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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트쌤 Nov 22. 2022

슬럼프가 아들을 덮쳤다

바이올린 슬럼프에 빠진 아들

"나 바이올린 레슨 그만하고 싶어"

6년 동안 쉬지 않고 악기에 집중하던 아들에게 슬럼프가  왔다.

바이올린을 너무 좋아해서 힘들어도 엄마에게 징징거리면서 연습을 손에서 놓지 않던 아들이 레슨 끝나고 집에 오더니 이제는 그만하겠단다.

바이올린 선생님께는 죄송하지만 레슨을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께서 우리 아이를 워낙 아끼셨는데, 그도 그럴 것이 영재원 오디션을 준비시키려고 곡을 레슨 중이었던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아이가 의욕을 잃었으니 선생님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 일 것 같다. 무척 서운해하셨지만 나로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쉰 지 6개월이 넘었는데 선생님은 아직도 종종 연락을 해오신다)


6년..... 꽤 긴 시간이다.

나도 악기를 고등학교 1학년까지 해봐서 아는데 6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만두겠다는 소리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아이였다. 애초에 바이올린을 시작한 계기도 엄마가 시켜서 한 게 아니라 아이가 하고 싶다고 레슨 선생님 구해달라고 4살 때부터 나를 졸랐다.

4살에 피아노도 아니고 바이올린을 배우는 건 너무 고된 일이 될 것 같아서 조금 더 크면 배우라고 1년을 더 기다리게 해서 5살에 시작한 바이올린이었다. 건반만 누르면 소리가 나는 피아노와는 달리, 바이올린은 현의 정확한 위치를 잡아야만 바른 음정의 소리를 내는 섬세한 악기이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은 현의 간격을 생각해서 정확한 음을 내기에는 손이 작아 힘들기 때문에 일찍 시작해도 아이에게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고 해서 1년을 더 기다린 후 5살이 되었을 때 선생님을 붙여줬다.

아이가 원해서 시작한 레슨이라서 그런지 꽤 오랫동안 끈기 있게 잘했는데 이제야 슬럼프가 온 모양이다.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들어간 지 2달 만에 코로나가 터져서 오케스트라 연습도 무기한 중단되었고, 아이가 멤버로 들어가 있던 오케스트라와의 개인곡 협연 일정도 취소가 되었다. 그래도 코로나 시국에도 꿋꿋하게 2년 동안 열심히 연습하고 레슨 받고 평온한 시기가 이어지다가 모차르트 콘체르토를 4번까지 끝내고 난 후 아이에게 슬럼프가 왔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중급 정도 되는 난이도의 곡을 연주할 때 까지는 대체로 재미있게 하다가 어려운 곡을 레슨 받게 되는 시기부터 슬슬 소위 말하는 현타가 오는 것 같다. 나도 그랬었으니까...

연습을 안 하는 것도 아닌데 실력이 확 느는 것 지도 않고, 곡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그에 따라 바이올린 테크닉도 점점 더 고난도의 테크닉이 필요해지면서 의욕이 솟구치던 아이가 버티기 힘든 지경에 온 듯싶다.

아들의 악보들이다. 어려운 곡을 배우면서 많이 지쳤나보다.

레슨은 좀 쉬고 집에서 혼자 그동안 배웠던 곡들을 연습하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하도록 했다. 쉬고 싶다는데 악기를 전공할 아이도 아니고 억지로 싸워가면서까지 시키고 싶지도 않았기에 레슨은 지금 쉬고 있고 대신에 감이 떨어지지 않게끔 집에서 연습은 계속하고 있는 중이다.

가끔씩 다른 사람의 악기 연주를 들을 기회가 몇 차례 있었다. 전문가들의 연주를 들으면 동기부여가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음악을 좋아하는 아이라서 그런지 누군가의 연주를 들으면서, 바이올린에 대해 아들이 가지고 있는 자부심이 느껴져서 연주를 아예 포기한 것 같지는 않던데 아직까지는 본격적으로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고 싶지는 않은가 보다.

 얼마 전에는 다른 오케스트라 오디션이라도 보는 건 어떻겠냐고 권유도 해봤다.

"엄마, 그 당분간은 쉬면서 지금처럼 집에서 연습할게. 아직은 오케스트라도 레슨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 내년에 새 학기 시작하면 마음이 바뀔 수도 있을 것 같긴 한데 일단 올해는 좀 쉬고 싶어."

나도 그럴 때가 있긴 했었다. 내가 좋아서 시작한 피아노인데 어떤 때는 쉬고 싶어도 엄마는 그동안 한 게 아까우니까 그냥 하라고 밀어붙이셔서 엄마랑 싸워가면서 피아노 레슨을 받았던 적이 있다. 정작 슬럼프를 넘기고 전공시켜달라고 얘기했을 때는 엄마가 반대하시길래 끝까지 해보려고 피아노를 고1 때까지 쳤는데 결국은 내가 졌다.


나도 지금 그때 엄마의 심정과 똑같은 심정이다. 이래서 자식 키워봐야 알 수 있다고 하는가 보다.

그런데 나 또한 아들을 악기 전공시킬 생각이 없다. 그래서 아이와 싸우면서까지 시키고 싶지는 않다.

니즈(Needs) 분명한 아이니까 알아서 잘 헤쳐나가리라 믿고 부모로서 옆에서 잘 지켜봐 주고 힘이 나도록 용기를 주는 게 지금은 내가 해야 할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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