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싼똥은 니가 치워라.
결자해지(結者解之)
큰 용이 내쫒기니 옛 뱀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 쫒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쫒기니라. (요한계시록 12 : 9)
1.
하늘에서 떨어진 마귀들이 요괴의 형상으로 조선에 나타나, 사람을 홀리고, 잡아먹는다. 여기저기를 떠돌며 사람들에게 병을 옮기며, 사람들의 생활을 더 힘들게 만들었다. 하늘을 향해 기도하는 소리와 사람들의 신음 소리를 듣고 하늘의 문이 열린다. 하늘 용사들이 나와 요괴들을 잡아다 백령산 3번 동굴, 항아리에 가둬둔다.
2.
천부령 사는 윤공, 천공부채를 펼치니, 화려하게 그려진 그림이 조화롭고 아름답다. 봄을 알리는 소박한 개나리 꽃, 여름에 촉촉하게 내리는 비, 추수할 가을볏단, 겨울에 내리는 소복한 눈이 그려져 있다. 윤공이 부채를 살짝 부치니 살랑대는 봄바람이 분다. 부채를 접어 손바닥에 대고 한 번 치니 하늘에서 천둥번개가 치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다시 부채를 펼쳐 강하게 바람을 날리니 쌀쌀한 가을바람이 불고, 부채를 다시 접어 손바닥에 두 번 치니 하늘에서 하얀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아궁이 위에 올려 진 솥. 오랜 세월을 드러내듯 둥근 부위가 조금은 헤어져있고. 솥 밑은 검게 그을려져있다. 열심히 아궁이의 불을 붙이고, 불이 빨리 붙으라고 입으로 열심히 불을 불고 있는 전우치. 이내 캑캑 거리며 돌리는 얼굴엔 숯 검댕이 잔뜩 묻어있다. 불붙은 아궁이를 확인 한 전우치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간다.
4-5평 남짓한 안방. 한쪽에는 월넛 색 옷장이 놓여있고, 사람 손을 타서 위아래 손잡이 색이 조금 바래있다. 아래 장은 갓과 모자, 속옷 작은 물건을 접어 넣을 수 있게 짧고, 윗 장은 도포를 걸 수 있게 길다. 그 옆에는 책들을 넣어두는 서랍장이 놓였고, 그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서책들. 갈고리 위로 간간히 걸려있는 도포와 갓이 보인다. 전우치 걸레를 들고 열심히 방바닥을 닦다가 더러워진 걸레를 들고 나간다. 수돗가에서 물을 받아 걸레를 빤다. 윤공도사 한쪽 구석에 누워 하늘을 보고 있다. 부엌으로 들어가는 전우치는 밥상에 밥을 차려 마루로 내온다. 윤공도사 언제 왔는지 자리에 앉아있다. 윤공도사 밥을 삽시간에 먹어치우고 숭늉을 마시며 어허~ 소리를 낸다.
전우치 설거지 거리를 들고 수돗가에서 마른 수세미를 가지고 설거지를 한다. 설거지를 하다 물이 얼굴에 튄다. 전우치는 잔뜩 화간 난 듯 짜증을 낸다. 이내 억울한 듯 그의 얼굴이 울그락 붉그락 한다. 전우치 설거지 한 것을 들고 부엌으로 들어가 정리하고 나와, 마당에 놓인 싸리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쓴다. 윤공도사는 밥 먹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툇마루에 누워 전우치를 쳐다본다.
“우치야. 저기도..쓸고...”
“여기요?...”
“아니...더 옆에...옮지...옮지..그래..”
전우치 군소리 없이 윤공도사가 시키는 대로 싸리를 들고 마당을 쓴다.
윤공도사는 자신이 누워있는 마루 아래를 가리킨다.
“우치야..여기도..
전우치 윤공도사가 가리키는 곳을 쓸고, 참고 있던 화가 폭발한 듯 싸리를 그 자리에 내던진다. 윤공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 지른다.
“가르쳐 달라는 도술은 안 가르쳐주고.. 몇 년째 밥하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마당 쓸기만 시켜요? 제가 도사님 제자 되려고 여기에 있지. 식모 일하려고 여기에 있는 게 아니에요!! 저도 도술 좀 가르쳐 주세요.”
“귀에 뭐가 들어갔나? 왜 갑자기 안 들려?”
윤공도사 못들은 척 뒤로 돌아 누워버린다. 전우치 윤공 도사 귀에 대고 소리 지른다.
“도사님 이래도 안 들리세요? 네? 도사님...저도 도술 좀 가르쳐 달라구요.”
하늘로 우뚝 선 천부령, 방 3칸 초가로 되어있다. 한 칸은 부엌, 한 칸은 안방., 또 다른 한 칸은 여러 가지 물품을 모아두는 창고다. 우물 옆엔 야채를 키울 수 있는 텃밭이 보이고, 연못엔 종류를 알 수 없는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다. 그 옆에는 배고플 때마다 따먹을 수 있게 탐스럽게 생긴 빨간 사과가 대롱대롱 달려있다. 마당 귀퉁이에 나무통 의자들과 탁자 한 개가 놓여있다. 윤공이 우치에게 서신을 건넨다.
“금강산에 사는 박처사에게 서신을 전해주고 오너라.”
“그 먼 곳까지 어떻게 가요?”
“이놈. 축지법을 쓰면 되지 않느냐?”
“눼~”
전우치 심술이 가득 들어간 듯 얼굴이 퉁퉁 불어서 걸어간다. 툴툴거리며 산속을 걷는다. 작은 돌멩이 하나가 우치 앞에 놓여있다.
“안 그래도 성질나 죽겠는데...이런 씨..꺼져!!”
전우치 돌을 발로 찬다. 이내 발을 잡고 아프다며 아픈 발을 잡고 통통 거리며 뛴다. 아픈 발이 조금 진정 되었을 때 동굴이 보인다.
‘들어가지 마시오!!’
동굴 앞에 출입금지 팻말이 적혀있다.
“들어가지 말라고 한다고 누가 안 들어가나? 헷!!”
전우치 출입금지 팻말을 떨어뜨리고, 그걸 밟고 들어간다. 동굴 안은 칠흙처럼 어둡다. 전우치 동굴 바깥에서 비치는 빛을 따라 안으로 들어간다. 한참 안으로 들어가니 웬 항아리 하나가 놓여있다. 막혀있는 항아리 위에 쓰여 있는 글귀.
‘뜯지 마시오. 만약 뜯었다면 뜯은 사람이 다시 제자리에 다 돌려놓으시오.“
전우치 자신의 호기심에 못이긴 듯 항아리를 뜯어버린다. 그때 주변으로 뭔가 싹싹 거리며 보이지 않은 형체가 눈앞을 지나간다. 귀신이가? 혼령인가? 놀란 전우치 그 자리에서 기절한다.
3.
전우치 눈을 뜬다. 희미하게 보이는 얼굴
‘귀신인가? 아님 내가 죽었나? 벌써....으....’
윤공도사 전우치의 뺨을 사정없이 찰싹찰싹 때린다.
“우치야...정신이 드느냐?”
전우치 뺨을 몇 대 맞으니 정신이 확 든다.
“사부님...왜 제가 여기에..?”
“쯧쯧쯧...금강산 박처사에게 가서 서신 전해주고 오라고 심부름 보냈더니, 들어가지 말라는 동굴에 들어가, 뜯지 말라는 항아리를 뜯어 놓아?“
윤공 들고 있던 곰방대로 전우치의 머리를 한 대 세게 때린다. 전우치 머리가 깨질 듯 아프다는 듯 잡는다.
“아...아파.......전...그냥...호기심에..”
“어떻게 할 거야? 하늘의 신께서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요괴를 잡아다 3번 동굴 방에 가둬두었는데...그걸 풀어놓았으니...니가 싼 똥이니 니가 치워라!!”
“제 똥 아닌데요?”
“결자해지(結者解之), 니가 풀어놓았으니 니가 해결하라고..둘러말하면 꼭 못 알아먹어요..”
“...어쩌지? 그게 몇 마리인줄 알고..아...”
전우치 툇마루에 앉아서 한숨을 크게 쉰다.
“서신을 줘 보거라.”
전우치 팔에 감춰둔 서신을 꺼내 윤공도사에게 준다. 윤공도사는 돌려받은 서신을 펼치고 뭔가를 진중하게 몇 자를 더 쓴다. 그리고 그걸 접어 전우치에게 다시 준다.
“다시 금강산 박처사에게 서신을 전달하고 오거라. 딴 길로 새지 말거라. 알겠느냐?”
“눼~”
전우치 이전과 달리 서신을 들고 축지법을 써서 금강산에 도달한다. 전우치 윤공도사가 적어준 주소를 제대로 찾아 왔는지 확인하고 마당 안으로 조심히 들어간다. 금부령 화려한 3층으로 지어졌다. 집 터 옆으로 계곡이 흐르고, 흐르는 물에 각종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다. 맞은편에 줄줄이 서있는 과일 나무들, 그 옆에 자리한 밭이 보인다. 그리고 햇볕에 앉아서 차를 마실 수 있게, 작은 탁자와 의자들이 놓여있다. 전우치 화려한 금부령을 넋 놓은 듯 입 벌리고 보고 있다. 박씨 부인이 한쪽 밭에서 쪼그려 앉아 야채를 고르고 있다.
“거...계시오? 아무라도 계시오?”
“누구세요?”
박씨부인이 얼굴을 들고 전우치 쪽으로 온다. 전우치 역광에 박씨부인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전우치 손으로 햇빛을 가린다.
“여기..박처사라는 분 계시오?”
“저희 아버지신데요?”
가까이 오자 얼굴이 보이는데, 눈은 손톱만하고, 넓은 이마, 넓적한 코, 입은 하마처럼 크다. 그리고 얼굴 여러 군데 보이는 화농성 여드름. 178cm, 큰 키, 건장한 남자 같다. 사람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못생겨 전우치 이내 눈을 돌려버린다. 박씨부인 신발을 쳐다보며
“저는 천부령 윤공도사 밑에서 도를 닦는 전우치라고 합니다. 저희 도사님께서 박처사님께서 서신을 전해주고 오라고 하셔서...”
서신을 박씨부인에게 준다.
“전달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네..그러지요. 멀리서 오신 손님인데...차라도 한잔..”
“아니...괜찮습니다.”
전우치 박씨부인에게 급하게 인사하고 금부령을 빠져나온다. 전우치 몇 걸음 가다 나무에 기댄 채 토악질을 한다.
“아이고 머리야...내 살다..저렇게 못난...으엑..”
전우치 한동안 천부령으로 돌아가는 길에 멈추고 토악질, 가다가 멈춰 서서 토악질을 계속 한다.
4.
깜깜한 길목, 아무것도 보인지 않는다. 검은 숲에서 부스럭 소리가 들린다. 칼과 몽둥이를 든 검은색을 옷을 입고, 검은색 마스크 쓴 도둑 무리들이 조심스럽게 길목으로 들어선다. 화려한 양반집 앞에 서서 담을 넘는 도둑들, 양반 집의 불은 이미 꺼져 안은 컴컴하다. 칼을 빼어드는 홍길동 조심스럽게 양반의 방으로 발을 옮긴다. 문을 살짝 열고 들어가는 홍길동, 푸드득 푸드득 소리를 내며 깊이 잠이 든 양반 몰래 선반에 놓인 패물이 든 상자를 들고 나온다. 활빈당과 홍길동 담을 넘는다. 산속에 활빈당의 기지가 보인다. 튼튼한 벽돌로 지어진 1층 건물을 초막으로 덮어놓았다. 패물이 든 상자를 들고 있는 홍길동, 기지 안으로 들어간다. 검은색 마스크를 벗는 홍길동, 오똑한 코에, 부리한 눈 165cm 키로 아주 단단하게 생겼다. 그는 안고 온 패물 상자를 탁자에 내려놓는다. 상자를 열어본다. 갖가지 비싼 패물이 안에 들었다. 다시 패물 상자를 바닥에 들이 부어버리는 홍길동. 패물들을 나눠서 놓는다.
“이건 아랫마을 자숙 누님 댁에 가져다 줘라.”
“그러다 들키면, 곤장은 자숙누님이 맞을 텐데..”
“그러면 니가 이 패물을 걸고 쌀을 사와. 그리고 자숙 누님 댁에 줘.”
“그럴 거면 이것 들을 다 쌀하고 팔면 되겠네.”
“아니지...돈과 쌀로 바꿔와.”
“왜?”
“왜는 왜? 사람이 어찌 밥만 먹고 사나? 반찬도 필요하고, 이동하기도 편하고 하니깐...”
“흠...알겠어. 대장이 시키는 대로 할게.”
5.
나그네 봇짐을 진 전우치 어둑해지는 산길을 걸어가고 있다. 쉬어 갈 데가 없나 이리저리 얼굴을 돌리며 찾는데, 어렴풋이 보이는 불빛. 그 불빛을 따라가니 산기슭에 자리한 큰 기와집. 전우치 대문을 두드린다.
“쿨럭~ 이리 오너라. 거기 주인 계시오?”
“뉘신가요?”
고운 자태의 여인이 문을 열고나온다.
“저기...갈길이 멀고 밤이 깊어, 숲속에서 잠을 청할 수 없어. 하룻밤 묵었다 갈까 합니다. 묵을 방이 있을까요?”
“네..그러시지요. 따라오십시오.”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여인이 전우치를 데리고 손님방으로 간다.
“여기에서 묵으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하루치 방값은 내일 아침에 내도록 하지요.”
“너무 신경 쓰시지 마시고, 편히 쉬십시오.”
여 주인이 우아하게 인사를 하고 간다. 우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깔끔하게 정리된 고급진 방. 이미 우치의 방문을 알고 있었다는 듯 비단 이불이 깔려있다. 전우치는 쓰고 있던 갓을 풀어놓고, 도포, 옷, 버선을 벗고 피곤한 듯 이불에 눕는다. 전우치 불을 끄는 것을 잊은 채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코를 골며 잔다. 12시가 되자 촛불이 흔들리며 꺼진다. 여인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뒤척이던 우치 눈을 번쩍 뜬다. 달그림자에 여인의 모습이 방안에 비쳐진다. 꼬리가 아홉 달린 여우의 모습이다. 계속적으로 들리는 울음 소리..전우치 모른 채 등 돌리고 있기엔 등골이 오싹해서 참을 수 없다. 우치 일어나 앉는다.
“거...누...누구시오?”
“나으리...접니다.
“저..저가 누구란 말이요?”
전우치 문을 열고 밖을 본다. 하얀 소복을 입은 여주인이 서있다. 우치는 놀라 머리가 살짝 서고, 뒷목이 서늘해진다. 옷고름에 흐르는 눈물을 닦는 여주인은 미색이 보통이 아니다.
“무슨 일이기에 이리 늦은 시각에..”
“소녀...마음에 한이 많아, 자다 뜬눈으로 새는 날이 많은데, 오늘은 나으리가 집에 계시니..사람과의 담소가 그리워서 왔나이다. 소녀 방으로 들어가도 되는지요?”
“들어오시지요.”
여주인 방안으로 들어가 오른쪽 무릎을 세우고 앉는다. 우치 봇짐과 두루마기를 벗어둔 옆에 앉는다.
“소녀, 과부가 된지 어언..십년..남군님의 품이 그리워...”
“그러하시오?”
우치 여인에게 홀린 듯 여주인의 얼굴을 만진다.
“새벽인데, 참 곱소이다. 분 냄새도...좋고...”
여주인은 우치의 가슴팍에 기댄다. 우치 팔을 뻗어 옆에 놓인 도포를 쥔다. 우치 여주인을 안는 척 하며 도포자락으로 여주인을 묶는다. 그는 비상시를 예비해 들고 다니는 단도를 꺼내어 여주인을 찌려고 한다. 놀란 여주인은 엉덩이를 뒤로 밀며 전우치를 피한다.
“나으리..왜 이러시옵니까?”
“왜? 이리오시오”
“나으리...이러지 마십시오. 왜 이러십니까?”
우치는 대답대신 단도로 여주인을 찌르려 한다. 죽지 않으려 발악하던 여주인 곧 꼬리 아홉 달린 여우로 모습이 바뀐다.
“이 요망한 여우 년!!”
“나으리...살려주시오. 살려주시오.”
“왜? 내 간이 싱싱한지 맛보고 싶었나?”
“살려주시오. 나으리...”
“살려주면 뭘 내놓겠나?”
“내게 여우의 비법서가 있소. 나를 놓아주면 그걸 주겠소. 나를 놓아주시면 지금 당장 가서 여우의 비법서를 들고 오겠소.”
“그래? 그럼 같이 가자.”
우치 여우의 목덜미를 세게 잡는다.
“안내해!”
여주인과 우치 여우 굴 안으로 들어간다. 16마리 여우들이 기다리고 있다. 여우들 입맛을 다신다.
“흠...대장님이 건장한 남자를 데리고 오나봐.”
“그러게..”
여우들 여주인이 안으로 들어오자 주위로 몰려든다. 그 뒤를 따라오는 우치, 여우들 전우치를 향해 공격태세를 갖춘다. 여주인이 손을 흔들며 여우들을 막는다.
“생명의 은인이야. 먹이 아니야.”
“먹...이?”
여우들은 여주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뿔뿔이 흩어진다.
여주인은 여우 비법서 3권을 꺼내든다.
5.
전우치 손님 책상에 앉아 여우의 비법서를 읽는다. 그러나 무슨 말인지 알아볼 수 없는 신비한 언어로 되어있다.
“이건 어느 나라 언어냐? 청나라 말이냐? 청나라 말이면 내가 좀 하는데...
이건 어느나라 언어인지...”
“이건 여우어입니다.”
“여우어?”
“네...제가 선비님께 여우어 비법서를 인간의 언어로 바꾸어드리지요.”
여주인 비법서를 안고 주문을 외운다. 책에서 밝은 빛이 난다. 여주인은 책을 책상에 올려둔다.
“이제, 다시 읽으시지요.”
“아....신기하네...”
전우치 한번 본 1권의 비법서를 그 자리에서 외워버린다. 그런 우치를 보면서 여주인 놀란다.
“이젠 비번서를 전달해드렸으니 소녀 가도 되겠지요?”
“그래...살펴 가시게...멀리 안 나가네.”
전우치 열심히 책을 읽으며 여우의 비법서를 익히고 있다. 세 번째 비법서를 집어들려고 할 때 여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계...계세요?”
우치 문을 열어본다.
“누구요?”
“....이른 새벽에..죄송하옵니다.”
여자는 다급한 듯 발을 동동 구르며 울며 말한다.
“우리 아버지가...우리 아버지가... 산적 당에게 습격을 당했습니다.
빨리 도와주십시오.”
“아무리 내가 남자라 하나 이런 새벽에는 나도 무섭소.
다른 이에게 도움을 구해보시오.”
문을 닫으려는 우치 앞에서 여인 그 자리에 앉아 울어버린다.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곳엔 이 집 외엔 없잖습니까? 여인이든 남자든 상관없이 지금 너무 급해서...도움 구할 곳이 이곳 밖에 없습니다.”
우치 한숨을 한번 내 쉰다.
“어디요? 앞서 가시오.”
우치 두루마리를 꺼내들고 입으며 신발을 신고, 여자를 따라 나선다. 마음이 급한 듯 여자는 재촉 걸음으로 앞서간다. 우치 열심히 뒤를 쫓아 간다. 갑자기 여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때 전우치 뭔가 떠오른 듯 자신의 방으로 뛰어간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여우의 비법서가 온데 간데 없다.
“요망한 여우 년..여우의 꼬임에 넘어갔구나. 아깝다. 마지막 비법서..”
6.
윤공도사 물뿌리개를 가지고 밭에 물을 주고 있다. 우치가 당당한 걸음으로 걸어오고 있다. 우치 윤공 앞으로 와 목례를 한다.
“다녀왔습니다.”
“서신은 잘 전달했느냐? ...흠...어깨에 뽕 넣었니? 힘이 많이 들어갔구나? 어디 비법서라도 훔쳐 익히고 왔느냐?“
“그걸..어떻게...”
“네 이마에 적혀있구나.”
“사부님이 제게 도술을 안 가르쳐 주시니 하늘이 저의 마음을 어떻게 아시고..”
“우치야. 내가 진정 네게 도술을 안 가르쳐 준 것 같으냐?”
“네.”
“네가 한 허드렛일은 도술을 익힐 수 있는 기본 몸을 만들었고, 그래서 네가 아무 어려움 없이 여우의 비법서를 익힌 거다. 네게 기본 체력이 없었다면 여우 비법서 1권도 연마하기 힘들었을 거야. 어떤 도에 이르기 위해선 기본 체력, 성실함은 더 큰 성장을 위한 발판임을 잊지 말거라.
7.
박 처사 구름을 타고 금부령에 내린다. 박씨 부인 박처사를 보자 전우치가 전해준 서신을 전달한다.
“이게 뭐냐?”
“천부령의 윤공도사께서 보낸 서신입니다. 웬 사내가 와서 전해주고 갔습니다.”
박처사 서신을 펼쳐서 읽는다. 심각한 듯 양미간의 주름이 진채 읽어내려 간다. 박처사 서신을 덮는다.
“아가...너 시집 갈 준비를 하거라. 방금 내가 좋은 선 자리를 보고 왔다.”
“아뇨. 가기 싫습니다. 거울로 제 얼굴을 보았습니다.
저 자신도 토악질이 나는 모습인데, 이런 모습으로 무슨 시집을 간단 말입니까?”
“3년만 견디면 업보가 없어지잖니?”
“3년 후, 미인이 되고 난 뒤 가면 안 되겠습니까?”
“사람의 외모만으로 판단하는 불쌍한 중생들에게 큰 깨달음을 주려면 지금 가는 게 옳단다.“
“사람들의 깨달음 때문에 제 마음이 상하는 건 괜찮으십니까? 아버지?”
“정..혼인 하는 게 싫다면, 천부령에 가서 윤공도사의 일을 도와라.”
“네?”
“네가 혼인을 하느냐? 윤공도사를 돕느냐? 두 가지 중 택일해야 할 거야.”
“그러 하오면 윤공 도사님을 돕겠습니다.”
“그럼 지금 당장 짐을 꾸려 천부령으로 떠나거라.”
8.
활빈당 기지 안, 빽빽하게 앉아있는 활빈당들, 탁자 위에 지도가 놓여있다.
“이 양반은 한양에서 제일가는 부자야. 제일가는 부자인 만큼 부하들이 아주 살벌하게 집을 지키고 있어서..이전처럼 우르르 몰려가서 될 일이 아니고, 4개의 조로 나눠서 안으로 들어가자고...”
“네!!”
“일어서자. 이 양반을 털고 나면 한동안 양반 집 서리를 안 해도 되니...오늘 하루는 고생하자고.”
“네!!”
우렁찬 소리와 함께 문을 열고 나가는 활빈당들과 홍길동. 길동과 5명의 활빈당이 먼저 들어간다. 그들은 반대편 담벼락과 지붕 위 양쪽에 앉아 안을 내려다보며 길동의 신호를 기다린다. 길동은 칼을 뽑아 양반이 자고 있는 사랑채 안으로 들어간다. 색색거리며 자던 양반이 눈을 번쩍 뜬다.
“누구냐?”
“....”
홍길동은 칼을 꺼내들고 양반을 향해 휘두른다. 양반이 일어나 홍길동의 팔을 잡아 칼을 뺏는다. 힘이 장난이 아니다. 양반 칼을 홍길동 앞에서 찌그러뜨린다. 방 문 밖에서 기다리던 활빈당이 안으로 들어와 양반을 덮친다. 양반이 활빈당들을 마당으로 던져버린다. 길동 놀란다.
“넌 누구냐? 사람이냐?”
“......”
씩 웃기만하는 양반은 길동을 들어 마당으로 던져 버린다. 길동의 사인만 기다리던 3개의 대비 조들이 마당으로 내려와 양반의 하인들과 싸운다. 양반이 홍길동이 있는 곳까지 뛰어나와 홍길동과 활빈당들을 바닥에 패대기친다. 후퇴를 모르는 길동이지만, 후퇴를 외친다. 일제히 양반집에서 도망쳐 나온다. 그러나 미처 도망 나오지 못한 활빈당 한명이 그 자리에서 양반에게 잡아먹힌다. 도망가다 그 걸 본 활빈당들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다. 양반에게 공격당한 활빈당들은 다리를 절룩거리며 걸어간다. 아지트 안으로 들어가는 활빈당들..자리에 앉는다. 홍길동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기 힘들다는 듯 흥분한다.
“어찌 된 거야? 그 양반 대체 뭐야?”
“그 소문이 진짠가 보네.”
“무슨 소문?”
“저도 설마 하는 마음으로 넘겨버렸는데..”
“그런데?”
“전우치라는 도사놈인가? 도사 제잔가? 그놈이 하늘의 신이 사람을 괴롭히는 요괴를 잡아다 봉인 해놓은 항아리를 뜯었다네. 그래서 요괴들이 다시 득실 되는 거라고 말하더라고..”
“전우치?”
“본인이 뜯었으면 본인이 제자리에 돌려놓아야지. 이거 사람 할 짓 아니야.”
벌떡 일어서는 길동.
“내 가만 안 둬. 다시 잡아넣을 깡도 없으면서...뜯긴 왜 뜯어?”
9.
윤공과 전우치가 천부령 안방 툇마루에 앉아 밥을 먹고 있다. 그때 홍길동이 씩씩거리며 걸어온다.
“여기 전우치란 인간 어디에 있소?”
우치와 윤공도사 밥 먹다 놀란다. 윤공도사 밥숟가락을 밥상 위에 내려놓는다.
“누구십니까?”
“나는 활빈당이라는 대도들의 두목 홍길동이라고 합니다.”
“오...그 훌륭한 대도 선생께서 어떻게...?”
“전우치란 인간이 요괴를 가둔 항아리를 뜯어서..양반집 털러 들어갔다가 우리 당원 한명이 잡아 먹혔소.
어찌 책임 질 거요?“
우치 길동을 째려본다.
“어쩌긴 어째? 알아서 살아야지.”
“혹...댁이 전우치요? 말하는 투가 도사는 아닌 듯 하네..”
“뭐 어쩌라고...요괴가 몇 마리가 된다고 내가 그걸 다 잡아 넣어?”
“다시 집어 넣을 용기가 없으면 애초 뜯질 말던가? 이런 찌질한...”
“뭐...찌질?”
우치 찌질이라는 말에 화가 난 듯 일어선다.
“우치야 앉거라. 잘 오셨소..길동 처사님..”
“길동 처사? 이 미친 놈이 처사라구요?”
“우치야...너를 도와 줄 은인이 되실 분이다. 싸우지 말거라.”
“네?”
홍길동이 짚신을 벗고 툇마루에 앉는다.
“처사님. 찬이 없지만 한수 뜨시지요. 우치야...밥 한공기 내오거라.”
우치 입이 툭 튀어 나온 채로 부엌으로 간다, 밥 한 공기를 담아온다. 밥상에 툭 던지며
“드셔..”
“아니...이놈이...손님한테...무례하게!! 제 가르침이 부족해서...이놈의 무례함에 대해 대신 사과드립니다.
식사하시지요.“
윤공도사 누구보다 극진히 홍길동을 챙긴다. 밥을 다 먹은 우치는 수돗가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다. 윤공과 같이 홍길도 차를 마신다. 그때 구름을 타고 오는 누군가가 보인다.
“허? 누구죠? 구름을...”
“오셨군...”
구름에서 내리는 장신의 여자, 뒷태가 여장군 같다. 윤공도사 일어나 그녀를 향해 인사를 한다. 소름끼칠 만큼 못난 박씨부인이다.
“아버지의 명을 듣고 왔습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도사님..”
“우치야..설거지 다했느냐?”
“네...”
“나와 보거라.”
전우치 옷에 물기를 닦으며 나온다. 전우치 박씨부인을 보며 놀란다. 박씨부인과 눈 마주치기 싫어 그녀의 발끝을 쳐다본다.
“인사하거라. 이분들은 너를 도와 요괴를 소탕할 네 의인이 될 분들이다.”
“네? 의인요? 원수 아니구요?”
“원수? 이놈....정중히 모셔라. 네가 싼 똥 같이 치워줄 분들이니깐..”
전우치 마음에 안 드는 듯 입을 삐쭉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