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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쌩긋 Jan 18. 2016

<빨간구두당>

구병모

 당신은 그녀가 남자들의 자리에서 함께 말하기를 겨루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세상의 질서에 대한 그녀의 탐구를 신에 대한 항의나 조소로 간주하여 쉽게 피로를 느꼈습니다. 한 나라의 왕이 될 자에게, 백성의 세금과 왕실의 풍요와 후계자 생산에 관심을 두는 대신 세계의 근본과 이치를 따지는 여인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어머니다운 섬세하고 온화한 돌봄의 자질이 결여된 여성에게 아무리 뛰어난 지성과 재능이 있어 봤자 그것은 수정에 난 흠집에 불과하다고 보셨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구실을 앞서는 이유가 그녀의 썩 곱지 않은 외모에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우리가 기억하지도 추론하지도 못할 만큼 오랜 옛날부터 정해진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존귀한 남성은 벨벳 같은 머리카락과 빛나는 눈동자에 핏빛 입술을 지닌 여성을 찾게 마련이니까요. 그 머리카락 아래 담긴 게, 그 눈동자에 비치는 게, 그 입술에서 나올 게 무엇인지는 확인하지 않은 채.

 그들의 눈을 덮은 얇은 껍질은, 그 뒤로도 오랫동안 두 사람이 행복하게 살았으며 잔치 무도회가 파하지만 않았다면 아직도 춤추고 있으리라는 첨언마저 끝난 뒤에야 벗겨지는 법입니다.


<빨간구두당> 중 <개구리 왕자 또는 맹목의 하인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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