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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부채-그슨대

학대 받은 아이

by Kate Kim

1.

박씨부인 호리병을 들고 앞서 걷고 있다. 전우치와 홍길동 그 뒤를 조용히 따라간다. 박씨부인 뒤를 돌아본다.

“두억시니는 아주 무서운 요괴입니다. 오늘 우리가 두억시니를 잡지 않았다면, 두억시니를 향해 소리 친 사람들은 오늘 밤을 넘기기 힘들었을 거예요. 두억시니의 원한을 사게 되면 자신의 철로 된 몸으로 사람들 머리를 짓이겨 죽여 버리는 아주 잔인한 요괴입니다.”


우치와 길동 각자 자기 머리를 만지며 호리병을 피한다.


“홍 처사님 이해하는데, 전 처사님은 그러시면 아니 되시지 않나요? 그리 겁을 내실 거라면 무서운 요괴들은 왜 풀어놓으셨는지...”


뜨끔한 듯 우치 박씨의 호리병을 낚아채, 자신의 허리춤에 찬다. 우치는 넓은 들판이 펼쳐진 바위 위에 누워 있고, 길동은 칼을 닦으며 간간이 자신의 얼굴을 칼에 비쳐본다. 바위 옆에 쉬고 있는 토끼를 쓰다듬는 박씨부인. 한폭의 그림 같은 3명의 모습이 평화로워 보인다. 전우치 일어나 앉아 봇짐을 멘다. 길동은 일어나 칼을 다시 허리춤에 차고, 박씨 부인은 토끼를 돌려보낸다. 마을 입구로 들어가는 길 어린이가 길동의 옷자락을 잡는다. 아이는 머리에 볏짚을 덮어쓰고 팥죽하나 못 얻어먹은 듯 야위었다. 아이가 길동이 좋은 듯 길동의 뒤를 따른다.

“꼬마, 집이 어디니?”

“몰라요.”

“꼬마야, 우리 지금 무서운 요괴를 잡으러 가는 길이야. 그러니 따라오지 말거라.”

“따라 갈래요. 저도 요괴 잡고 싶어요.”


박씨부인과 전우치는 아이와 길동에 대화에 신경 쓰지 않고 앞서간다. 두 사람을 따라잡으려는 듯 홍길동 재촉하여 걷는다. 급하게 걸어서인지 초가로 된 객잔에 도착할 때 쯤 어린아이가 보이지 않는다. 한쪽 방에는 전우치와 길동이 들어가고, 반대편 방으로 박씨부인이 들어간다. 피곤 한 듯 보이는 전우치 방에서 짐을 풀고 곯아떨어진다. 이른 새벽 암탉이 시끄럽게 울어 된다. 그 시끄러운 소리에도 아란 곳 하지 않고 각각 방에서 인기척이 없다. 진시(아침 8시) 가 되어 방문이 열린다. 봇짐을 지고 나오는 우치, 길동, 그리고 박씨 부인. 객잔의 주인이 나와 인사를 한다.


“아침들 드셔야지. 차려드릴까?”

“아니 되었소. 지금 바삐 가야 해서...”


길동과 박씨 부인이 싸릿문을 열고 나오고, 우치는 하룻밤 방값을 내고 있다. 어제 들어 갈 때와 달리 사람들이 객잔 앞에 모여 웅성 된다.


“세상에 그 힘센 박씨가 죽었다네.”

“왜?”

“아니...그게 말이야. 어린아이랑 싸우다 죽었대. 짚을 덮어쓰고 있었다던가?”

“아이고 이 사람아..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어린아이랑 싸워서 왜죽어?”

“아니..이 앞 골 서 서방 있잖아. 그 사람이 직접 눈으로 봤대. 아이가 때리면 때릴수록 몸이 어마 어마하게 커진다나 뭐라나?”

“어??”

“아니 글쎄..거기에 박씨가 깔려 죽었다나 봐.”

옆에서 듣고 있던 전우치, 홍길동 과 박씨부인 서로의 얼굴을 본다.

“혹시 홍 처사 도포자락을 잡고 따라온 그 꼬마?”


박씨부인이 챠르륵 요괴 사전을 뒤진다.


“우리가 요괴가 없는 마을에 요괴를 끌고 들어온 거네요. 때리면 때릴수록 커지는 요괴. 그슨대...유명하지요.”

“어린아이라고 깔봐서 그런 것일 테지.

“홀렸겠지요. 그래서 그런 겁니다.”


박씨부인을 중심으로 전우치와 길동이 걸어가면서 이야기를 한다. 언제 왔는지 모르게 그슨대가 길동의 옷자락을 잡고 있다. 길동은 꼬마에게서 옷자락을 떼어낸다.

“왜 그랬니?”

“나를 무시해서 죽였어요. 어른이면 어른답게 굴어야지요. 어리다고 얍 보고..아저씬 그런 분 아니죠?“


2.

초가지붕 한 칸 방에서 엄마는 바느질을 하고, 그 다리를 베고 누워있는 그슨대. 문이 덜컥 열리며 거하게 취한 그슨대 아버지가 들어온다. 덩치가 산만하다. 그슨대 아버지, 이유 없이 큰 손을 들어 그슨대 엄마의 뺨을 후려갈긴다. 힘없이 넘어져 뒤로 밀리는 그슨대 엄마. 손에 쥐고 있던 바느질감이 뿔뿔이 방안에 흩어진다. 자고 있던 그슨대 일어나 엄마 앞을 막아선다.


“너 뭐야? 비켜!!”

“아빠 엄마 왜 때려요?”

“왜 때려? 그건 내 맘이다. 걸리적거리지 말고 비켜!! 여자는 시간 날 때마다 때려줘야지. 끽소리 못할 연약한 것들이..”


그슨대 아버지는 그슨대를 집어 마당 밖으로 던진다. 마당에 떨어져 피를 흘린다. 그슨대 마당에 떨어진 채 조금 꿈틀댄다.


“슨대야...”


엄마가 맨발로 마당으로 뛰어 나와 그슨대를 끌어안는다. 그슨대 아버지도 마당으로 나온다. 그슨대를 안고 있는 엄마의 뺨을 다시 한 대 내리친다. 그슨대 엄마 힘없이 꺼꾸러진다. 얼굴에 피 범벅인 그슨대 다시 일어나 엄마 앞에 선다.


“엄마 때리지 마. 엄마 왜 때리냐고!!”


어린아이답지 않게 이글거리는 눈을 보고 화가 난 그슨대 아버지는 그슨대를 들어다 바닥으로 내동댕이친다. 피가 마당으로 튀며 그 자리에서 뻗어서 죽는 그슨대.


3.

공터 한쪽 구석에 볏단, 나무 단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그 옆으로 줄지어 있는 지게들. 양옆으로 사람들이 논메다 들어간 듯, 호미와 곡괭이가 군데군데 놓여있다. 바람이 불어 짚이 날린다. 전우치가 화가 난 듯 그슨대를 나무란다.


“너를 무시한다고 사람은 죽이는 건 옳지 않아. 겁은 줄 수 있어도...”

“죽은 자신들이 자초 한 거에요. 전 때리면 때릴수록 커지죠. 우리 아버지가 나를 때려죽인 그 한 때문에 요괴가 되었어요. 나를 때리지 않고 타일렀다면 그 사람은 살았을 거예요.”

“그래도 네가 한일은 옳지 않아. 그래서 벌을 받아야해.”


전우치는 도술로 그슨대를 밧줄로 묶는다. 그슨대 몸집이 점점 커진다. 묶인 밧줄을 실처럼 끊어낸다. 자신의 칼을 꺼내들고 그슨대를 긋는 길동, 박씨부인 그슨대를 들어다 바닥에 내리 꽂는다. 길동의 칼이 스칠 때 그슨대의 몸이 커졌고, 박씨부인이 바닥에 내리 꽂았을 때 몸집은 더 커진다. 그슨대 길동과 박씨부인을 멱살을 잡고 멀리 집어던진다. 날아가는 길동과 박씨부인. 볏짚에 부딪히고 바닥에 떨어진다. 전우치 도술로 곡괭이와 호미를 들어올린다. 그리고 그슨대 쪽으로 날린다. 그슨대 홍미와 곡괭이를 대수롭지 않게 쳐낸다. 박씨부인 옆에 놓인 요괴사전을 본다. 박씨부인 전우치를 향해 손짓한다.


“처사님 그슨대는 때리지 마세요. 좋게 이야기해도 말귀 알아듣는 요괴입니다.”

“그래도 자기를 잡아넣는 거 알면 가만있을 요괴가 어디에 있어요?”

“그슨대는 아닐겁니다. 어릴 때 학대 받은 상처 때문에 요괴가 된 친구이기에 좋게 타이르면 알아들을 겁니다. 그럼 직접 해보슈..”

“그슨대? 잠깐 이야기 좀 할까?”


하는데 그슨대 박씨부인을 들어서 집어 던진다.


“그슨대 그러면 안 돼.”


홍길동이 일어나 칼을 들고 그슨대 쪽으로 달려간다. 그슨대를 쳐다볼 뿐 공격을 하지 않는다. 그슨대 의아해한다.


“왜 공격을 하지 않아요?”

“박 처사님이 말씀하셨잖아. 이야기 좀 하자고...그러나 방금 네 행동은 니가 싫어하던 아버지와 같은데..?”

“아니에요. 절대..저는 아버지와 같지 않아요. 말해보세요. 들을게요.”


그슨대 원래의 몸크기로 돌아온다.


“그슨대, 우리가 지금 요괴를 잡으러 다녀.”

“왜요?”


길동이 전우치를 가리키며


“이 얼빠진 아저씨가 홧김에 요괴들을 봉인해놓은 항아리를 뜯어버려서...요괴 아줌마 아저씨들이 기어 나와서 너희 아빠처럼 사람들을 괴롭히고 다닌데...”

“그러면 안되죠!!”

“그럼...네가 우리를 좀 도와줄래?”

“어떻게 도와드리면 될까요?”

“이 호리병 안으로 들어가면 돼.”

“......”

“싫어?”

“아뇨...그게 아니라..오래간만에 찾은 자윤데...아쉬워서요.”

“.....”

“아뇨...뭐..그냥 넣으세요. 그냥 제가 알아서 들어갈게요.”


길동이 그슨대가 대견한 듯 덮어쓴 짚을 쓰다듬는다.


“그럼 아저씨가 직접 저를 넣어주세요.”

“그래...”


호리병을 건네는 전우치. 길동 주문을 외운다. 그리고 호리병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그슨대. 호리병 두껑을 닫는다. 홍길동 기분이 찹찹한 듯 한동안 멍하니 서있다. 호리병을 한 번 쓰다듬고 자신의 허리에 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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