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이해

염병에 걸린 자여 남의 고뿔을 우습게 보지 마라.

by K장녀

중학교 입학식을 앞둔 저녁, 황당하게도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 그때의 그 상황과 기분을 나타내는 가장 가까운 단어가 아마도 '황당하다'가 아닐까 싶다. 엄마는 왜인지 나의 초등학교 졸업식 이후부터 계속해서 몸이 안 좋았다. 사실은 그 훨씬 전부터 평생 안고 가야 할 병을 가지고 있었지만 맹세컨대 죽을병은 아니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그리 된 것이다. 상상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었기에 그 소식을 듣고도 믿을 수가 없었고, 병원의 커튼 사이로 누워있는 엄마의 맨몸을 보고도 꿈이길 기도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 꿈은 깨지 않았고, 현실을 받아들인 후 내 입에서 처음 나온 말은 소름 끼치게도 '그럼 나는 어떡해.'였다. 이후 3년은 괜찮은 듯 괜찮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은 듯 웃고 지내다가도 밤에는 하루 건너 한 번씩 눈물 바람이었고, 학교를 별 탈 없이 다니는 것처럼 보였으나 틈만 나면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며 보냈다.


오히려 어린 나이였기 때문일까, 자주 몰래 울기는 했지만 견디지 못할 만큼 괴롭거나 삶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다. 그러나 그때부터 다른 이의 아픔이 하찮게 보였던 것은 한편으로 나의 상처보다 큰 것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엄마를 떠나보낸 후 친구들의 하소연이나 고민은 참 보잘것없이 느껴졌다. 남자 친구랑 헤어졌다고 우는 아이를 보고 겨우 그까짓 일로 울 일인가, 성적이 떨어졌다고 고민하는 친구를 보고서는 삼시세끼 차려주고 학원 알아봐 주는 엄마가 있는데 성적이 나쁜 것은 본인 탓이지 않은가, 했다. '이 세상 어떤 슬픔과 좌절감이 엄마를 잃은 아픔을 넘을 수 있나, 자식 잃은 부모라면 몰라도.'하고 생각했다. 어린 나는 감정을 객관적 사실로 비교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어리석은 아집을 깰 수 있었던 것은 우습게도 실연의 아픔을 겪으면서 이다. 대학생이 된 나는 처음으로 연애를 시작했는데, 진심으로 좋아했지만 서툰 감정 표현 탓에 헤어지게 되었다. 그 무렵 이미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정서가 불안했던 나는 남자 친구를 잃게 되자 확인 사살을 당한 기분이었다. 그나마 겨우 붙잡고 있던 멘탈마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는 표현이 정확했다. 남자 친구와 헤어져서 울고 있는 친구를 속으로 비웃었던 내가, 같은 이유로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을 맛본 것이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 세상의 전부였던 엄마를 영영 보지도 만지지도 못하게 되었을 때도 이만큼 힘들지는 않았었는데, 어째서 기껏해야 안 지 2년도 되지 않은 남자 하나 때문에 이리도 아프단 말인가. 내가 불효자식이라서? 남자에 미친년이라서? 엄마보다 그 애를 더 사랑해서? 아니다. 개인이 느끼는 감정의 크기는 사회적으로 정해 놓은 사건의 크기에 비례하지 않고, 현재의 슬픔은 과거의 슬픔보다 더 뾰족하게 가슴을 찌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결론 지은 후 나는 더 이상 남의 아픔을 같잖아하지 않는다. 함께 살던 강아지의 죽음에 오랜 시간 슬퍼하는 친구를 진심으로 위로하게 되었다. 머리가 이상하게 잘려서 목젖까지 보이며 울어재끼는 동생의 마음을 비웃지 않게 되었다. 다른 이의 고통을 비교하지 않게 되었다. 사소하게 보이는 일일지라도 당사자에게 어떤 의미, 어떤 크기의 감정으로 다가갈지는 아무도 모르기에 남의 아픔을 가볍게 보지 않는 것은 내가 정한 몇 가지 삶의 원칙 중 하나가 되었다. 누군가는 그 사람의 사정을 다 알지 못할 때, 진심으로 공감하고 위로하는 것이 어렵다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반대로 잘 모르기 때문에, 함부로 별 것 아닌 일로 치부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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