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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카 두 대와 제트부스터

by 진솔

여덟 살 호율이(가명)가 뜬금없이 물었다.

"선생님, 친구 있어요?"

이건 또 무슨 말인고. 진도 나가야하는데 웬 뜬금포인가. 마음이 바쁜 나는 대충 대답하고 빨리 하던 수업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응. 있지."

"몇 살이에요?"

안 끊어진다.

"선생님하고 비슷한 나이지. 엄청 많지 나이가."

"그럼 내가 미니카를 두 개 접어 줄게요. 친구하고 시합하면 돼요."

엉? 미니카? 호율이가 갑자기 책상을 벗어나서 색종이를 집으러 가려고 한다.

"호율아 어디 가?"

나는 빨리 호율이를 붙잡아서 의자에 앉혀야 한다. 빨리 대화를 마무리 짓자. 호율이는 이런 내 마음을 모른 채 아랑곳하지 않고 말한다.

"딱밤 알아요?"

나는 빨리 마무리 짓고 싶은 마음으로 속사포 랩을 하듯 대답한다.

"딱밤? 아 그러니까 미니카를 더 멀리 보낸 사람이 멀리 못 보낸 사람한테 벌로 딱밤을 먹이라는 거지?"

"아니요. 그게 아니고요."

약간 상기된 얼굴의 호율이가 엄지와 검지를 오므리며 말한다.

"미니카를 이렇게 딱밤으로 날리면 돼요."

"아, 딱밤으로 미니카를 날리라고."

그래... 그렇구나... 나는 조금 포기 상태로 마음을 내려놓는다.

"제가 다음 주에 선생님하고 친구 거 미니카 만들어 줄게요."

"아 정말? 힘들지 않겠어?"

"네. 안 힘들어요."

"그래, 그럼 다음 주에 미니카 기대할게."

"네."

호율이가 마침내 미소 짓는다.

"근데 선생님은 무슨 색 좋아해요?"

"선생님? 초록색?"

"친구는요?"

친구는... 아무거나... "파란색?"

"알겠어요."

마치 중대한 임무를 하달 받았다는 듯한 호율이의 그 결연한 표정. 나는 속으로 웃음이 번져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 귀여운 여덟살은 그 다음 주에 미니카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잊어버린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안 물어봤다. 그런데 그 다음 주에 수업하다가 갑자기 호율이가 "아, 미니카!" 하고 외쳤다. 그리고 그 다음 주에는 미니카를 내밀었다. 작은 손에 미니카 두 개가 다 올라가지도 않는다. 반짝이 색종이로 접은 초록색과 파란색 미니카. 내가 주문한 대로였다.

"와, 이거 선생님 줄라고 접은 거예요?"

"네. 제가 접어준다고 했잖아요."

"와. 진짜 멋지다, 미니카. 고마워. 선생님이 친구랑 딱밤으로 시합할게."

"네."하는데 호율이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퍼졌다.


그 다음 주엔 "친구랑 시합했어요? 누가 이겼어요?" 묻는다. 사실 시합 못했다. 하지만 호율이가 실망할까봐 비겼다고 거짓말했다. 그랬더니 호율이가 "제트부스터도 접어줄까요?" 한다. 제트부스터? 호율이가 다시 엄지랑 검지를 오므렸다 튕기며 말한다. "딱밤으로 쳐서."


어린 아이도 어른에게 뭔가를 주고 싶어한다. 호율이가 미니카를 줬던 날 수업이 끝나고 호율이네 집을 나왔는데 책상에 미니카를 두고왔다는 걸 깨닫고 다시 되돌아 갔었다. 내가 미니카를 소중히 생각하지 않아서 안 가져갔다고 호율이가 생각할까봐서였다. 호율이 엄마한테 호율이가 접어 준 미니카를 놓고 와서 다시 왔다고 하자 호율이 엄마가 고맙다고 했다.


아이가 내게 뭔가를 줬을 때 내가 그것을 소중히 여겨주면 아이도 기뻐한다. 빼빼로 데이때 "선생님이 1위예요"하며 건넨 빼빼로. 한번 드셔보시라며 준 거의 벌칙으로 먹는 것 같은 신맛 나는 사탕. 호율이가 준 미니카 같은 것들. 사실 이미 집에 초2 아들이 종이로 접은 비행기와 팽이 등 여러가지 종이모형이 박스 한 가득 쌓여 있다. 하지만 호율이의 마음이 담긴 미니카는 독서교실 책장 선반에 올려 두었다. 어쩌면 아이들도 자기가 주는 게 어른한테 별거 아니라는 것을 알지도 모른다(호율이는 아직 모르는 것 같긴 하지만). 그러나 그럴수록 아이가 뭔가를 줄 때는 고맙게 잘 받아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만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귀하게 여기는 태도가 어떤 것인지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호율이네 집에 들어섰을 때 호율이는 아예 바닥에 종이접기 책을 펼치고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선생님, 빨대 있어요?"

"응, 집에 빨대 있지."

호율이가 심각한 표정으로 검지를 구부리며 말한다.

"꼬부라져 있어야 돼요."


호율이는 빨대로 날리는 로켓을 접고 있었다. 로켓 안쪽에 빈공간이 있는데 그곳에 빨대를 껴서 로켓을 날려야 된단다. 로켓은 다음 주에 주기로 했다. 그리고 호율이가 자꾸 친구랑 미니카 시합했냐고 물어봐서 계속 거짓말할 수도 없고 아들이랑 미니카 딱밤 날리기하고 그 스코어를 보고하고 있다. 수업이 끝나고 호율이네 집을 나서는데 호율이 엄마가 호율이가 나와 수업하는 걸 너무 좋아한다고 했다. 이놈의 인기란...이렇게 호율이와의 관계가 차곡차곡 쌓여간다.



호율이가 접어 준 미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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