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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트쌤 Jun 12. 2023

된장국 트라우마

내가 된장국을 싫어하게 된 결정적 계기

나는 원래도 국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특히나 된장국은 더 안 좋아 하지만 어릴 적에는 된장국을 좋아하는 엄마의 영향으로 그래도 안 먹지는 않았다. 친정 엄마는 음식에 대한 자신만의 주관적인 철학이 뚜렷한 분이시라 영양과 건강식에 매우 민감하신분이다. 한국사람은 된장국을 먹어야 한다며 호박된장국, 시래기된장국, 얼갈이 된장국 등등 재료만 바꿨을 뿐이지 본질은 결국 다 똑같은 된장국을 끓이셨다.

그런데 어릴 때는 그나마 먹기라도 했는데 오히려 어른이 된 후 된장국에 정나미가 뚝 떨어지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일하면서 생겨버렸다.


"오늘도 된장국이에요? 왜 맨날 국이 된장국만 와요?"

유치부 아이들이 푸념을 늘어놓는다.

"원장님이 급식업체에 이야기하셨는데 왜 식단이 안 바뀌는지 선생님도 모르겠네"


계약한 급식 업체에서 국을 몇 주째 된장국으로 보내주고 있다. 5일 중 4일은 매번 국이 된장국이다.

보통 급식 업체를 계약하기 전, 업체로 부터 한 달의 식단표를 받은 후 일주일 정도 해당업체의 급식을 받아서 먹어보겠다고 연락한 후 금액을 지불하면 아침에 급식을 배송해 준다.

이렇게 업체의 급식을 직접 먹어보고  판단해서 정식 계약을 하는 게 영어유치부의 급식 계약 수순이다. 일주일만 음식을 따로 만들어서 배송해 주는 것이 아니고 업체가 자기네들 식단을 보내주면 학원은 우선 식단대로 음식이 오는지 확인하면 되고 업체 측은 당일 식단표 와 동일한 음식을 새벽에 만드는데 계약한 인원수만큼 분량을 더 늘려서 만든 후 각자 자기네 업체와 계약한 학원으로 아침에 배송해 주는 시스템이.


일주일 먹었을 때는 식단대로 급식을 배송해 줬는데 영양사가 교체가 된 건지 어느 순간부터 국은 매번 된장국, 반찬도 식단표에 있는 반찬이 오지 않고 제멋대로이다.

아이들 급식은 식단표에 나온 대로 먹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학부모와의 약속이기도 하고 대체로 선생님이 주는 음식은 남기지 않고 먹은 후 깨끗하게 식판을 비우도록 가르치고 있는데 주 4일이 된장국,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는 나물 반찬이 식단과 상관없이 주 5일 배송되는데 아무리 선생님이 주는 거라 하더라도 도저히 아이들에게 다 먹으라고 강요할 수가 없는 수준의 식단이다.

어른인 선생님도 먹기 싫은데 아이들은 오죽했을까!

이건 누가 봐도 음식으로 학대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원장님께 급식업체를 바꿔달라고 건의를 했다.

"선생님, 우리가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하면 위약금을 물어야 해요"

"식단대로 음식을 보내지 않 업체가 먼저 계약을 위반한 경우에는 위약금 안 내셔도 돼요"

학원 짬밥이 몇 년인데 내가 그걸 모르겠는가!

"업체에 식단대로 보내달라고 건의해볼게요"

원장님이 급식업체 사장님께 건의를 하기로 하고 급식 문제는 그렇게 마무리가 되나 싶었다.


"선생님 국 먹기 싫어요"

"나물 반찬 한 개만 주세요. 먹기 힘들어요"


한 달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식단은 개선이 되지 않고 있고, 나 역시 점심시간에 된장국은 아예 식판에 덜지도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 식판에 먹으라고 덜어주는 급식이 점점 엉망이 되어갔고, 어떤 아이는 정말 개미눈곱만큼만 점심을 먹었다.

이게 아이들에게도 문제지만 당시 한국인 선생님은 점심을 학원에서 무상으로 제공해 줬고, 원어민 선생님은 점심 식대를 지불하고 급식을 사 먹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급식메뉴를 본 후 대부분의 원어민들은 나가서 점심을 사 먹고 왔다.


"Kate, 내가 한국생활 3년 차인데 급식 정말 엉망이야. 어떻게 그 흔한 김이 한 번을 안 오지? 김이라도 있으면 싸 먹을 수 있는데 단백질은 하나도 없고 맨날 섬유질만 있어. 도대체 이런 급식을 아이들이 어떻게 먹는 거지? 그 업체는 다른 학원에서는 컴플레인을 안 하나?"

"급식 업체 바꿔달라고 원장님께 이야기했는데 도통 듣지를 않아. 원장님도 사 먹고 오면서 왜 업체를 안 바꾸는지..."


우리끼리 교무실에서 이런 이야기가 오가는 동안 돈을 내고 급식을 사 먹는 원어민 선생님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지게 되었고, 아이들에게서도 돈가스 언제 구경했는지 모르겠다는 원성이 잦아들자 원장님이 급식업체 사장님께 전화를 다시 해서 그동안 참을 만큼 참았으니 앞으로 일주일 동안  식단대로 급식을 보내지 않으면 계약을 파기겠다고 최종통보를 했다.


컴플레인을 하고 난 후 일주일은 식단표에 나와있는 식단에 맞춰 보내더니 일주일이 지난 후부터는 다시 또 자기네 멋대로 식단을 뒤죽박죽으로 섞어서 음식을 보내기 시작했다.

결국 6개월을 다가 계약해지 통보를 한 후 급식 업체를 바꾸는 것으로 이 소동은 마무리가 되었지만 나는 원래도 별로 안 좋아했던 된장국을 최근까지도 손을 잘 안 대고 있다.


7년 전 거의 매일 점심에 된장국만 먹으면서 일하게 된 이후로 나는 그나마 좋아하지도 않는 된장국이 더 싫어져서 올초까지만 해도 된장국 좋아하는 남편만 먹으라고 국을 끓였다. 그나마 얼마 전부터는 남편이 먹을 때 아주 가끔씩 나도 한술 뜨는 정도로 발전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미역국이나 김치찌개보다는 상대적으로 손이 잘 안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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