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의 글쓰기는 말하기의 다른 이름이었다. 세상 모든 것이 신기하고 재미나던 시절,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소소함까지 표현할 수 있는 글쓰기는 못다 한 ‘말하기’였다. 20대의 글쓰기는 ‘보여주기’였다. 학점을 받고 시험 또는 입사를 위해, 업무상 목적을 가지고 적당히 포장한 글쓰기가 주를 이루었다. 30대에는 글쓰기가 무엇이었는지 조차 잊고 살았고, 켜켜이 쌓아온 삶이 반세기를 향해 가는 지금, 글쓰기는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초등학교 시절 풍광 좋은 야외에서 글쓰기 대회가 있었다. 날씨에 취했는지, 문득 생각난 가족 여행을 자랑하듯 나열했다. 어느 하나 빼놓고 싶은 순간이 없어, 하나에서 열까지 빼곡히 적어 내려갔다. 폭포처럼 이야기를 쏟아내어 후련한 마음으로 마침표를 찍고보니, 글은 간데없고 여행사 일정표만 남아 있었다. 글쓰기는 지식이나 감정을 쏟아내는 작업이 아니고, 홀로 말하는 독백은 더욱 아니라는 것을, 글은 읽혀 서로 통할 때 생명력을 갖는다는 것을, 누가 언제 읽을지 알 수 없기에 더욱 세심하고 깊은 배려가 필요한 상호작용이라는 것을, 그날의 기억 위에 시간을 더하며 알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글쓰기를 쉽게 여기지 못했다. 더하여 지나온 시간에 비해 쌓아 온 것이 부족함을 잘 알고 있기에, 글을 쓰려 하지 않았다. 아는 것과 쓰는 것은 별개라지만, 적어도 글로 풀어낼 앎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작은 글쓰기였으나 자기반성으로 마침표를 찍는 과정의 반복은 유쾌하지 않다.
그렇게 미루다가 오랜만에 하게 된 글쓰기는 제법 큰 기쁨으로 다가왔다. 부족함을 진즉 인정한 덕인지, 글쓰기의 희열이 눈에 들어왔다. 연락이 끊어졌던 오랜 인연을 마주한 것처럼, 그저 좋았다. 정리하지 못한 지난날들이, 쌓여가는 숫자로 스러져만 간 것이 아니라, 삶이 더해져 나름의 풍요를 이루었음을 느꼈다. 부족함의 인정은 편안함이 되어 글쓰기의 즐거움을 오롯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렇게 글쓰기는 어느덧 말하기보다 듣기로, 채우기보다 비우기가 되어 있었다.
먼 길 돌아 찾아온 즐거움과 오래도록 함께 하기를 바라본다. 글쓰기의 기쁨은 찻자리를 준비하는 팽주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더함도 덜함도 없는 좋은 찻자리를 위하여, 팽주는 여러 날을 설렘으로 계획하고 정성으로 준비한다. 마음을 채우는 데는 한 잔으로도 충분한데, 깊은 정성이 있어야 가능한 한 잔이다. 정성 깊은 차 한 잔과 담백한 글 한편은 결이 같다. 그런 한 잔을 내는 마음으로 글쓰기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