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질했던 순간을 마주하는 용기
오랜만에 박요철 작가님의 전화를 받았다. 반가웠다. 코로나 전에는 한 달에 한 번은 만났는데 어느새 못 만난 지 2년이나 흘렀다. 전화로 최근 근황을 나누다 마흔 곳의 출판사에게 투고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자신에게도 원고를 보내달라고 하셨다. 흔쾌히 그러겠다며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원고를 보냈겠다 했다. 원고를 보낸 지 3일이 지난 오늘 아침 박요철 작가님과 다시 통화했고 작가님은 한 편의 글을 써서 보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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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는 내가 왜 출판사에서 답변을 받지 못한 이유가 나와 있었다. ‘미안하지만 어디선가 들어본 내용’이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출판사에서 봤을 때 내 원고는 식상했다는 이야기였다.
인정하기 싫지만 맞는 얘기였다. 투고하면서 내 안의 검열자는 내게 이런 이야기를 건넸다. ‘이런 뻔한 글을 출판사가 읽기라도 하겠어?’ 그런데 읽긴 읽었다. 아무런 연락이 없어 보낸 편지함을 열어 확인했는데 신기하게 모두 읽음으로 표시가 되어 있었다.
“글 쓰는 일은 남들 앞에서 아랫도리를 벗는 일”이라고 소설가 김연수는 말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과연 남들 앞에서 아랫도리를 벗을 용기가 있는가? 없었다. 없었다. 없었다. 용기는 없으면서 포장만 했던 내가 보였다. 포장지만 근사하면 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오류였다. 정작 중요한 용기는 없었기에 거절당한 것이다.
“나는 매일 틀린다 – 내 인생의 가장 찌질했던 40개의 순간들.”
근사한 책 제목 하나와 숙제를 얻었다. 지질한 글 10편을 채워야 한다. 글을 다 쓰면 쓴 글을 봐주겠다 하신다. 기한은 다음 주 월요일까지다. 얻은 게 또 있다. 사람들이 위안을 얻는 공감 포인트는 성공담이 아니라 실패담이란 깨달음이다. 사람들이 공감하는 포인트는 맞아, 나도 저랬었지 하는 부분에서 발생한다.
지우고 싶은 실패담을 다시 꺼내야만 했다. 피하고 싶은 순간들을 글로 옮겨야 한다. 아랫도리를 벗고 내 삶의 ‘오류’를 건져 올려야 했다. 꽁꽁 숨겨둔 과거를 내보여야 한다.
오류라 호를 정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그리고 결심한다. 과감히 아랫도리를 벗기로. 사실 뭐 볼 것도 없다. 처음에만 부끄럽겠지만 계속 벗다 보면 민망함도 나아지겠지 한다.
오늘도 난 나의 오류 하나를 발견했다. 여전히 나는 매일 틀린다. 매일 틀리고 매일 수정하기를 반복한다. 문제에서 도망치지 않는다. 문제 수정을 위해 애쓸 뿐이다. 문제없는 삶을 꿈꾸는 대신 좋은 문제로 가득한 삶으로 꿈꾸면서. 지질한 이야기 10개, 무엇부터 쓸까, 입술이 살포시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