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댓말을 통해 바라본 예의 본질

禮之本에 대한 어느날의 생각

by Kate

계획된 임신이었지만 준비된 부모는 아니었다. 부모의 길이 어떤 지는 몰랐지만, 존댓말은 사용하도록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말이 늦게 트인 두 아들에게 어른들께 존댓말을 하도록 했다. 아이들의 습관성 ‘왜요?'라는 말에는 "아침에 해가 뜨고, 사과가 사과인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쓰다 보면 알게 된다고....." 답하였다.

나 또한 이해한 후 존댓말을 쓴 것은 아니다. 예(禮)에 대한 배움은 한참 후였다. 그렇다고, 어린 시절 존댓말이 허울뿐이었던 것은 아니다. 존댓말을 사용하면, 스스로 느끼는 것이 있었다. 그 기억이 나쁘지 않았기에, 아이들도 그렇게 하기를 바랐다. EBS 프로그램 ‘아이의 사생활’에서 선악 구분이 없는 신생아가 언덕을 올라가는 동그라미를 방해하는 네모는 싫어하고, 도와주는 세모는 좋아하는 것처럼 모두의 마음에 존재하는 하나를 일깨워주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렇게 시작된 존댓말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그 위용을 드러내었다. 훌쩍 커버린 아들을 혼내던 어느 날, 아이는 마음 한편 억울함을 놓을 수 없었는지, 질풍노도의 시기를 명분으로, 잘못을 알면서도 수긍하지 않았다. 아무 말 없이 버티다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억울하다며 입을 여는데, 끝까지 존댓말을 이어간다. 분노는 보이는데 존댓말 하는 모습이 공손하다. 그 모습에, 천장을 뚫고 뻗어가던 엄마의 분노가 가라앉았다.

평소 부모에게 존경이 화수분처럼 샘솟아 존댓말을 쓰는 것도 아니었고, 화가 났을 때에는 일부러라도 쓰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반항도 뚫지 못한 습관의 힘인지, 존댓말을 하는 그 모습에 혼을 내던 마음이 녹아버렸다. 되려 안쓰러움이 밀려와 엄한 표정을 잃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렇게 한 순간에 상황이 바뀌었다. 아이가 사용한 존댓말은 음절 하나였는데, 부모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반항하던 아이의 마음도 다스려지는 것이 느껴졌다. 고작 음절 하나였을 뿐인데....

돌아보면 두 아들들이 사춘기 동안 선을 넘지 않을 수 있던 어디 즈음에 존댓말의 힘이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분노의 순간에 아이들을 잡아준 것은 존대에 담긴 마음이었을까, 습관이 되어버린 표현 때문이었을까.

혼나는 상황이었다. 잔잔한 마음은 흐트러진 때이니, 그 순간 아이들을 붙잡아 준 것은 습관이 된 표현이었을 것이다. 내뱉은 첫마디 존댓말에 존중과 배려가 담겨 있었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두 마디 세 마디 존대가 이어지고, 그것이 거슬림 없이 들렸던 것은 그 안에 마음이 담긴 때문일 것이다. 무엇이 먼저인지, 무엇이 뿌리인지 묻는다면 주저 없이 마음이라 대답할 것이다. 그 마음이 예(禮)의 시작이고 흔들림 없는 중심일 것이리라. 상황을 바꾼 것은 고작 한(一) 음절이 아닌 마음이 담긴 한(太) 음절이었음이 보였다.

물론, 표현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마음만으로 충분하다면, 표현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분명 시작은 공경과 배려의 마음이고, 마무리 역시 진실된 마음이어야 하지만, 애초에 ‘예(禮)’란 보이지 않는 마음을 드러내어 전달하는 것이니 결코 가볍지 않다. 귀한 마음을 담았으니 이 또한 귀하고 귀하다.

그때 그 순간, 흔들리는 마음을 잡아준 데에는 표현의 힘이 크지 않은가. 그러므로 그 마음이 잘 드러나도록 오랜 시간 전해 내려온 약속, 예의 형식을 이어가는 것은 중요하다. 그중, 세상에 태어나 가장 먼저 접하는 하나가 몸으로 하는 인사와 소리로 하는 존댓말이니, 아이들에게 예를 알려주는 첫걸음이 되어 주었을 것이다. 문득, 아이들이 멋모르고 행한 것은 몸짓과 소리였는데, 익혀 드러난 것은 마음이었음에 생각이 닿는다. 새삼 놀랍다. 시작도 마무리도 마음으로 수렴하는 예(禮)란 쉽지 않은 길이다.

어쩌면, 예(禮)에 있어 마음과 표현이란 닭이 우선이냐 달걀이 우선이냐 보다는, 바늘 가는데 실 가듯 함께하며 구슬 서 말을 꿰어 보배로 만들어가는 것에 가깝다. 간혹, 서로 꼭 맞는 마음과 표현으로 둘의 경계를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겠지만, 예(禮)는 마음을 잘 담아낸 형식일 뿐, 그 본질이 마음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아직 성년이 되지 않은 아들들이다. 길지 않지만, 짧지도 않은 그들의 생애 동안 존댓말을 사용해 온 아이들의 행동과 마음이 고맙다. 존댓말을 시작으로 아이들이 예(禮)의 길을 걸어가기를 바라본다. 사람의 마음은 흔들릴 수 있으나 예(禮)의 본질은 흔들리지 않음을 잊지 않기를, 마음으로 표현을 다하고 표현으로 마음을 다져가기를 바라본다. 두 아이들이 그렇게 어제와 같은 예(禮)이지만, 어제와 다른 예(禮)를 행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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