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안녕하세요? 한국은 날씨도 제법 쌀쌀해졌을텐데 옷은 잘 여미고 다니시는지, 운동하러 다니신다고 감기걸리는건 아닌지 걱정이 많이 되네요. 오랜만에 편지를 쓰기로 했어요. 방금 아빠와 오빠와의 전화를 끊고 오랜만에 다같이 통화해서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가슴이 아프기도 했기때문이에요. 통화도중 아빠가 당신 스스로를 ‘늙어서’라고 잠시 말하셨는데 강하기만 하던 아버지가 약해지신것같아 제마음이 너무나도 시큰하게 아렸어요. 그래서 마음을 달래고자 랩탑을 열어 그동안의 생각을 한글자 한글자 적어가기로 했어요.
오늘, 아빠딸이 학교를 나와 일을 시작한지 1년이 되었어요. 1년동안 고생을 나름! 한것같아요. 아빠가 한 고생의 백만분의 일 정도 밖에는 안되지만 처음으로 경제적으로 독립해서 일해오는 동안 여러가지를 배웠어요. 가장 크게 얻은 것은 바로 아빠가 걸어온 길에대한 개인대 개인으로의 동감이에요. 어릴적부터 아버지는 항상 나에게 세상의 모든것 이였어요. 엄마와 나, 오빠를 지켜주고 따뜻한 집안에서 아빠를 기다릴수 있게해주고, 내가 바라볼 세상을 열어주는 슈퍼맨 같은 존재. 그래서 아빠가 겪고있는 고생과 책임감은 당신이 잘 지고갈 것이라 어렴풋이 생각했었던것 같아요. 집 문 밖에서 벌어질수 있는 일들이 어떤것이 있을지 전혀 몰랐던 거죠. 그런데 스타트업에서 애송이로나마 일해보니 아버지가 10년넘게 사업을 이끌어오신것이 얼마나 고뇌스러운 일이였는지 머리와 마음으로 알게되었어요. 젊은날 아빠가 회사에서 부지런히 일하는 모습이 그려졌고 투자자를 찾아 여기저기 달려가는 모습, 그리고 직원들을 달래고 함께 일하는 모습들이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또한 매일 오르락 내리락 하는 실적에 가슴을 졸이며 긴장의 끈을 10년동안 놓지 못하셨을 아버지의 굴곡진 커리어의 길이 제 눈에 보이게 됐습니다. 오랜 세월 보여주신 고생스런 모습들이 이제서야 딸내미의 머릿속을 떠다니며 마음으로 눈물이 나오게 되었어요. 밤마다 잠은 왜 못 이루셨는지, 스트레스성 위장병은 왜그렇게 달고다니셨는지, 마음을 다잡고자 이를 앙 물어 잇몸은 왜그리 무너졌는지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이 아파요. 창업의 불모지에서 정부규제에 맞서 금융계에서 올곧은 일을 하며 10년동안이나 경영하시느라 억울한일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현실의 녹록치않은 길 위에 뿌려진 아버지의 고뇌와 땀을 이제야, 처음으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무거운 책임감이 안타까워 가끔은 ‘회사가 무엇이라고 이리 어려운길을 걸을까’ 생각을 했었어요. 하지만 아빠의 반짝이는 눈속에서 매번 강렬히 느껴지는 넓고 깊은 이상에 대한 열정과 풍모에 아빠가 선택한 길이 운명이지 않을까 감히 짐작해봅니다. 아빠는 아마 다시 돌아갔어도 똑같이 고생스런 선택을 하지않았을까요? 그리고 어떤 선택을 했든, 젊은날의 아버지가 자랑스럽습니다.
아빠, 아빠가 이런말을 한적이 있어요. '나처럼 사는게 글쎄, 좋지만은 않아. 세상은 잘 몰라주거든’. 하지만 나는 아빠같은 사람이 되고싶어요. 당신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딸로서 저는 알아요. 진실된 구슬땀을 세상은 몰라주어도 가족이 안다면 괜찮다는 것을.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얻는것이 세상을 얻는것보다 나은 것임을. 당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아빠의 올곧은 기강이 이제 막 사회에 나아가는 다음세대에게 얼마나 큰 뜻을 내려줄수 있는지를.
아빠는 내가 아빠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르실거에요. 아빠가 책 중간중간에 남긴 메모가 좋아서 한국에가면 아빠의 메모가 많이 담긴 책을 골라 미국까지 갖고와요. 유학와서 이사를 열번이상 다니면서도 이 많은 책들을 싸갖고 다니는 이유는 이 모든 책들에 아빠의 손자취가 있기 때문이에요. 머리를 싸매고 고민한 흔적, 조금이나마 나은 해답을 찾기위한 흔적들.. 아주 조금더 성장하고 읽는 아빠의 메모는 거기에 있어주어 참 고마운 손자취가 되었습니다. 아빠, 지금까지 힘든 순간속에서도 넘어져도 희망을 잃지않아주어 고맙습니다. 책을 읽으며 외로움을 달래고 고뇌를 달랬을 그 노력이 참 감사합니다. 가족을 위해 묵묵히 고난을 삼키고 헤쳐나오느라 수고 많이하셨어요. 항상 많이 고맙고, 또 정말 사랑해요.
오늘따라 아빠와 산책 하며 조곤조곤 이야기기하고 싶은 날이네요. 막걸리와 컵라면들고 등산을 가고싶기도 하고 밤늦게 동네빵집으로 달려가 같이 팥빙수를 먹고싶기도 하고. 멀리 이곳 미국에서 있으면서 날마다 아빠와 엄마가 그리워요. 한살 한살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왜이렇게 부모님이 애틋해질까요? 지금은 보지 못하지만 다음에 만날 그날을 기약하며 그때까지 건강하게 재미있게 지내요 우리!
아빠의 사랑하는 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