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의 추억

가족이라 더욱 행복한 이름

by Kate

철썩 같이 믿고 있었다.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주신다고. 딱 내가 원하는 선물은 아니어도, 언제나 근사한 선물을 안겨 주셨기에 그 존재를 의심하지 않았다. 어느 해 큰집에서 사촌들과 함께 지낸 크리스마스 이브, 새벽에 한 모금 마시러 나왔다가 문득 고개 들어 바라본 냉장고 위 포장이 뜯겨있는 과자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다음날 아침 모두의 머리맡에 선물과 함께 놓던 그 과자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마음에 내가 모래 인형처럼 사라져 버리는 줄 알았다.

그렇게 산타가 가족이라는 것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나는 아이들의 동심은 지켜주고 싶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즈음이면 치밀한 작전을 세웠다. 선물은 늘 엉뚱한 곳에 두고 실수로 흔적을 남기 듯 우유도 반쯤 마시고 과자 부스러기도 떨어뜨리고 창문을 살짝 열어 두기도 했다. 두 아들은 현관문 밖에 놓아둔 선물을 찾지 못 한 채 엊그제 싸워서 선물이 없는 것 같다며 거실에 주저앉아 슬퍼하기도 했다. 좌절한 동심을 달래어 현관문을 열게 하는 것이 어찌나 힘들었던지. 돌아보면 우리에게 더욱 선물이고 산타가 되어 준 시간이었다.

동심을 위한 노력은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겨울에 위기를 맞았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흥분한 목소리로 “엄마! 산타 할아버지 있지요?!” 하고 묻는다. 내용인 즉 산타의 존재를 확고히 믿는 아이를 바보라고 놀리는 몇몇이 있었다는 것이다. 수년간의 노력이 이렇게 무너지는가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러나 위기는 의외로 간단하게 마무리되었다. '친구를 놀리는 걸 보니, 그 아이는 산타 할아버지한테 선물 못 받는 것이 맞네. 그래서 부모님이 주시나 보다.’라고 하니 큰 아이가 의자 등받이에 팔을 걸치며, ‘그렇지요?’ 라며 승리의 미소를 짓는다. 그날 이후 아들은 산타에 대한 친구들의 놀림에 말없이 미소로 대응하더라는 소식을 친구 엄마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철썩 같이 산타를 믿던 아이들도 머리가 커지면서 자연스레 진실을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집에서는 누가누가 잘 참나 내기라도 하 듯 서로 모르는 척 지냈다. 산타를 보려고 밤을 새우던 아이들이 엄마와 아빠가 산타라는 증거를 잡기 위해 밤을 새우기 시작했다. 동심 놀이가 탐정 놀이로 바뀌면서 엄마와 아빠의 계획도 더욱 치밀해졌다. 선물을 해외 배송이 된 것처럼 중앙 경비실에 두고 25일 아침에 인터폰으로 연락을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산타의 비밀을 알고 있던 두 아이가 중앙 경비실에서 선물을 받아 오면서 산타의 존재를 너무 집요하게 파헤치면 선물을 아예 못 받게 될까 걱정했다는 이야기는 한참 후에 들을 있었다.

큰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비로소 산타 커밍아웃을 했다. 치열하게 숨바꼭질하며 짐작만 해오던 마음과 참아낸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동생이 산타의 존재를 의심하며 형에게 물어보았다고 한다. 형은 이 녀석이 너무 빨리 알면 안 되겠다 싶어서 산타는 정말 있다고 말해주었고 동생은 ‘우리 형이 참 순진하구나’라고 생각하며 형의 순수함을 지켜주기로 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올해는 부모님이 진실을 알려 주시려나, 아니면 어디에 숨기시려나, 밤을 꼴딱 지새워 당황시켜 드려야 하나, 적당히 잠들어야 하나… 다양하고 짜릿한 고민 모두가 겨울밤을 채워 준 산타였다.

산타 커밍아웃과 함께 인수인계를 선포하고 이제는 두 아들에게 소소한 선물을 받아내고 있다. 녀석들의 반발이 적지 않았지만 그리 불만이라면 그대들의 자녀에게는 인수인계하지 말라고 조언해 주었다.

산타를 찾아 밤을 새우던 아이들이 어느덧 산타로 성장해 간다. 함께 만들어가는 산타의 추억이 변해가는 것인지 다양해지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감사하고 소중할 뿐이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산타도 2주 자가격리 후 1월 9일이나 되어야 오신다는데, 우리 집 산타는 내수전용이라 날짜 따박따박 맞추어 오셔야 한다고 이야기해 두었다. 2020 산타의 추억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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