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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트 스페이스 Jan 18. 2018

리처드 세라@디아 비콘


뉴욕시티에서 한 시간 정도 차를 타고 달려 허드슨 밸리의 비콘 Beacon이라는 작은 도시를 방문했다. 그곳에는 첼시에 본사를 둔 디아 아트 파운데이션에서 2003년에 오픈한 특별한 뮤지엄 디아 비콘 Dia Beacon이 있다. 그랜드 센트럴 역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비컨 역에 내려 걸어가도 좋다. 중간중간 나무를 심어둔 여유로운 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오픈 시간에 맞춰서 갔더니 방문객이 많지 않아 여유로웠다. 왼편 북스토어 겸 기프트샵이 있는 건물로 가서 입장권을 구입했다. 요일별로 달라지는 '디아' 알록달록 이쁘다. 'Dia'는 그리스어로 'through'라는 의미이고, 'Beacon' 은 이 마을의 이름이다.



산뜻하고 정갈한 느낌의 북스토어 좋다. 바로 옆의 카페에선 갓 구워낸 초콜릿 쿠키와 커피 향이 코를 자극했다. 이 뮤지엄은 1929년 세워진 31에이커 부지의 나비스코 과자봉지 공장을 개조해서 만들었는데, 그래서일까. 건물 전체에서 달콤한 과자향이 나는 듯 했다. 그냥 가기 아쉬워 남편의 손을 잡아끌었다, 남편이 커피와 쿠키를 주문하는 동안 초록색 창가 옆 동그란 은색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는 커피와 쿠키로 가볍게 먹었지만 배고픈 관람객을 위한 푸짐하고 따뜻한 핫 브런치도 마련되어 있다.



갤러리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멋진 광경이 눈을 사로잡는다. 사진을 찍으려니 직원이 다가왔다. 미안하지만 이 작품만 사진 촬영이 안된다고 친절하게 말해주었다. 미안하다고 말하며 다른 작품은 다 되는데 유독 이 작품만 사진을 찍을 수 없는 이유를 알려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예쁘고 앳된 얼굴의 아가씨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작가가 그렇게 요청했다고 말해주었다.



공장을 개조한 뮤지엄이 대개 그렇듯 모든 것이 널찍널찍하고 여유가 있다. 버려진 공장이 이렇게 멋진 뮤지엄으로 탈바꿈하게 된 운명적인 순간은 지금으로부터 약 20여 년 전 디아 센터 관장 마이클 고반 Miacheal Govan 이 헬기를 타고 뉴욕 허드슨 밸리 상공을 날고 있을 때였다. 유유히 흐르는 강과 푸른 숲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허드슨 강가 금싸라기 땅이 버려져있는 것을 눈여겨본 그는, 디아 본사로 돌아간 뒤에도 이곳에 대한 생각이 머리 속에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2003년, 그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입구부터 단체 관람객들이 많다. 가이드는 이 공장이 지어질 당시 그대로 지금도 높은 천정에 햇살이 들어오는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이드의 인솔 하에 단체관람이 많아서, 옆을 지나가며 슬쩍슬쩍 엿듣는 재미가 쏠쏠했다.



사람들이 열심히 설명을 듣고 있는 작품들은 대표적인 미니멀리즘 예술가인 솔 르윗 Sol LeWitt 의 드로잉들이었다. 미니멀주의는 1960-1970년대 크게 유행한 사조로 단순하고 간결한 형태를 반복하여 표현하는 예술기업으로 도날드 저드 Donald Judd , 로버트 모리스 Robert Morris 같은 예술가들이 대표적이다. 르윗은 코네티컷 하트포드 러시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미술에 관심이 많아 인근 뮤지엄 아트 스튜디오에서 미술 수업을 들었다. 후에 뉴욕으로 옮겨와 로어이스트 사이드의 작업실에서 작업을 했고, NYU, SVA에서 미술강의를 했고, 뉴욕첼시의 유명한 아트전문서점 프린티드매터 Printed Matter의 창립에 기여를 한 예술가이다. 한국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다고 했는데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1968년 이후 벽드로잉에 몰두했고, 오픈된 정육면체 open cube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기법의 작품들이 유명하다. 다. 설치미술가 installation artist로 유명한 Robert Irwin 은 디아 비콘 재단장을 책임졌던 예술가였다. 



뉴욕 출신의 유명한 예술가 댄 플라빈 Dan Flavin 의 [Monuments for V. Tartlin, 1964] 은 인기 작품 중의 하나였다.



옆의 가이드 이야기를 슬쩍 들으니, 자신의 이름을 건 예술학교인 Dan Flavin Art Institute를 뉴욕 롱아일랜드 브리지 햄튼에 오픈했다고 한다. 설치미술에 대해 잘 모르는 나도 이름을 익히 들어 아는 유명한 예술가인 댄 플라빈은 1960년대 형광등을 사용한 설치작품으로 새로운 예술세계를 선보인 유명 예술가이다. 역시 Dan Flavin 의 [Untitled, 1970]



흙과 바위, 돌을 사용하여 웅장하고 거대한 작품을 창조하는 대지 예술가 마이클 하이저의 작품 [North, East, South, West] 도 있다.



공간이 많다는 이유도 한몫하겠지만 이곳에서는 작가들마다 개별적인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미니멀리즘 설치예술가'로 불리는 리처드 세라는 1981년 뉴욕 설치미술의 부끄러운 기억의 주인공이었던 위대한 예술가이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던 광장의 중심에 [Tilted Arc]라는 이름의 높이 37미터, 너비 64미터, 폭 3.7미터의 거대한 고철 벽을 설치했다. 하지만 외관을 해치고, 통행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뉴욕 시민들로부터 외면을 당한다. 일부에서는 철거의 목소리가 높아져 급기야 재판에까지 회부되고 안타깝게도 철거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혼신의 힘을 기울여 창조한 작품이 철거되는 현장에서 리처드 세라는 가슴으로 울었다. 다른 곳으로 이동하자 했지만 세라는 거부했다. 그 작품은 오직 그 장소만을 위해 창조한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장소로 옮긴다면 그 어떤 의미도 가질 수 없었다. 



디아비 콘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리처드 세라의 [Torqued Ellipses, 1996]는 정말 압도당하는 느낌이었다. 숨을 죽이고 천천히 걷는 동안 그가 나에게 전하고 싶은 그 마음이 조금 느껴지는 듯했다. "현대인들은 너무 바빠서 꽃을 볼 시간이 없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꽃을 바라봐주길 바랬다" 라며 꽃을 많이 그린 조지아 오키프처럼 리처드 세라도 그저 정신없이 바삐 걸음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그 거대한 고철 앞에 잠시 멈춰 천천히 걸으며 삶에 대해 생각할 여유를 가졌음 하고 바라지 않았을까..   



리처드 세라의 다른 작품 [Union of the Torus and the Sphere, 2001] 그가 사용하는 철은 내후성 강판 weathering steel이라고 불리는 Corten이라고 한다. 리처드 세라는 샌프란시스코 출신으로 버클리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뒤늦게 미술공부를 시작해 철공소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4년 만에 예일대 미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그때가 1964년이었다. 졸업 후 5년이 지나서부터는 본격적으로 철을 재료로 작품을 제작했고, 수많은 대표작을 완성했다. 2007년에는 뉴욕 모마에서 단독 특별전을 개최할 정도로 영향력 있는 예술가로 성장했다. 가난하고 추웠던 시절 철공소에서 일한 경험이 그를 오늘날 '현대미술의 살아있는 전설'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의 위대한 예술가로 만들어주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Robert Smithson 의 거울과 유리로 표현한 여러 작품들도 참 신기했다. 나 같은 보통사람이 예술가들의 심오한 작품 세계를 이해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낡은 자동차 부품과 고철로 만들었다는 작품들도 멋지다.  



독일 출신의 요셉 보이스 Joseph Beuys 또한 디아 센터를 대표하는 예술가라고 할 수 있다. 첼시에 있는 디아센터에 가면 7천 그루의 참나무'의 일환인 열여덟 그루의 다양한 나무들과 현무암으로 만든 멋진 돌비석이 서있는데 바로 그를 기리는 의미 있고 멋진 예술작품이다.  



지하에는 신비로운 초록색 빛으로 가득한 공간을 지나게 된다.



가장 보고 싶었던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품전 시실로 향했다. 가슴이 서늘해질 정도의 강렬한 페미니즘과 초현실주의를 선보이는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품은 그녀의 고향인 파리와, 1938년 미술 역사학자인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정착해 여생을 보냈던 뉴욕에 많은데, 2009년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 맨해튼에 있던 스튜디오는 문을 닫았다. 하지만, 한국, 일본을 포함한 전 세계 곳곳에서 부르주아의 멋진 작품들을 만날 수 있고, 지난여름 시애틀을 방문했을 때 올림픽파크에서도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루이스 부르주아의 가장 유명한 작품 [Spider, 2003],



아담하고 정갈한 야외 정원으로 나가면 포토스폿으로 유명한 나무가 나온다. 그 사이로 따라가면 기차역과 그 너머 허드슨강이 보인다. 뉴욕시티에서 좀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주말인데도 붐비지 않아 여유 있게 관람을 했다. 개인적으로 뉴욕시티보다 더 좋아하는 뉴욕 허드슨 밸리와 뉴욕 롱아일랜드에는 시끌벅적한 유명지는 아니지만, 여유로운 분위기에서 예술과 문학과 인생을 진심 음미하고픈 사람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멋스럽고 아름다운 장소들이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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