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력이 예전 같지 않다
"메돈 하나 주세요."
메돈은 메밀국수와 돈가스 세트다. 두 개 메뉴의 앞 글자를 따서 줄인 게 메돈이다. 메돈은 세트지만 단일 메뉴처럼 보였다. 어제 오후 3시 20분 방문한 식당에서 메돈을 주문했다. 미팅까진 시간이 남고, 마침 출출하나 시각이고 미팅은 3시간이 예정되어 있었으므로.
주문하고 1분도 안되어 반찬이 서빙됐다. 어묵, 단무지, 김치가 밑반찬의 전부였다. 서랍에서 젓가락을 꺼내 어묵을 짚어 먹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데 한 청년(언뜻 보기에 서른쯤)이 문을 열고 식당으로 들어왔다.
"김치 수제비, 쫄돈 그리고 공깃밥 하나요."
마른 청년이었다. 청년은 카운터에서 메뉴 3개를 주문하고 내 오른편 자리에 앉았다. '다른 손님이 더 오는 건가. 설마 혼자 3개를 다 먹는 건 아니겠지. 먹방 유투버인가.' 곁눈질로 힐끔 봤는데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인 것 같기에 혼자 이런 생각을 했다. 어묵과 단무지를 싹 비웠을 때쯤 음식이 나왔다.
"주문하신 메돈 드릴게요."
메밀국수와 돈가스가 내 눈앞에 도착했다. 간 양파, 고추냉이, 썬 파를 메밀국수에 추가하고 고추냉이가 국물에 잘 섞이도록 젓가락으로 살살 그릇 벽면을 문지른다. 이 정도면 되었다 싶어 한 젓가락 크게 짚어 국수를 베어 문다. 입 안에 가득 시원하면서 짠맛이 들어온다. 그릇째 들고 메밀국수 국물도 한 모금 맛본다. 더위가 큰 걸음으로 물러난다.
다음은 돈가스 차례다. 오른손으로 칼을 잡고 1/4 크기로 먹기 좋게 컷팅했다. 포크로 1/4 조각을 짚어 한입에 넣었다. 나는 개그맨 김준현만큼 입이 작다. 작은 입속에 돈가스 1/4 조각이 한 번에 들어오니 입 안이 만석 상태가 되었다. 천천히 이빨이 상하 운동을 시작하자 덩달아 입술 꼬리가 올라간다. 역시 돈가스는 입 안 가득 넣고 씹어야 제맛이다. 그렇게 돈가스와 메밀을 번갈아 즐긴다.
어느새 접시는 바닥을 보인다. 2프로 아쉬움이 손을 든다. 김밥을 하나 더 먹을까 나에게 물었더니 오늘은 이 정도만 하자고 한다. 지금 뭔가를 더 먹으면 미팅에서 민망한 상황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잠시 생각하고 수저를 내려놓았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마무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운터로 걸어가 카드를 내밀며 계산한다. 카운터에는 어머님 연배(65세)쯤 돼 보이는 직원분이 카드를 받는다.
"띡, 띡, 띡."
계산기 모니터를 주시하는 내 눈이 점점 커진다. 계산기 모니터에는 김치 수제비, 쫄돈, 공깃밥 하나가 찍혔고 총금액은 16,500원이었다. 카드를 꼽으려는 순간 내가 말했다.
"이거, 저 아닌데요."
"네?"
"이거 저 아니라고요. 전 메돈 하나만 먹었어요."
카운터 직원분은 잠시 멍하니 내 얼굴을 쳐다보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혹시 눈치챈 건가? 메돈은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메돈은 정확히 두 개의 메뉴다. 메밀국수 그리고 돈가스. 그런데 난 메돈 하나만 먹었다고 얘기했으니 헷갈릴 만도 하다. 잠시 방향을 잃었던 직원분의 시선이 내가 먹고 일어난 자리로 향한다. 먹은 식기를 잠시 눈으로 훑는다. 그리고 왼쪽에 앉아 있던 마른 사내 쪽으로 고개가 돌아간다.
"아,,,,,죄송해요. 제가 착각을. 그러니까, 메돈 하나만 드셨다는 거죠?"
"네."
"메돈 하나 9천 원 계산할게요."
"저,,,,,,,,,,,,,,"
"네?"
"영수증은 괜찮습니다."
"네."
"그리고,,,,,저 사실 많이 못 먹어요."
그 말 한마디를 남기고 휙 카드를 받아서 나왔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점점 소화력이 예전만 못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