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예민한 거야?

다른 부류에 대한 의문

by K장녀

누구나 한 번쯤은 스스로의 예민함에 대해 고찰해 봤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예민한 건가?', '내가 이상한 거야?'와 비슷한 류의 의문을 가진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답을 찾았느냐고 묻고 싶다. 그 답이 '아니다.'였다면 다행이겠지만 '그렇다.'로 결론 지은 이들에겐 아마 그 후의 삶이 늘 인내와 회피, 죄책감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들어 여기저기 갖다 붙여지는 '충(蟲)'까지 더해지며 조롱거리로 전락한 일명 '예민충'들은 과연 진짜로 그렇게 예민한걸까.

나이를 먹을수록 '거슬리는' 일들이 많아지는 것을 느낀다. 그것은 히스테리나 까탈스러움이 갑자기 생겼다기보다는 완성되지 않았던 가치관과 생각들이 '그러기로 정한' 기준 안에서 서서히 자리잡아 가기 때문일 것이다. 한마디로 선이 없다가 생기면서 그것 안에 있거나 밖에 있는 것이 확연히 존재하고, 선 밖에 있는 것들이 눈에 거슬리고 심기가 불편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 선 밖에 있는 것들이란 잘못된 것인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개의 서로 다른 선들이 그어질 것이라고 확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옳은 것이 남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음을 충분히 인정한다. 그러나 옳고 그름과 별개로 우리는 비슷한 선을 가진 사람과 있을 때 덜 예민해진다. 공유하고 있는 안과 밖의 면적이 비슷할 수록 저 사람의 어떤 것이 내 선을 넘을 확률이 적어지기 때문에. 나와 다른 부류의 사람과는 등을 돌리라는 말이 아니다. 어느 정도의 포용과 폭넓은 이해는 사회적 동물로 살아가기 위해 가져야할 필수 덕목이기에 두루두루 잘지내면 좋겠지마는 그 과정에서 겪는 불편한 감정까지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결과적으로 예민하다는 것은 본인과 잘 맞지 않는 사람 또는 상황과 함께 할 때 일어나는 감정이다. 본인 만을 탓할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거슬리는 것을 콕콕 집어내어 그것을 바꿀 수 있는 권력이나 힘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을 표출하고 상황을 바꾸지 못하더라도 스스로가 이상하고 틀렸다는 결론은 버리는 것이 좋겠다. 실제로도 그렇지 않음은 물론이고 어차피 모두 다 다른 사람이 섞여 살아가는 세상에서 누가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저 스스로 예민하지 않아질 수 있는 자리를 찾아 나도 남도 편해지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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