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찾기

나에게만 엄격했던, 애쓰지 않아도 충분했던.

by K장녀

나이가 어려 기억이 흐릿한 때부터 최근까지 거의 평생 동안 나를 괴롭힌 것이 있다. 청소년 시절에 그것은 '장래 희망'이라는 이름의 빈칸이었고, 성인이 된 후에는 '취업 준비'라는 고뇌의 시간이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대우(?)해주는 3 때를 포함하여 학창 시절 내내 나를 힘들게 것은 공부가 아니라 공부의 목적이었다. 누구든 그것을 묻지 않았다면 덜했을까. 명절에 만나는 친척 어른들, 학기 초마다 작성해야 하는 자기소개서, 진로 수업 시간에 제출해야 하는 과제들, 심지어는 매일 보는 친구들까지도 같은 질문을 끊임없이 반복하였다.


'너는 꿈이 뭐니?'

'장래 희망이 뭐야?'

'커서 뭐하며 먹고살래?'

'어느 대학, 어느 학과에 가고 싶어?'


아직 찾지 못한 답을 요구하는 질문을 지속적으로 받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부담되고 괴로운 일이었다. 하지만 쉽게 답을 내놓기엔 나는, 생각이 많은 타입이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내가 원하는 것을, 재밌을 것 같은 일을 가볍게 대답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고 집이나 학교에서 노래 잘하는 아이로 칭찬을 받으며 자랐으니 가수가 되고 싶다고 말할 법도 한데, 가수는 아무나 되는 거냐고 비웃음을 당할 것 같아 말하지 못했다. 아이를 유별나게 예뻐하고 귀여워하여 유치원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으나 그 일은 아주 힘들고 그에 비해 벌이는 얼마 되지 않는 소위 3D 직종이라는 누군가의 '의견'에 일찌감치 장래 희망에서 제외시켰다.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안 되는 이유를 스스로 제시하다 보니 참 세상에 할만한 일이라곤 없구나 생각하게 되었고, 결국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잘 모르는 어른으로 나이만 먹게 된 것이다.


꿈을 찾지 못한 어른은 흐르는 대로 살게 되어있다. 목표점을 정해놓고 그것을 향해 가는 여정이 아니라, 발길 닫는 대로 누군가 이끄는 대로 그렇게 터벅터벅 걷는 것이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가는 길은 참 아득하고 지루했다. 재미도 없이 걷는 이 긴 길의 끝이 낭떠러지일까 봐 겁이 났다. 그러다 결국 어른도 아이도 아닌 그 정도의 나이에, 막막함을 견디지 못하고 우울증(아마도 지금 확신컨대 그것은 분명.)에 걸렸을 때, 167cm의 키에 46kg까지 살이 빠진 거울 속 나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닌 해골이었다. 그 시간 간절히 바랐던 것은 그저 제시간에 잠을 잘 수 있고 눈 앞의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 그것뿐이었다. 날이 밝을 때까지 잠이 들 수 없던 그때, 날마다 오늘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친구와 함께 간 중국집에서 나에게는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 짜장면을 정신없이 먹고 있는 친구를 보며 눈물 나게 부러웠다. 그 고통의 시간들은 나의 부던한 노력 끝에 조금씩 지나갔고 그 어두운 터널을 지나온 이후 내 인생은 조금, 아니 어쩌면 아주 많이 바뀌었다.


걷고 있는 길의 끝을 걱정하기보다는 지금 당장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행복하게 느껴진 것이다. 남들이 다 자는 시간에 나도 같이 잠들 수 있다는 것, 배고픔을 느끼고 음식의 냄새를 느끼고 그것을 먹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것, 티비를 집중해서 보고 그 내용이 머리에 들어온다는 것과 같은 소소한 일상이 더할 나위 없는 감동이 되었다. 그렇게 사소한 현재에 감사하고 흘러가는 내 오늘이 아깝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나, 더 이상 내 꿈이 뭔지 미래에 뭐가 돼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것을 고민하다가 아까운 내 오늘이 또 불행해질 수는 없으니까. 여전히 흘러가는 대로 걷고 있었지만 참 희한하게 그게 재미있어졌다. 그 길의 끝이 불안하지 않으니 주위 풍경을 즐길 수 있었고 확고한 목적지를 향해가는 여행보다 오히려 더한 기대와 설렘을 느낄 수 있는 즉흥 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그 즉흥 여행에서 나는 눈에 보이는 곳에 들어가고 싶으면 들어가고 나오고 싶으면 나왔다. 오른쪽 길로 가다가 다시 돌아와 반대쪽 길로 가기도 하고 앞서가는 낯선 사람을 따라 걷기도 했다. 모든 과정들이 행복했고 그러는 동안 내가 제일 몰랐던 '나'에 대해 뚜렷이 알게 되었다.


I like it. I'm twenty five
날 좋아하는 거 알아
I got this. I'm truly fine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날

아이유가 신곡을 냈을 무렵, 누구나 스스로에 대해 차차 알아가는 거구나 싶어 공감이 되었고 그와 동시에 나보다 2년이나 먼저 스스로에 대해 깨달은 동생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그 어려운 일을, 그 힘든 과정을 어떻게 그렇게 빨리 지나올 수 있었을까. 결코 쉽지 않은 시간이었을 것을 나는 안다. 그래서 이제는 말하고 싶다. 여전히 꿈에 대해 질문당하고 있는 여러 미성년자 및 성년들에게. 내 짧은 경험의 결과 꿈이라는 것이 그리 대단하지 않으며 스스로 채찍질하여 그것을 찾으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누군가에게 밥을 맛있게 먹는 것이 꿈일 수 있고, 알 수 없는 길을 가는 자체가 인생일 수 있다고.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할 수 있을지 애써 분석하지 마시라. 분석하는 동안에는 아무것도 즐길 수 없고 좋아할 수 없으니. 그냥 하고 싶을 때, 혹은 미칠 듯이 하고 싶진 않아도 기회가 생기면, 망설이지 말고 뭐든 해보시라. 원래 무심코 들어간 식당이 그 여행의 최고 맛집이 되고, 우연히 저지른 일이 평생 회상할 수 있는 가장 즐거운 에피소드가 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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