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은 두둑히 마음은 여유롭게

나의 브랜드 스토리 #1. 이케아

by 겨울가지

내가 이케아와 처음 만난 건 6년도 전이다.


한국에도 이케아가 들어왔다는 소식에 '이케아 광명점'을 가본 적이 있다.

그 때만해도 이케아에 대한 자세히는 알지 못했고 내겐 그저 '북유럽에서 온 가구 브랜드' 정도의 이미지였다. 주말의 데이트 겸 방문한 그 곳에서 거대한 창고의 규모에 단박에 압도되었고(코스트코도 가본 적이 없었으니까) 각각의 컨셉으로 충실하고도 촘촘히 채워진 쇼룸들에 바로 매료되었다. 마치 거대한 인형의 집에 초대되어 하우스투어를 하는 듯했다.

그럼에도 당시는 독립하기 전이라 그런지 "와~" "와~" 하며 겉핥기로 구경만 할 뿐 사실 큰 관심은 없었다.

그저 그렇게 맛있다는 이케아 볶음밥과 미트볼이 먹고 싶었을 뿐.


그리고 나는 결혼을 했고, 2년 만에 내 집 마련을 했다.

구축 아파트를 매매해서 실내를 전부 리모델링했는데, 리모델링에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바로 '이케아 주방'이었다. 인테리어 정보를 찾아 유튜브를 열심히 뒤지던 때였는데, 이케아로 꾸며진 주방이 정말 예뻐보였고 무엇보다 매우 실용적으로 보였다. 턴키로 진행했던 인테리어 소장님께 주방은 꼭 이케아로 시공해달라고 고집했고, '시공이 쉽지 않았다'는 소장님의 후기를 간간히 귓등으로(!) 전해들으며 내 주방은 꿈에 그리던 이케아로 완성되었다. 이 때부터였다. 내가 이케아에 빠지게 된 것은.


막시메라 하부장을 통해 아 서랍이 이렇게도 끝까지 쑥 빠질 수 있는 거구나를 생전 처음 알게된 나는,

그릇 정리대, 위생 깔판, 수납 바구니 따위의 자잘한 소품들에까지 이케아에 대한 애정을 이어갔다.


그러던 작년 말, 새해가 다가오면 으레 무언가를 다짐하듯,

23년엔 몇 년째 방치되어 온 드레스룸을 천지개벽시켜야겠다는 사명감이 불타올랐다.

그동안 수납장이나 옷장용 시스템장들을 찾아보긴 했었는데 마음에 드는 것이 영 없었다. 시스템장을 짜 넣자니 그 정도로 옷이 많은 것도 아닌데 괜히 먼지만 날릴 것 같았고, 벽면에 가구를 새로 짜 넣자니 너무 큰 돈이 들 것 같았다. 여차저차 갖가지 핑계로 결정을 하지 못하고 3년을 미뤄왔는데, 대충 쓸 요량으로 샀던 간이 행거가 너덜너덜해져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이제 더는 미룰 수도 없게 된 것이다.


그럼 심심한데 구경이나 해볼 겸 이케아에 가보자는 생각으로 '이케아 고양점'에 방문했다.

생각없이 미트볼이나 찾아대던 예전과 다르게, 목적이 분명하니 좀 더 꼼꼼하게 둘러보게 되었다.

'이건 드레스룸 코너에 이런 식으로 배치하면 좋겠다' '이건 니트나 악세사리용으로 창가에 놔도 좋겠다' 등등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화를 꽤나 진지하게 주고받으며 쇼룸을 뒤졌다.


수납장 섹션을 전부 둘러본 뒤 'ㄱ자 코너장'을 구매하는 걸로 의견이 좁혀졌다.

크지 않은 우리집 드레스룸에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았고 코너 공간도 활용할 수 있다는 게 실용적이었다.

쇼룸에 있는 구성이 마음에 들어 이대로 주문해버리자 했는데.. 어?

방 치수를 안재고 왔다. 우리가 그럼 그렇지! ㅎㅎ


일단 쇼룸에서 봐둔 제품들을 잘 메모해두고 집에 돌아와 방 치수를 잰 뒤 온라인 주문을 하기로 한다.

이케아의 장점 중 하나가 바로 3D 시뮬레이션이다. 내 공간 면적을 기입하면 입체적 도면이 생기고, 그 안에 이케아 가구들을 배치해서 대충 어떤 느낌일 지 구체적인 상상을 할 수 있다.


이은지_brunch.png 이케아 3D 시뮬레이션으로 돌려본 수납장 상상


이케아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제품 간의 연결성이다.

같은 프레임이라도 그 안에 구성할 서랍과 진열대, 도어와 손잡이 등의 모든 구성품을 내 마음대로 짜맞출 수 있다. 여러가지 구성품을 대입시켜보며 우리가 꼭 필요한 구성을 완성했다. 옷걸이의 위치와 선반의 개수, 서랍의 종류와 도어, 손잡이의 디자인 등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선택을 해야하는 게 재미있고 유용했지만 어렵기도 했다. 최종 결제를 하면서도 맞게 주문한 건지, 혹시 서랍 사이즈가 잘못 들어간 건 아닐지 내내 불안하긴 했으니. (이왕이면 매장에서 플래너와 상담 후 결정하는 걸 추천)


이케아의 꽃은 조립이라고 하던데...

우리 부부에게 셀프조립의 역사는 '마켓비 수납장'에서 이미 막을 내려버렸기 때문에 무조건 조립서비스를 신청하기로 한다. 주방도구와 소품들이나 사봤지, 이케아에서 이 정도의 가구를 직접 구매해본 적은 없기 때문에 조립서비스 가격이 모든 구성품마다 일일이 추가되는 걸 몰랐다. 가구 가격만 이미 100만원이 넘었고 배송비 2만9천원, 그리고 조립서비스 비용이 벌써 15만원을 훌쩍 돌파하고 있었는데 마지막 스텝인 손잡이 조립비가 갑자기 아까워져버린다. 에잇 이거 빼버리자. 손잡이 3개 조립하는 데 또 3만원이라니? 아니 손잡이 걍 내가 그냥 드릴로 박으면 되지! (뒤에 설명하겠지만 그냥 객기였다. 몇 십만원짜리 사면서 몇 천원 배송비는 그렇게 아까운 심리랄까)


모든 결제를 마치고 대망의 배송일.

맞벌이 부부였던 우리는 돌아오는 가장 빠른 주말의 토요일에 배송을 신청해두었다.

토요일 오전 8시, 이케아 배송기사에게 9시~10시 사이에 도착할 거란 전화를 받고 가구를 들이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예를 들면 바닥 쓸어놓기, 불 켜두기, 조립할 공간 마련해두기.. 등등)


기사님이 방문했고 주문한 부속품들을 하나 둘 방에 쌓아두었다. (참, 그 전에 부속품 4개 정도는 재고 이슈라며 평일에 일부 부분 배송이 된 상태였다) 9시 반쯤 도착한 배송기사님은 모든 제품을 쌓아두고, 이따 12시쯤에 조립 기사님이 따로 방문하실 거라고 했다. 오 이케아는 배송기사와 조립기사가 다르구나. 모든 게 새로웠고 이케아니 그런가보다 했다. (?)


12시가 지나고 1시가 지나도록 방문한다던 조립기사님은 오지 않았다.

이미 오전 8시부터 이케아를 위해 대기를 타고 있었던 우리는 언제까지 대기를 타야하는 지가 궁금해졌고,

이케아 고객센터에 전화해 조립기사 방문시간을 문의한다.


"방문시간은 저희가 특정할 수 없어서, 기사님 연락처를 알려드릴게요~ OOO기사님 입니다. 010-0000-0000"


전달받은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

'운전 중이신가...' 하고 좀 더 기다려보려는데 오잉? 아까 방문했던 배송기사님 연락처랑 같은 번호네?

고객센터가 잘못 알고 있었나? 조립기사님 연락처를 알려달라니까 왜 배송기사님 연락처를 알려줬지. 하고 고객센터에 다시 문의를 한다.


"아까 연락처를 알려주셨는데요~ 배송은 저희가 잘 받았구, 조립기사님 연락처가 궁금해서 전화드린 거였어요~"

"아 고객님, 해당 배송기사님이 조립까지 해주실 예정입니다^^"

"? 아 그런가요? 제가 다시 기사님께 연락드려볼게요"


이 때부터였다. 느낌이 쎄했던 건.

이케아 시스템 상으로는 배송기사=조립기사였고, 우리에게 배정된 배송기사이자 조립기사였던 그 분은 이미 아침부터 우리집에 와서 "기사님이 조립하시려면 공간이 필요하니 이쪽을 치워주셔라" 등의 유체이탈 화법을 시전하고 떠나버렸던 것이다.


그 OOO기사님에게 다시 전화를 건다.


'뚜루루~'

"왜 자꾸 그러시죠?"


정말이지 딱 '나 지금 너 때문에 기분 더럽다' 하는 뉘앙스로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누가보면 내가 뭐 오십통 백통 한 줄 알겠지만 아까 고객센터가 알려준 번호로 딱 한번 걸었던 게 다다.


"아 저 아까 배송해주셨던 집인데요~ 조립기사님이 아직까지 연락이 없으셔서요."

"아니 아까 제가 따로 연락을 주실 거라고 했잖아요"

"아까 12시쯤 조립기사님 올거라 말씀해주셨는데 지금 2시가 넘어가는데 아무 연락이 없으셔서요~ 혹시 연락처 알려주심 제가 직접 연락 해볼게요"

"아 연락을 줄거라는데 자꾸 왜그러세요?"

"..." (빡치기 시작함)


내가 뭐 사돈에 팔촌이 뭐하시냐 꼬치꼬치 캐묻기를 했어,

지금 대체 어디서 뭐하고 자빠져있길래 전화를 그따구로 받냐고 승질을 냈어,

이 사람 나한테 대체 왜 이러나 싶었다.


"제가 연락하라고 전달할게요"

"아니 계속 기다리고만 있어서 그냥 제가 직접 연락하는게 나을 것 같아요. 기사님 그리고... 혹시 지금 제가 이걸 여쭤보는게 기분이 나쁘신거에요?"

"..."

"...?"

"아 그게 아니고 제가 자다 일어나서요"

"?" (2차 충격)

"몸이 안좋아서요 제가. 병원갔다가 자고 있었어요"

"?아..." (아프다니깐 또 할말은 없어짐. 근데 아침엔 되게 멀쩡해보였는데?)

"연락처 보내드릴게요"


'띠링' 번호 11자가 적힌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내가 통화를 끝내고 부들부들 하고 있으니 남편이 그 기사와 다시 통화를 했고,

정황을 알고보니 '몸이 안좋다던' 그 기사가 우리 물량을 다른 기사에게 넘겨버렸고 그게 시스템에는 반영이 되지 않았는지 고객센터에서도 그 사실을 몰랐던 것 같다. 그래서 계속 같은 기사 연락처만 알려준 거고. 우리 물량을 넘겨받은 다른 기사는 이미 배정된 다른 일을 하느라 우리에겐 미처 연락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후순위로 밀린 탓인지 결국 조립 방문은 저녁 6시가 다 되어서야 도착했고, 8시가 넘어서 겨우 끝이 났다. 우리의 소중한 토요일이 그렇게 통으로 날아갔다.


사춘기 방황하는 자식새끼마냥 나에게 짜증만 내던 기사는

남편과의 통화에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연신 죄송하다고 했다.


어찌저찌 방문한 기사님들이 (남성1, 여성1, 총 2 분이 오셨다) 잘 마무리해주셔서 망정이지 주말 내내 찝찝한 기분이 계속갈 뻔 했다. 그 날 아침 우리집에 방문해서 솔직하게 '오늘 제가 조립까지 해야 하는건데 개인 사정으로 다른 기사님이 와주실 거다. 연락처는 여기 드릴테니 12시까지 기다려보시고 연락 안오면 먼저 연락해보셔라' 등의 말이라도 미리 해줬으면, 6시까지 기다리는 건 문제도 안됐을 것 같은데. 참 아쉬운 일처리였다. 한국에 진출은 했지만 서비스는 유럽 스타일인건가? 이케아니까 그럴 수도 있는 건가?


온라인 결제하면서 돈 좀 아껴보겠다고 빼놓았던 손잡이 조립 3만원은 결국 현장에서 추가 결제했다.

이미 하루종일 이케아에 질려버린 나는 단 몇천원이라도 더 지불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으나 이거 또 따로 설치하려면 치수 맞추고 드릴로 뚫고 하는 모든 과정이 귀찮았던 남편의 권유로 결국 백기를 들었다. (사실 화 삭히러 잠시 밖에 산책 나간 사이 남편이 결제해버렸다)


실제론 2시간, 나에겐 12시간 같던 조립 과정이 끝나고 완성된 수납장은 마음에 들었다.

(그 와중에 선반 2개가 불량품이라 교환하는 데 또 일주일 걸렸다 ㅎ)


서랍의 움직임이나 나무, 경첩의 품질, 구성품 간의 연결성 등 제품의 완성도는 정말 만족한다.

다만, 배송과 조립 등의 서비스 측면에선 다소 아쉬운 면이 있었다. 재고 이슈로 지정한 배송일 외에 다른 날 부분 출고가 될 수도 있다는 점과, 예상치 못한 부분 배송 때에도 고객이 직접 수령하지 않으면 배송 취소가 될 수 있다는 점 등. 물론 일부 기사의 개인적인 태도 문제는 이케아 잘못은 아니라해도, 그 기사의 태도로 비추어보아 기사들끼리 물량을 주고받는 일이 관행처럼 보였다. 만약 이케아에선 그런 일이 절대! 네버!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 날만 정말 특별하게 어쩔 수 없이 다른 기사에게 넘겨준 거라고 하면 그도 눈치 보이고 미안할텐데 단박에 그런 태도로 응하진 않았겠지.



나의 첫 이케아 주방부터 주방도구, 각종 조명, 이번에 들인 옷장까지.

사실 이케아 제품은 사용하면서 불만족스러웠던 적은 없다. 오히려 높은 만족도를 주는 쪽이다.


몇 년동안 쌓여온 브랜드에 대한 신뢰도와 애정이 고객과 대면하는 단 한 명의 직원으로 인해 파사삭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걸 이번에 여실히 느끼게 되었다. 물론 나는 여전히 이케아 장바구니를 채워갈 테지만, 이 날의 기억으로 조립서비스가 필요한 큰 가구를 구매하기에는 조금 주춤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느낌적인 느낌.






이 글은 어떤 브랜드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리뷰하기 위함은 아니다.

제품의 장단점을 리뷰하는 글이나 영상 정보는 이미 차고 넘치고 있을 뿐더러, 한 브랜드의 모든 제품을 일일이 리뷰할 만큼 나는 부지런하지 못하다.


이 글은 그저 '내가 경험해온 브랜드'에 대한 기록이다.

'브랜드에 대한 경험'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실제 사용해 본 후기일 수도 있고,

직접 써보진 않았지만 보고 들은 간접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포함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좋은 제품, 자주 쓰는 서비스는 많지만,

정말 좋아하는 브랜드를 갖는 경험은 특별하다.

제품이 아무리 좋아도 CEO의 무책임한 발언에 불매 운동이 일어나기도 하고,

평생 갖지 못할 고액의 명품 브랜드도 '좋아하는 브랜드'는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리즈는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가 과연 어떤 것들이 될 지 그 과정을 남겨두기 위한 기록이 될 것이다.


<나의 브랜드 스토리>

#1. 이케아 "지갑은 두둑하게, 마음은 여유롭게"

#2. 폴스타 "근거있는 유니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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