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는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꽃>, 김 춘 수
나에게도 호(號)가 생긴다고 한다. 잊고 있던 욕망 하나가 눈을 뜬다. 나는 ‘호(號)’ 를 통해 어떤 꽃으로 피어나기를 꿈꾸고 있는가.
모두가 그러하듯, 나도 씨앗 하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내가 가진 씨앗이 수박씨인지 호박씨인지 알지 못하지만, 나는 나의 씨앗을 틔워 자라게 할 것이다. 호박을 수박으로 바꾸지는 못해도, 튼실한 녀석으로 키워내고 싶은 마음이다.
딱 이 마음이면 좋으련만, 유약한 인간의 욕심은 눈덩이보다 빠르게 불어난다. 운명에 꼭 있다는 업보 하나쯤은 풀어주고, 인생길 돌부리 걷어내 줄 수 있는 도움되는 호(號)는 든든할 것이고, 편한 길 더욱 찬란하게 도와주는 호(號)는 축복일 것이며, 외롭지 않게 벗을 불러들이는 호(號)에 행복할 것이며, 소중한 내 가족 행복까지 보장해주는 호(號)라면 버선발로 감사하리라. 수십 년 삶 동안 이루지 못한 것들을 호(號) 하나에 담아내려 하니 여간 복잡한 것이 아니다.
그리하여 나의 호(號)에는 이러한 소망이 하나도 담기지 아니하기를 바란다. 부족한 면이 있어 오히려 편안하기를, 보이는 그대로의 모습이 담겨있기를, 소중한 순간을 잊지 않게 해 주는 호(號)로 불리기를 바래본다.
호(號)를 건네는 마음에는 받는 마음이 가늠할 수 없는 묵직함이 있을 것이다. 나의 소망을 담음보다 묵직한 마음 하나 받아 거울로 삼으련다. 곱거나 아쉬운 내 어느 하나를 담은 호(號)를 거울로 삼으면, 호(號)에 담기지 아니한 모든 선한 것들과도 통하게 되리라.
건네는 마음을 받으면, 묵직한 실천은 나의 몫이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호(號)를 주고받는 마음이 가볍지 아니한 이유가 여기에 있으리라. 그렇게 소중하게 받은 호(號)를 거울 삼아 시인이 말한 꽃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