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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나만 인정받고 싶어 했다

괜찮지 않았는데 괜찮은 척하는 내 마음의 병

by 오류 정석헌

“형님, 잘 지내시죠? 회사 주변에 맛집 많거든요. 한 번 놀러 오세요.”

“이번 주 금요일 점심 괜찮아?”

입춘이 지난 2월 둘째 주, 2년 만에 연락 온 영민을 만나러 여의도 KBS로 향했다. 영민과 무슨 이야기를 하게 될까.

영민을 알게 된 건 10년 전이다. 사진 동호회에서 처음 본 영민은 모델 같았다. 키는 184cm에 얼굴은 주먹만 했다. 연예인도 울고 갈 정도의 외모와 몸을 소유했다. 반대로 나는 178cm 키에 130kg 비대한 몸을 소유했다. 처음 영민을 만난 자리에서 친하게 지내야겠다 생각했다.


함께 사진을 찍으러 수차례 돌아다녔고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며 친한 사이가 됐다. 영민을 처음 본 여자들이 먼저 관심을 보였고 여자들이 줄줄 따랐지만 매번 차인다는 얘길 건너 들었다. 나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얘기였다. 저렇게 훌륭한 비주얼을 가지고도 차인다니 말도 안 되는 얘기라 여겼다.

영민은 사진도 잘 찍었다. 나보다 관찰력이 더 뛰어났고 찰나의 순간을 잘 캐치했다. 체력도 훌륭했다. 카메라 2대를 거뜬히 메고 뛰어다니며 한 장면도 놓치지 않고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어느 날 그런 영민에게 함께 일을 해보는 건 어떠냐며 손을 내밀었다.


영민은 일도 잘했다. 함께 일을 하는 동안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함께 미스코리아 대회를 촬영했고 미스터 코리아 촬영을 했고 서울시 여러 행사 촬영도 했다. 함께 촬영한 결과물은 만족스러웠지만 나보다 더 일 잘하는 영민에게 나는 열등감을 느꼈다.


그래서일까, 어느 날부터 영민을 질투하기 시작했다. 서울시 행사를 마친 날 저녁 영민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서울시 공무원 중에서 한 분이 자신에게 연락을 했다는 것이다. 사적으로 명함을 전달하지 말 것을 몇 차례 주의를 줬지만 영민은 그걸 어겼다. 회사 차원에서 받은 일이므로 어떤 것이든 나를 거쳐 진행해야 한다 일렀지만 일은 내 뜻대로 되지 않았던 것이다. 영민은 룰을 어겼다.

괜찮지 않았는데 괜찮은 척했다. 진심이 아닌 거짓말을 했다. 너에게 들어온 일이니 잘해보라고. 속 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았지만 나는 착한 형이란 이미지로 나를 포장했다. 그리고 속 쓰려했다.


행사 촬영장에서 소개해준 여러 지인들도 나에게 전화를 걸어 영민의 안부를 물었다. 이런 일이 발생할수록 나는 점점 영민에게 마음의 문을 닫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영민을 경계하기에 이르렀다. 영민과 함께하는 일의 횟수를 줄이기 시작했다. 한편으론 영민이 잘 되지 않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내 마음과는 달리 영민에게는 일이 점점 늘어났다. 반대로 나의 일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영민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의 영역을 스스로 개척했고 나는 그와는 반대의 행보를 거듭했다. 어느 날부터는 방송국에서 일을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한창 웨딩 사진을 찍던 영민은 내게 전화를 걸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물었다. 내심 속으로 부러워하면서도 입으로는 그를 응원하며 나는 영민에게 방송국을 추천했다.

방송 일을 시작하며 영민과는 그렇게 멀어졌다. 적어도 한 달에 2~3번은 연락을 주고받던 사이였는데 6개월에 1번, 1년에 1번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 영민은 평일에는 방송 일을 하고 주말에는 웨딩 알바를 하며 바쁘게 지냈다.

“여기가 좋아요? 여기가 좋아요?”
“난 여기.”

영민은 음식점 2곳의 선택지를 제시했고 그중 부대찌개 집을 골랐다. 영민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맨날 늦던 영민이 멀리서 내게 손짓했다. 오랜만에 보는 영민은 자신감으로 얼굴에 빛이 났다.

“요즘 잘 나간다며.”
“에이, 아니에요.”

부대찌개 2인분과 소주 2병, 맥주 1병을 나눠 마셨다. 2차로 커피까지 얻어 마셨다. 부모님 이야기, 직장 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니 2시간이 금세 흘렀다. 나보다 더 알차게 사는 친구였다. 적을 만들지 않는 친구이기도 했다. 덕분에 그간 연락이 끊겼던 지난 인연들의 소식을 접했다.

“예전에 형님이 좋은 이야기 많이 해줘서 밥 사드리고 싶어서 연락했어요.”

속에서 부끄러움이 올라왔다. 영민을 시기 질투했던 시절이 머리를 스쳤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헤어지며 방송국 전에 함께했던 장면을 몇 번씩 돌려봤다.

영민은 1달에 2번은 독립 영화 촬영을 돕고 있다고 했다. 돈은 거의 받지 못하는데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 나가는 기쁨 때문에 한다고 했다. 독립 영화를 찍으면서 내 생각이 가끔 났다고 한다.


영민은 완전 다른 사람이 되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 것일까? 여태 영민에 대해 많이 안다 생각했는데, 안다는 건 모른다는 것과 같은 뜻이란 걸 깨달은 하루였다. 예전에 영민은 잘 지내시죠? 요즘 바쁘세요? 사람들과는 연락하시나요? 이렇게 묻고 답하는 수동적인 사이에서 이젠 나의 안부를 먼저 묻는 적극적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잘난 사람을 보면 인정 대신 질투부터 했던 과거의 내가 부끄러웠다. 남과의 비교로 생긴 열등감은 내게 독이었다. 남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나만 인정받고 싶어 했다. 인정해야지만, 그 사람의 장점을 내 것으로 흡수할 수 있다는 걸 몰랐다. 인정하면서 생겨나는 열등감을 내가 강해져야 하는 이유와 의욕으로 승화시키는 사람이 진정으로 강한 사람이다.


남을 인정하는 것이 나의 능력과 자존심에 손상을 주는 것이 아님에도 우리 주변에는 다른 사람을 인정하는 것에 인색한 사람이 많다. 인정보다 트집과 흠집을 내면서 자신이 더 대단한 사람인 양 으스대는 사람은 모두 마음의 병이 있다. 그리고 마음의 병 때문에 자신이 더 강해지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모른 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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