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살을 받아들이게 해 준 고마운 은인
어느 날부터 몸이 슬슬 아프기 시작했다. 어딘가 갇혀버린 느낌도 생겼다. 가슴은 답답했고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으며 전보다 감기에 자주 걸렸고 여기저기 통증이 찾아왔다. 자고 일어나면 얼굴과 몸이 붓고 위는 항상 부어있는 느낌이었다. 재채기로 아침을 시작하고 콧물을 달고 사는 날이 늘었다. 편두통과 절친이 되었다.
출근하면 이런 증상은 말끔히 사라졌다. 출근해 마시는 아이스 캐러멜 마끼아또는 내게 진통제 역할을 했다. 늦은 시간 퇴근해 들이키는 치맥은 만병통치약이자 수면제였다.
난 어릴 적 약골이었다. 초등학생 시절 사진의 나는 빼빼 마른 몸을 소유하고 있었다. 너무 약해서 감기를 달고 살았다는 말을 엄마께 전해 들었고 그런 내게 엄마는 없는 살림에 보약을 지어주셨다. 그런데 그 보약이 외할아버지 것과 바뀌었다.
보약 덕분인지는 몰라도 중학생 때부터 내 몸은 몰라보게 성숙하기 시작했다. 성숙이 완숙이 된 건 고등학교 1학년이 되어서다. 엄마보다 키가 커졌고 우리 집안에서 나는 제일 큰 존재가 되었다.
집에 놀러 온 엄마 친구들은 덩치 있고 듬직하다며 나를 좋아했는데 반대로 엄마는 원망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언제부턴가 엄마는 내가 살이 찐 게 자신의 잘못이라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당신 잘못이 아닌데도 말이다.
최저 몸무게는 82kg이었고 최고 몸무게는 139kg이었다. 82kg은 군대를 제대했을 때 몸무게였고 최고 몸무게는 무역 회사를 퇴사할 때 몸무게였다. 현재는 120kg 초반을 유지하는 중이다.
살이 찐 건 자업자득의 결과였다. 왜 나는 적게 먹는데 이렇게 계속 살이 찌냐며 자책하던 어느 날 어떤 글을 마주했다. ‘만약 당신이 물만 먹어도 살이 찐다면 무엇을 물처럼 마셨는지 생각하라’는 글이었다.
난 소주를 물처럼 마셨다. 난 콜라를 물 대신 들이켰다. 치킨과 고기를 거른 날이 1년에 몇 번 안될 정도였다. 라면은 간식으로 먹었다. 살이 안 찌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그런 내게 아주 민망한 상황이 하나 생겼다. 제주도 티웨이 항공에서 일어났다. 탑승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탑승해서 자리에 앉으려는데, 엉덩이가 좌석에 들어가질 않았다. 좌석보다 엉덩이가 내 엉덩이가 조금 더 컸다. 여태 많은 비행기를 탔지만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저가 항공은 유달리 좌석도 작은 것인가. 왜 티웨이는 다른 비행기에 비해 좁게 좌석을 만들었을까. 나 같은 사람은 비행기를 타지 말라는 이야기인가. 비대해진 엉덩이는 생각지도 않고 나는 불평을 쏟아냈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모면해야 했다. 일단 엉덩이를 좌로 우로 흔들면서 자연스레 몸의 하중을 실어 좌석에 엉덩이를 밀어 넣는 데 성공했다. 과정은 압축된 공기가 빠지는 것처럼 아주 천천히 진행됐다. 스으윽 옷이 쓸리는 소리가 났고 엉덩이가 자연스레 시트에 빨려 들어갔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복도 쪽 좌석에 앉아 있는데 안쪽 손님 한 분이 내 옆에 서서 안으로 들어가겠다고 했다. 얼른 일어나 비켜줘야지 했는데 좌석에 낀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식은땀이 목 뒤로 흐르기 시작했다. 앞쪽 의자 뒷목을 힘껏 붙잡고 용을 쓴 뒤에야 겨우 시트에서 몸을 빼는 데 성공했다. 자리를 비켜줬다. 가운데 손님이 없었던 건 그날의 작은 행운이었다.
또 다른 문제가 하나 생겼다. 다시금 자리에 앉는 데는 성공했는데 이번에는 좌석 벨트가 문제였다. 벨트가 터무니없이 짧았다. 의자에 고정된 오른쪽 벨트의 길이는 20cm 정도밖에 되질 않았다. 왼쪽 버클 벨트도 마찬가지였다. 버클이 있는 왼쪽 벨트는 오른쪽 벨트가 채워질 때까지 늘어나야 맞는 건데, 벨트가 채워지려면 30cm가 모자랐다.
긴장한 탓에 심장이 쿵쾅쿵쾅 요동치기 시작했다. 등 뒤에선 식은땀이 줄줄 샜다. 배는 위아래로 바쁜 숨을 몰아쉬었다. 가슴속에서 화가 치밀었다. 태어나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위기 상황이 내게 펼쳐졌다. 이런 위기 상황을 모르는 듯 기내에선 좌석 벨트를 매셨는지 다시 확인하라는 안내 방송만 나왔다. 나는 여전히 좌석 벨트를 매지 못했다.
‘잠바로 덮으면 되잖아.’ 잔머리가 발동했다. 아무도 모르게 잠바로 안전벨트 착용 부분을 덮는 데 성공했다.
여름용 잠바를 가져오길 잘했다면서 스스로를 위로했고 안심했다. 절묘하게 가리는 데 성공했고 빨리 비행기가 이륙하기만 기다렸다. 머릿속은 혼자 쾌재를 불렀다. 여태 내 옆으로 여러 명의 스튜어디스가 지나갔지만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그런데 내 귀에 믿기 힘든 말이 들렸다.
“손님, 안전벨트 좀 메주시겠어요? “
오른쪽 뒤에서 또박또박 들리는 목소리, 제일 마지막으로 승객의 안전을 점검하던 스튜어디스가 지나가던 발걸음을 멈추게 내게 다가와한 말이었다. 난 못 들은 척 눈을 질끈 감았다. 목 뒤에선 식은땀이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듯 줄줄 흐르는 게 느껴졌다. 그런 내게 스튜어디스는 한 번 더 나를 죽였다.
“손님, 안전벨트 좀 착용해 주시겠어요?”
얼굴은 땀으로 샤워한 상태의 나를 봤는지, 뭔가 짐작했는지, 스튜어디스는 앞 쪽 승무원을 오라고 손짓했다. 실눈으로 뜨고 봤더니 그랬다. 그리더니 승무원에게 귀에다 대고 이렇게 속삭였다.
‘엑스트라 벨트.’
분명 개미 소리만큼 작은 목소리였는데 내 귀에는 마이크에 대고 하는 소리처럼 크고 선명하게 들렸다. ‘엑스트라 벨트’라니. 엑스트라 라지는 들어봤어도 엑스트라 벨트는 처음 들어본 단어였다.
그렇게 내게 엑스트라 벨트가 배달되어 왔고 그제야 나는 배를 가리던 잠바를 치우고 엑스트라 벨트를 착용했다. 이보다 더한 개망신이 또 있을까. 절대로 잊으래야 잊을 수 없는 순간이 또 하나 탄생했다. 이런 쪽팔림을 다시 안 당하겠다며 그렇게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숱한 다이어트를 했다. 대한민국에서 유행하는 다이어트는 모두 해봤다. 한방 치료, 건강 기능식, 연예인 다이어트, 효소 다이어트. 수영, 헬스, 자전거, 등산. 모두 효과는 있었다. 문제는 돈을 쓸 때는 빠지는 데, 안 쓰면 찾아오는 요요였다. 단 한 번도 예외는 없었다. 건강하기 위해서 돈을 써야 했고 돈을 써야 살이 빠졌다.
비만의 원인은 식습관이었다. 식습관을 바로잡지 않는 한 요요는 반복될 것임이 분명했다. 빠졌다 찌기를 반복하니 몸 상태는 점점 나빠졌고 돌이킬 수 없는 상태까지 다다랐다. 나는 스스로 매번 몸을 혹사시키고 있었다.
몸에게 미안했다. 여태 나를 위해 애썼는데 나는 내 몸에게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게 없는 상태가 돼버렸다. 비만은 이번 생에 해결 불가능하겠다고 포기하고 있던 그때 책을 만났다.
책 속엔 달콤한 이야기는 없었다. 단기간에 빠진다는 마케팅의 상술도 없었다. 책은 이렇게 말했다. ‘비만은 질병이다.’ 책 속 모든 글은 잔소리처럼 들렸다. 인정하기 싫은데 모두 맞는 말이었다.
만약 책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이미 이 세상을 떠난 사람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책 덕분에 지금은 건강하게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 올바른 식습관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40년간 다이어트에 실패했던 내가 지금은 운동도 한다. 책 덕분이다. 「몸이 먼저다」라는 책을 읽고 운동을 시작했다. 「식사가 잘못됐습니다」 책을 읽고 잘못된 상식을 바로잡았다.「비만 코드」와 「환자 혁명」을 읽고 필요한 지식을 공부했다. 「이제 몸을 챙깁니다」 책을 읽고 내 몸부터 챙기는 사람이 되었다.
여전히 매일 유혹의 손길들이 내게 다가온다. TV, 유튜브, SNS는 열기만 하면 먹방 콘텐츠가 넘친다. 그래서 다 지워버렸다. 안 보는 게 차리라 속편 했다. 그런 콘텐츠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지는 나를 경험하는 것보다 전부 삭제하는 편이 오히려 나았다.
이젠 이젠 웬만해선 흔들리지 않는다. 흔들리는 건 내 살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책이란 든든한 지원군을 얻었기 때문이다.
뭐든 오래 지속할 수 없었던 나는 변했다. 이젠 뭐든 시작하면 오래 지속하는 사람이 되었다. 책이라는 지적 동기원을 만났기 때문이다. 나는 나만의 속도로 다이어트를 진행 중이다. 내 몸에 좀 더 건강한 음식을 먹는다. 몸이 편한 상태가 되도록 애쓴다.
남이 나를 바꿔줄 순 없다. 오직 나만이 스스로를 바꿔야 한다. 그걸 깨우치는데 40년이 넘게 걸렸다. 책은 살을 빼주진 않았지만 더 근사한 걸 줬다. 내 살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줬다. 고마운 은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