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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쌩긋 Feb 12. 2016

<정희진처럼 읽기>

정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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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은 살아 있는 죽음이다. 살아 있는 죽음을 살 것인가, 죽음으로써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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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나는 남고 내게 의미있는 관계자들은 떠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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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대로 사는 것은 '지금 자기'를 부정하고 욕망을 따르는 가치 지향적 삶이다. 그 가치가 바람직한 경우도 있지만 대개 이 말은 경쟁 사회의 자기 다짐이고, 다이어리 첫 장에 등장하는 문구이다. 경제적 성취든 인격과 실력 배양이든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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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는 공상이다. 생각은 몸의 형식으로만 존재한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몸이 안 따른다는 말은 이상하다. 머리(의식)도 몸이다. 의식은 몸의 어느 부위인가? 그런 부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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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윤리, 사회적 가치는 인간의 경험에 근거하여 지속적으로 갱신되어야 한다. 가장 취약한 사람의 고통을 볼모로 기존 통념을 수호하려는 것은 인간이 지닌 최고의 악마성이다. 당위적인 윤리는 없다. 목적은 변화를 통해서만 성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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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혹은 민주주의를 추구한다는 것은 '얼룩진' 옷을 벗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소외를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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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요구나 투쟁이 아니라 상대방이 기존과는 다른 반작용(re/action)을 행사할 때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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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에게 떠난 이유를 따지는 것은 전혀 효과가 없다. 사랑이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실리 측면에서도 그렇고, 사실 진짜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심오하지 않다. '피해자'에게 관심도 없다. 관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쪽이 약자가 될 뿐이다. 그들은 단지 할 수 있으니까 그런 것이다.
 이 질문은 고통뿐인 권력 관계의 지속을 보장할 뿐이다.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끝내는 것이 아니라 끝나는 것이다. 그런데 원인을 찾고 싶은 심리는 누군가가 '끝냈다'고 생각한다. 왜 나를 때릴까? 왜 나를 떠났을까? 왜 내가 아닌 그(그녀)지? 이건 우문도, 문장도, 질문도 아니다. 그냥 잘못된 진술, 나를 괴롭히는 지배 담론이다. 트라우마는 가해자 때문이 아니라 가해자를 이해하려는 순간 시작된다.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 같은 것은 필요 없다. 전직 연인들은 그저 이별이 한 인간의 정치학과 윤리학을 정확히 보여주는 지표일 뿐임을 인식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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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와 '할 말은 하는 신문'이 만끽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표현의 권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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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문장에 있는 것이지 주장에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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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는 모든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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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벌은 교실의 '평화'를 위해 교사가 이 편의성의 매력에 굴복할 때 발생한다. 나는 그들의 선택을 충분히 이해한다. 인간에 대한 존중은 집단이 아니라 구체적인 개별자일 때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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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화', '우아', '화해' 같은 안정(?) 계열의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내 경험에 의하면, 이런 말을 자주 사용하는 이들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 남을 열 받게 함. 간혹 타인의 정신을 붕괴시킴. 권력자. 불성실과 무식을 '쿨함'으로 가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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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콧도 존중한다. 다만 그렇다면 가만 있지 말고 보이콧 운동을 조직하라. 선거 자체를 무효로 만드는 현실 정치를 해라.
기권은 선택이 아니다. 개인이 기본적 권리마저 두려워하게 만든 권력의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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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성은 권력자의 주관성이라는 사실을 모르는가? 익명성은 가장 무서운 서명이고 객관성은 가장 강력한 편파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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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주의는 여성에 관한 주장이 아니라 사회에 대한 것이며 평등이 아니라 정의를 지향한다.
모든 사유는 경합하는 운동이지 그것을 독점할 자격이 있는 집단은 있을 수 없다. 당연히 남성 페미니스트는 가능하고 또 절실하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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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자도 남자도 아닌 사람으로 태어났다. 원래 남녀 차이보다 여성과 여성의 차이, 남성과 남성 간의 차이가 더 큰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이러한 법칙을 왜곡하여 인간을 남녀로 분류한 제도가 가부장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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