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신년 계획을 세우며...

어제를 돌아보다.

by Kate

삼재도 아니고, 아홉 수도 아닌데 안팎으로 심란한 요즈음이다. 지난해를 떨치는 것이 어려운 지, 새해 진입이 어려운 지, 숨 쉬는 것조차 버겁다. 태초에 카오스가 있다면 이러하려나. 버티고 버티다 엉킨 실타래의 끄트머리를 잡게 되어 한숨 돌린다. 버티어 나갈 힘을 얻는다. 버티는데 액션 플랜만큼 좋은 것이 없으니, 미루어놓은 신년 계획을 세워본다.

실로 얼마 만인가. 몇 년 전까지는 11월 즈음이면 새해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호기롭게 신년 계획을 적다 보면, 노트 두어 장은 금세 채워졌고, 줄이고 다시 쓰기를 반복하다 보면, 소망들도 한눈에 담길 만큼 추려진다. 욕심은 비우고, 열정은 채우고자 일 년 열두 달 기준 삼아 12가지 계획을 고집했다.

매년 별 다를 것 없는 계획이었다. 건강, 가족 그리고 자기 계발로 나뉘는데, ‘주 3회 30분 이상 운동하여 00kg의 건강한 아름다움을 유지한다.’, ‘월 1회 부모님과 데이트하는 시간을 가진다.’, ‘인문, 사회, 시사 등 다양한 분야의 주 1권 독서와 독서 노트를 작성한다.’, ‘주 3회 마스크 팩으로 탄력 있는 피부를 유지하여 well aging을 실천한다.’와 같은 내용이다. 소소하지만, 소소하지 않은 것들이다.

계획을 적는 기준은, ‘구체적인 목적과 실천 방법을 담자’였다. 길어도 좋으니 한 문장에 담고자 끙끙거리다 보면, 어느새 내용은 물론 순서까지 외우게 된다. 처음부터 예쁜 메모지에 적는 것은 금물이다. 아껴둔 메모지가 예쁜 쓰레기가 되는 현실을 마주할 뿐이다. 손목이 얼얼해질 즈음 메모지를 꺼내어 열두 번째 마침표를 찍는 순간, 온몸이 개운함으로 가득하다. 고이 접어 지갑에 넣으면 준비 완료. 12가지 계획은 나의 일 년을 지켜주고 끌어주는 수호신이 된다.

소소한 계획을 지키는 것은 어렵다. 매년 빠지지 않는 것이 ‘월 1회 부모님과 외식하기’인데 일상의 핑계가 어찌나 다양하던지, 수십 년 나의 삼시 세 끼를 챙겨주신 부모님과 고작 밥 한 끼 함께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아이가 생긴 후로는 분기마다 한 번으로 줄였는데도 녹록하지 않았다. 독서 계획도 그러했다. 주 1권 이상 독서와 독서노트 작성이 월 1권과 밑줄 긋기로 바뀌는 데는 몇 개월 걸리지 않았다. 자격증이나 학습 성취에 대한 목표들도 늘 제자리걸음이었고, 체중계의 바늘은 목표보다 오른쪽에 붙박이가 되어 있었다. 그나마 ‘얼굴 마사지 하기’는 ‘마스크 시트팩 붙이기’로 바꾼 덕에 실행률 0%는 면할 수 있었다.

절반이 되지 않는 실행률이 민망했던 것인지, 예측불허의 일상이 버거웠던 것인지 언제부터인가 지갑 속 메모지는 보이지 않게 되었고, 달달 외우던 계획들도 희미해져 갔다. 텅 빈 지갑에 마음이 쓰려온다. 실천은 적었어도 반성과 정리는 있었는데, 더디 가더라도 나아가고 있었을 터인데. 방향 없이 한 해의 어딘가를 서성이는 지금이 안쓰럽다.

12가지의 계획은 ‘나를 꽃피우리라’는 목표를 위함이었다. 봄이면 꽃보다 먼저 찾아와 꽃보다 가득한 꽃 테마의 광고들을 보며, ‘지는 꽃 말고, 나’라는 혼잣말이 시작이었다. 꽃 피우고 싶은 욕망을 담아 매년 계획을 세웠고 매년 좌절했다. 돌아보니 꽃 피우기 전에 뿌리 내림이 먼저여야 했다.

생각 많은 바람이 한바탕 마음에 휘몰아친다. 안팎으로 몰아치는 바람이 지나가니 올해의 목표가 정해졌다. 채우기, 무사(無事)함에 감사하며 꾸준히 나를 채우기로 정해 본다. 깊이 뿌리내려 흔들리지 않도록, 때로는 유연하게 흔들릴 수 있도록.
세부 계획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방향이 바뀌었으니 어제와 다른 계획이다.

인생, 무지개와 같아서 여인으로 아내로, 엄마로, 딸로, 사회인으로 조화되어야 아름답다 생각했다. 이제 무지개가 꼭 일곱 색 일 필요도 없고, 모양도 크기도 상관없음을 알게 되었다. 조화로워 무지개가 아니라 덧없어서 무지개가 아닌가. 그러니 마음은 가볍게, 자세는 진지하게 계획을 세워본다. 덧없어서 더욱 소중한 2021년의 계획을 채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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