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 아이에게 ‘마음이 무겁다’를 넣어서 문장 짓기를 해보라고 했다. 아이는 연필도 쥐지 않은 채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내 일이 아이를 기다려주는 일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그날의 계획이 있고 진도를 나가야 한다. 내 마음은 다음 거, 다음 거를 향해 달려나가는데 가만히 있는 아이가 속이 터졌다. 시계를 슬쩍 봤다. 결국 나는 재촉하는 마음으로 말했다.
“현성아. 아무 문장이나 써도 돼. ‘마음이 무겁다’는 건 걱정이 많다는 뜻이에요."
잠시 뒤 아이가 입을 뗐다.
"마음이 무거웠다? (...) 엄마 때문에? 부부싸움?"
우물쭈물하던 아이는 노트에 “나는 부부싸움 하는 엄마 아빠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다.”라고 썼다. 나는 잠시 ‘얼음’이 되었다. 아이를 독촉했던 게 겸연쩍었다. 하지만 곧 태연한 척 잘했다고 말하고 넘어갔다.
뭔가를 알아버린 느낌이었다. 그동안 아이가 좀 밝지 않고 낯빛이 어둡다고 느꼈던 이유. 아이 엄마가 이사 온지 얼마 안 됐다고 하긴 했지만 집에 들어섰을 때 느껴지던 왠지 썰렁했던 기운. 아직 어휘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어린 아이가 어떤 단어를 입에 올릴 때는 그 아이의 삶에 그 단어가 뜻하는 일이 있다는 말이다.
아이 엄마가 이 노트를 보면 뜨악하겠구나 싶었다. 그렇다고 지우고 다른 문장을 쓰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문법과 의미 모두 올바르게 쓴 문장을 뭐라고 하면서 지우라고 하겠나. 엄마가 뜨악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그 문장을 지울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