맥스 레슬리가 지휘하는 급강하 폭격기 대대도 전투 현장에 도착해서 바로 일본군 중항모 소류함을 격침 시킵니다. 투하한 폭탄이 엔진실까지 뚫고 들어가 폭발함으로써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1942년 6월 4일 오전 10시 22분에서 10시 27분까지 5분 사이에 일본군은 중항모 3척이 격침당하는 대참사를 겪습니다.


4) 일본군의 남아 있는 중항모 히류함에서 발진한 전투기들과 급강하 폭격기들은 미군 중항모 요크타운함을 공격했습니다. 하지만, 두 번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요크타운함은 화재를 진압하고, 후퇴를 할 수 있었습니다. 산호해 해전에 이어서 미드웨이 해전에서도 살아 남는 미군 항모가 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오후 5시 경 일본군 잠수함 I-68이 미군 구축함의 방어막을 뚫고, 접근해 요크타운함을 공격하고, 침몰시킵니다.

하지만, 이때 미군 엔터프라이즈함과 요크타운함에서 출격한 급강하 폭격기 편대에 의해 일본군 중항모 히류함도 공격을 받고, 침몰합니다.


5) 밤이 다가오면서 일본군은 전함, 중순양함, 구축함 등으로 미군을 공격하기로 합니다. 항모를 제외한 전체적인 함대 공격력은 일본군이 더 우세했습니다. 곤도 중장과 야마모토 함대들이 복수를 하기 위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군 지휘관 스프루언스 소장은 태평양 함대 지휘관 체스터 니미츠가 말한 '예측된 위험률의 원칙'을 기억하고, 따릅니다.

"타격을 입힐 가능성이 크지 않을 때는 우세한 적군의 공격에 아군의 군사력 노출을 피하되 노출되었을 때는 적에게 더 큰 타격을 가한다"

결국, 일본군 함대는 동쪽으로 후퇴한 미군 함대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5. 미드웨이 해전의 영향


일본군의 미드웨이 공격을 사전에 알고 있는 미군은 미드웨이 비행장의 방어를 강화하고, 전투기, 폭격기 등을 배치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일본군 항모의 위치를 먼저 파악했습니다.

미드웨이 비행장에서 출격한 항공기들과 3척의 항모에서 출격한 어뢰기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미군은 승리할 수 있었을까요? 만약 미군 항모에서 출격한 급강하 폭격기들이 20분만 늦게 일본군 항모를 발견했다면, 일본군 제로 전투기들에 의해 격추되지 않았을까요?


일본군이 자랑하는 항모 4척(가가함, 아카기함, 소류함, 히류함)이 모두 격침 당했기 때문에 남은 항모는 일본 본토에서 수리중인 단 2척(쇼카쿠함, 주이카쿠함)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더 큰 피해는 항모 4척에 탑승하고 있던 숙달된 조종사, 항공 승무원들이 100명 넘게 죽은 것이었습니다.

반면에 미군은 산호해 해전의 렉싱턴함에 이어 요크타운함을 잃어 버렸지만, 엔터프라이즈함, 호넷함, 새러토가함 3척이 건재했습니다. 전투 중에 무사한 항모들이 있었기 때문에 산호해 해전에 이어 미드웨어 해전에서도 항모가 격침되어도 해당 항모에 소속된 항공기와 조종사들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일본군은 더 이상 태평양 동쪽으로 진출할 여력이 없어졌습니다. 이제 전장은 솔로몬 제도로 넘어가고, 그 중심에는 과달카날 섬이 있었습니다. 대양에서의 대규모 해전보다는 상륙 작전을 지원하기 위한 해전으로 바뀌었습니다.


울산함을 구경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함대중에서 비교적 작은 구축함이라도 승조원들이 탑승했고, 그곳에서 생활했습니다. 그런데, 항모라면 구축함보다 훨씬 큰 선박이고, 승조원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항모가 격침당하면 그들은 배와 함께 희생했습니다. 역사로 전쟁을 접하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만, 역시 전쟁은 일어나면 안됩니다.



책 제목 : 일본 제국 패망사

지은이 : 존 톨런드

옮긴이 : 박병화/이두영

펴낸 곳 : 글항아리


책 제목 : 2차대전 해전사

지은이 : 크레이그 L.시먼즈

옮긴이 : 나종남

펴낸 곳 : 책과함께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역사 노트 : 산호해 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