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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쌩긋 Feb 03. 2016

거인의 집

엘리자베스 맥크레큰

*
 하지만 나는 박한 봉급을 좋아하지 않았다. 사실 헤프게 쓰는 돈도 많았다. 큰소리를 질러대지만 않는다면, 괜히 쉿쉿거리며 사람들에게 주의를 주지도 않았다. 따져보면 노처녀이긴 했지만, 사람들이 짜증나게 굴 때만 신경질을 냈다. 짜증 많은 사람들이 사서가 되는것이 아니라, 사서가 되면 그 누구보다 관대한 사람이라도 짜증을 내게 되는 것이다. 하루 종일 너그럽게 굴라고 월급을 받고 있는데도 아무도 우리의 너그러움을 알아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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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디 있는지만 가르쳐 줄 뿐, 절대 직접 서가에서 책을 꺼내주지 않았다. 내 일은 도서관을 이용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지-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도-대신 이용해 주는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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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사서로 인정받고 싶었다. 적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길 갈망했다. 난 서평, 신간안내, 경고문, 이제껏 받아온 훌륭한 교육이나 충고들을 언제라도 쏟아놓을 수 있게 가득 충전해 놓고 데스크 앞에 끊임없이 무심하게 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나를 찾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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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을 도와줄 방법을 배우러 학교를 다녔었는데, 그들의 눈엔 내가 그저 책에 도장이나 찍어주는 사무원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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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설은 그렇지 않지만, 나는 사람들이 멋진 외모나 운명보다는 지식을 토대로 사랑에 빠지는 거라고 믿는다. 연인이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거나 흔치 않은 사실을 상대도 알고 있음을 발견하고 새로운 감정을 느낀 적이 있다든가, 매혹적인 사람이 무식하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고 실망한 적이 있다면 내 말 뜻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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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마술책의 기한을 끝도 없이 연장해 주었다. 규칙대로라면 연장은 단 한 번에 한해 가능했는데도. 사서들은 단골손님이라면 이성을 잃는다. 좋은 사람들, 책을 읽는 사람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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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 책이 필요해요."
"네? 아드님은 어디 있는데요?" 나는 자식 대신 책을 빌리러 오는 엄마들이 싫었다. 간섭이 심하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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