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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하면 독서 모임에 들어가지 마라

독서 모임의 부작용과 긍정효과

by 오류 정석헌

“첫 번째 한 시간은 하루의 방향키다. 만약 내가 하루의 첫 한 시간을 생산적으로 쓰기 위해 노력한다면, 나머지 하루도 그렇게 따라가게 된다.” <<원칙 있는 삶>>의 저자 스티브의 말이다. 잠에서 깬 후 첫 한 시간은 하루의 방향키가 될 뿐만 아니라 인생의 방향까지 바꿀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 일어나서 첫 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 또한 바뀐다. 지금 삶은 여태까지 흘려보낸 하루의 결과가 다. 삶을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하루의 첫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선 안된다.


나에겐 4년째 매일 지킨 원칙이 하나 있다. 매일 아침 6시부터 7시까지는 휴대폰을 비행기 모드 상태로 두는 것이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은 나만의 1시간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이 시간엔 책을 읽고 메모하고 글을 쓴다.


일어나자마자 화장실에 들러 고양이 세수를 하고 책상에 앉는다. 책상 오른편에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연다. 책상 스탠드에 불을 켜고 어제 읽던 책을 이어 읽는다. 읽다가 나를 사로잡는 문장을 메모한다. 책의 여백에 내가 느낀 감정과 생각을 더한다. 블로그에 본 것, 깨달은 것, 적용할 것을 정리해 글로 쓴다.


아침 1시간 집중을 마치고 창밖을 보니 땅이 촉촉이 젖어있다. 코로 젖은 흙냄새가 들어온다. 어젯밤엔 봄비가 내렸나 보다 한다. 지난밤 쌓인 카톡 메시지를 확인한다. 2분기 독서 모임 공지글이 눈에 들어온다.


2018년 5월 24일에 들어간 <성장판 독서 모임>은 「메모 습관의 힘」의 저자 신정철 작가가 운영하는 모임이다. 신 작가의 책을 읽고 관심이 생겨 합류했고 지금껏 쭉 함께하고 있다. 이전에도 다른 독서 모임에서 활동을 해본 경험이 있던 나로서는 별다를 것 없는 독서 모임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달랐다. 여긴 독서 고수들이 수두룩했다.


독서 고수는 다른 모임에도 많다. 하지만 여기만의 차별점이 있었다. 발제 독서가 그것이다. 시중에는 다양한 형태의 독서 모임이 많지만 3년을 넘기지 못 가는 모임들을 많다. 신 작가는 계속해서 유지되는 독서 모임을 만들고 싶었고 어떻게 하면 오래도록 유지될지 고민했다. 그렇게 찾은 답이 발제 독서였다.


발제 형식의 독서 모임 참가자들은 반드시 1번은 발표를 해야 한다. 자신이 맡은 부분의 책을 읽고 요약하고 발표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깊이 있는 독서가 가능해진다. 발표를 해야 하기에 책을 여러 번 읽게 되고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소통하면서 읽기의 깊이가 달라진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 달에 한 권을 함께 읽는 매력 독서, 같은 주제의 책을 연달아 있는 주제 독서 모임 등 선택의 폭이 넓다.


독서 모임의 부작용 3가지

성장판 독서 모임에 들어간 뒤 이상한 부작용이 생겼다. 대표적인 부작용은 3가지다. 첫째는 책 소비가 는다. 하루에 적으면 1권, 많으면 5권의 책 추천이 올라온다. 내가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이 아직 많음을 알게 되고, 손이 바빠지는 순간이다. 눈길이 가는 책들은 인터넷 서점 장바구니로 옮겨 담는다. 여기서 끝내면 아주 좋은데 어느새 결재 버튼까지 누르게 된다. 통장의 잔고가 또 줄어들었음을 뒤늦게 도착한 메시지를 받고 나서야 깨닫는다.


둘째는 책 읽는 시간이 는다. 하루는 24시간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학창 시절 공부는 그렇게 하기 싫었는데 독서 모임을 통해 읽기의 즐거움을 알고부터 자발적으로 책을 읽게 됐다. 덕분에 의미 없이 흘려보내던 시간을 줄였다. TV를 없애고 SNS 앱을 지우고, 저녁 약속을 최대한 잡지 않는다. 대신 확보한 시간만큼 책을 읽는다.


마지막은 감각이 예민해진다. 책 읽기 전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 쇼펜하우어는 누구나 자신의 시야의 한계를 세계의 한계로 간주한다고 했다. 책으로 시야가 넓어진 만큼 나의 세계도 넓어진다. 사람들의 행동이 다시 보이고, 사람들의 대화가 다시 들린다. 여태 모르고 있었던, 들리지 않았던 사람들의 대화가 머릿속에서 해석된다. 분명 같은 말인데 번역이 되어 들린다. 덕분에 뇌가 고생이 많다.


독서 모임의 긍정 효과 3가지

부작용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긍정 효과도 있다. 독서 모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놀라운 효과는 세 가지다.


첫째는 살아있는 사람 책을 만날 수 있다. 독서모임에 나온 한 사람 한 사람이 살아있는 책이다. 이 사람들은 독서모임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직업도 다양하다. 초등학교 선생님, 사진가, 회계사, 공무원, 수학 강사, 대학원생, 자영업자, 뮤지컬 배우, 연구원 등 다양한 사람을 독서모임에서 만날 수 있다. 이는 삶의 영역을 넓히는 일이기도 하다.


둘째는 타인의 세계를 구경할 수 있다. 나는 이 부분이 좋았는데 다른 사람은 다른 부분이 좋았다고 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은 나랑 생각이 다르다. 나는 이 부분을 이렇게 이해했는데 다른 사람은 다르게 이해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타인의 세계를 경험해 보는 것, 사실 이게 독서모임의 핵심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 번이라도 독서모임에 나가보면 알게 된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는 것을. 좋아하는 문장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이해하는 정도도 다르다. 맞다 틀리다가 아니라 다르다는 걸 이해하는 것이 핵심이다.


마지막은 내가 놓친 부분의 빈틈을 메꿀 수 있다. 혼자의 경험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부분도 다른 사람을 통해 간극을 메울 수 있다.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내가 놓친 부분이 채워진다. 책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읽었고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이며 작가가 왜 이 책을 쓰고 제목을 이렇게 했는지를 서로 나누며 책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나이를 먹을수록 생활 반경이 점점 줄어든다. 만나는 사람이 한정적이다. 회사, 집, 회사, 집이 일상이 되다 보니 주변 사람들이 직장동료 아니면 아주 가끔 만나는 친구들이 전부다. 또한 회사생활로 쌓인 스트레스와 피로 덕분에 사회 초년생 때의 열정과 패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체력도 예전 같지 않다. 쉬는 날 어디 가는 게 귀찮다. 이렇다 보니 삶의 의욕은 떨어지고 삶의 질도 떨어진다. 그래서 독서모임에 나가야 한다. 만나서 직장 상사 욕만 하면서 술 마시는 모임 말고 드라마 얘기나 연예인 얘기로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버리는 그런 모임 말고 독서 모임 말이다.


한 권의 책을 읽는다고 어느 날 인생이 갑자기 변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독서모임에 들어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수고로운 독서를 해내고 책 한 권을 함께 읽고 다양한 타인의 시각을 만나다 보면 어느새 다양해진 삶의 빛깔을 발견하게 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널뛰는 감정의 온도 사이에서 적당한 지점을 찾아내는 요령을 얻을 수 있고, 나와 다른 의견을 접하면서 시야가 점점 확장됨을 경험한다. 독서 모임은 위험하다. 그래서 추천하지 않는다. 이런 건 나 혼자 겪는 것으로 충분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서 모임에 나간다면 말라지는 않겠다. 독서모임에 나가 직접 사람을 만나보고 자극도 받아보길 바란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느껴보길 바란다. 그들의 에너지는 남다르다. 열정이 있고 살아있음이 느껴진다. 그러니 용기 내서 꼭 독서모임에 나가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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