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던 보육이던 학원을 필요로 하고 영어는 어차피 우리 학원이 아니더라도 어디서든 배워야 하는 과목이기에 강의실에 들어와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 각자 개성 강한 친구들과 하루를 보내면서 아이들 이야기도 들어주고 또 시험에 지친 중학생들과 함께 지지고 볶고 하는 그런 일상조차도 소중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학교를 떠나는 교육공무원들의 이야기를 뉴스나 시사프로그램에서 접할 때마다 사교육과 공교육이라는 차이만 있지 현장에서 느끼는 건 똑같기에 깊은 공감이 되었는데 유독 이런 뉴스가 점점 늘어나는 건 아이들보다는 어른의 문제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
"애가 제 말을 안 듣는데 저보고 어쩌라는 말인가요?"
"저라고 집에서 가만히 있는 게 아니에요. 애가 멋대로 행동하는 게 저도 감당이 안돼요"
"애가 왜 맨날 지각하는지 모르겠어요"
"알고 있어요. 애가 학교에서도 똑같이 행동해서 담임선생님께 몇 번이고 전화를 받았어요"
"고객님께서 전화를 받지 않아.....(핸드폰의 음성안내멘트)"
놀랍게도 위의 멘트들은 내가 한 달에 한 번씩 학부모 상담 때 듣는 고정멘트들이다.
마지막의 핸드폰 음성안내는 전화를 고정적으로 받지 않아서 상담이 몇 달 만에 한번 아니면 정말 담임선생님과 상담하고 싶은 경우에만 상담이 이뤄지는 경우이다.
전화를 일부러 피하는 학부모는 나 역시 고집스럽게 스토커처럼 전화를 계속하지는 않는다. 왜 일부러 피하는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부터였는지 확실히 기억나지 않지만 상담의 내용이 점점 교육이 아니라 보육으로 바뀌고 있다.
모든 학생들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건 진도나 수업에 대한 이해도의 상담이 아니라 기본적인 태도문제에 대한 상담의 건수가 확률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나 역시 6학년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을 키우고 있는 워킹맘이기에 육아와 교육의 고충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엄마들의 이런 멘트에 지쳐서 대충 상담을 마무리하고 전화를 끝내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아이들이 학원 와서 징징거리는 건 이제는 인이 박여서 참을 수 있지만 학부모가 상담하면서 투정 부리고 징징거리는 건 솔직히 정말 참아주기가 괴롭다.
워킹맘들은 학원을 교육과 보육의 목적 둘 다를 가지고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처음에는 이해를 하려고 노력했다. 같은 처지에 있는 나도 '그래, 엄마가 일하면서 애까지 챙기려니 힘들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워킹맘, 전업맘 구분 없이 매번 상담 때마다 들리는 고정멘트에 이번 달은 대체 내가 왜 매달 이런 이야기를 듣자고 상담전화를 하고 있는지 모를 현타가 갑자기 몰려왔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기에 시행착오를 많이 겪을 수밖에 없다.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면 내 나이 또래의 엄마들 역시 입시와 경쟁에 힘들게 대학 들어갔고, 또다시 힘들게 취업경쟁에 뛰어들어 나름대로 직장에서 탄탄하게 커리어 쌓아가면서 일했거나 아니면 이제는 책임자의 위치에서 한 부서를 책임지고 있을 직위에 있는 나이이다.
그러니 모두 육아와 교육에 서툴고 힘들 때는 '내가 왜?'라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세대들이다.
각자 자기 위치에서 해야 할 역할이 있듯이 부모가 되면 부모가 해야 할 역할이 있는데 우리 또래 세대는 아이 따로 나 따로 인 경우가 종종 눈에 띄어서 참 안타깝다.
아이에게 부모의 인생을 올인하라는 말이 아니다. 기본적인 태도문제는 부모의 양육환경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나 역시 내 주위에는 이런 집이 없어서 참 낯설다.
솔직히 '도대체 이 집은 애는 뭐 하러 키울까?'라는 생각이 드는 집도 있지만 그건 그 집만의 문제이기에 내가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없다. 보육 환경이 이러니 아이의 태도가 좋을 리 만무하다.
이래서 부모교육이 따로 필요한데 문제는 이런 집들은 부모교육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요즘에는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참여할 수 있는 각종 부모교육이 지천이고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유튜브만 검색해 봐도 부모교육 영상을 많이 찾아볼 수 있는 좋은 교육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힘들게 공부해서 대학 가고 취업했는데 무슨 부모교육까지 받아야 하느냐 하는 건 오산이다. 부모도 부족하면 교육을 받아야 하는 시대가 되었으니 꼭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나 자신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서라도 필요하면 교육을 받아야 한다.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깊은 울림을 준 성파스님의 책 <일하며 공부하며 공부하며 일하며>에서는 한평생 공부하신 스님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단순한 불경공부가 아닌 그림, 언어,도예, 전통염색, 차문화 등 다양한 범위의 공부를 하셨다.
마음을 비운다 이런 말을 하는데, 이 비운다는 말도 안 맞는 말이거든요. 비우고 자시고 할 게 없는 거라. 언제 채운 일도 없는데 뭘 비워요. 본문 p.345
비울 게 없는데 뭘 비우냐는 스님의 말처럼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로서, 그리고 한 가정을 꾸리는 가정 구성원으로서 부모도 교육이 필요하면 교육을 받아야 최소한 상대방에게 "나보고 뭘 어쩌라는 거냐"는 무책임한 말을 내뱉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